2013년 5월 2일 목요일

월하독작(月下獨酌) 제2수 - 맨정신으론 이해 못하는 술꾼의 고독


한인 이민자들이 자주 찾는 뉴욕 플러싱의 한 유흥가. 술친구도 없어 혼자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다.


月下獨酌(월하독작) 제2수


天若不愛酒(천약불애주)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주성부재천)  주성이 하늘에 없을 터 
地若不愛酒((지약불애주)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지응무주천)  땅엔 응당 주천이 없을 터 
天地旣愛酒(천지기애주)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좋아하였으니 
愛酒不愧天(애주불괴천)  술을 좋아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도다. 
已聞淸比聖(이문청비성)   이미 들은 바 있도다 청주는 성인에 견주고 
復道濁如賢(복도탁여현)  또 탁주는 현인으로 통한다는 것을 
聖賢期已飮(성현기이음)  성인과 현인을 이미 마신 마당에 
何必求神仙(하필구신선)  어찌 꼭 신선이 되려 하겠는가 
三杯通大道(삼배통대도)  석 잔 술이면 대도와 통하고 
一斗合自然(일두합자연)   한 말 술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느니 
俱得醉中趣(구득취중취)   취중에 함께 얻은 흥취일랑 
勿謂醒者傳(물위성자전)  술 깬 사람들에게는 떠들어댈 거 없네

                                   <‘월하독작(月下獨酌)’ 제2수, 이백(李白); 701년-762년>

작(獨酌), 이민 온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게 습관이 돼버린 것 같다. 취한 채 길거리서 비틀거리면 즉각 병원 응급실로 후송하여 응급차 이용비 522달러에 1천 달러가 넘는 응급실 치료비용을 물어야 하고, 요즘 같은 불황에 29달러짜리 위스키를 120달러나 받는 코리아타운 술집 매상을 올려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거니와, 모두들 먹고 살기 힘들어선지 술자리에 모이면 술 맛 나는 이야기보다는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들만 주절주절 늘어놓는 게 꼴 보기 싫어서다. 그래선지 혼자 느긋하게 마시는 술이 더 맛있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긴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서 음주는 프라이버시 중의 프라이버시에 속한다. 길거리서 뚜껑이 개봉된 술을 들고만 다녀도 경범죄 딱지를 떼는 뉴욕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술꾼들이 많은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같은 주에서는 술 냄새만 풍기고 다녀도 ‘Public Intoxication’이라고 해서 즉각 구치소에 수감하고 법정 소환장을 발부하는가 하면 술 먹고 비틀거리면서 싸움이라도 하면 한 6개월 알콜 중독 치료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속상한 일로 정 술을 마시고 싶으면 집에서 홀짝 홀짝 마시는 수밖에. 그런 경우에도 행여 술에 취해 마누라와 싸웠다가는 이웃집 할머니들이 즉각 경찰에 신고하여 체포되기 일쑤다. 

미국인들처럼 개인주적이고 독립심 강한 사람들은 술도 혼자 마시기를 더 좋아한다고 하는 연구발표도 있다. 지난 2008년 말 텍사스 주립대 샌 안토니오 캠퍼스의 장인롱 박사 연구팀은 ‘소비자 연구 저널’(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발표한 논문에서 “경제적 수입, 기후, 성별, 종교 등 알코올 소비와 관련된 변수를 감안하여 조사한 결과 개인주의를 높게 평가하는 지역일수록 맥주와 알코올 소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자신을 ‘상호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지역 사람들이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지역보다 과음이나 충동적 음주를 규제하는 경향을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대학들이 연구실적을 위해 얼렁뚱땅 발표하는 논문에 절대적인 보편타당성은 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개인주의적일수록 혼자서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하는 쓴웃음이 새어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왜? 어떤 집단에 속하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못 배기는 한국서 직장 다닐 적 허구한 날 회식이다 뭐다 숱한 술자리가 있었지만 혼자서 1차, 2차, 3차까지 가는 술꾼은 보지 못했으니까. 

이백 초상 스케치
어쨌거나, 술친구 없이 술을 혼자 마시는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운 것도 없다. 술 한 잔 마시고 시 한 수씩 읊었다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또한 겉으론 온갖 허풍을 다 떨고 있지만 속으론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해서 혼자 술이나 마시고 있다”는 고백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月下獨酌(월하독작)’은 모두 4수(首)로서,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廻(군불견 황하지수천상래 분류도해불부회; 그대는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삐 바다에 이른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로 시작하는 ‘장진주(將進酒)’가 어떤 친구에게 술을 함께 마시자고 꼬드기는 ‘권주가(勸酒歌)’라면 ‘월하독작’은 그런 꼬드길 친구도 없어 혼자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의 정취를 읊은 음주시(飮酒詩), 제1수에서는 술친구가 없이 독작한다는 게 영 안 됐는지 달과 자신의 그림자까지 끌어들여 “혼자 마셔도 외롭지 않다”고 자위하고는 위에 소개한 제2수에서는 한 술 더 떠 혼자 술 마시는 것을 ‘도통(道通)’과 ‘합자연(合自然)’의 고고한 경지로까지 끌어올린다. 제3수와 제4수는 음주의 정취와 음주로써 인생의 불안과 근심을 삭히는 것을 읊고 있다. 

제2수의 주제는 음주의 정당성(?) 주장 내지는 예찬, ‘주성(酒星)’과 ‘주천(酒泉)’은 한나라 말기 조조(曹操)가 금주령을 내리자 공자(孔子)의 20대손으로서 지독한 술꾼이었던 공융(孔融)이 “대저 하늘엔 주성(酒星)이 빛나고 땅에는 주천(酒泉)이라는 군(郡)이 있으며, 사람들은 술의 덕을 즐겼다(夫天有酒旗之星 地列酒泉之郡 人有旨酒之德)”고 조롱한 데서 나온 말, 당시 금주령이 내려지자 사람들이 ‘탁주’는 ‘현자’, ‘청주’는 ‘성인’이라고 칭했다는 이야기가 ‘예문류취(藝文類聚)’에 전한다. 주천군(酒泉郡)은 한 무제 때 개설한 군으로 그 곳의 물맛이 술과 같아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정작 이 시의 묘미는 서글픈 반어법에 있다. 愛酒不愧天(애주불괴천)? 아니다. 반대로 읽어야 한다. 시의 제목에 홀로 ‘독(獨)’자를 넣고 술을 사랑한다면서도 ‘부끄러워하다’ ‘창피하다’ ‘모욕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괴(愧)’자를 골라 넣은 데서 보듯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취생몽사가 쑥스럽고 부끄러웠으리라. 게다가 혼자 술 마시기가 오죽 외롭고 쓸쓸했으면 온갖 허풍 다 떨어가면서 주덕(酒德)을 칭송하고 음주를 예찬했겠는가? 그렇게라도 취하지 않고서는 세상 돌아가는 꼴을 직시할 수 없었던 이백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서 덧붙인 말이 ‘勿謂醒者傳(물위성자전)’, 술자리에서의 배꼽 아래 이야기 즉 술주정이나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술 깬 후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게 술꾼들의 교양과 품위인 바, 술 깬 사람들에게 ‘취중취(醉中趣)’를 전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도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일탈(逸脫)을 비웃지 말라는 하소연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뉴욕에는 이백이 없어서 안타깝다. 서울에 있을 적에는 말이 통하는 술친구와 거나하게 취한 후 어깨동무하고 비틀거리면서 “야, 그래도 너하고는 말이 통하는구나! 우리 어디 가서 한 잔 더할까?”하고 정을 나누는 낭만이라도 있었건만, 모두 다 먹고살기 바쁜 뉴욕한인사회에서의 그런 낭만은 술잔 속에 지는 별똥별, 오늘도 처자식 눈을 피해 방문 걸어 잠그고 위스키 한 잔 홀짝거린다. 이백의 ‘월하독작’을 안주 삼아 읊으면서. 참고삼아 월하독작1,2,3,4수를 차례로 모두 적어둔다.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들 사이 한 병의 술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홀로 따르자니 서로 친함이 없어
擧杯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명월을 초대하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까지 생겨나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월기부해음)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내 몸을 쫓아다니기만 하네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行樂須及春(항낙수급춘) 마침 놀기 좋은 봄이네
我歌月徘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거닐고
我舞影零亂(아무영령난)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어지러이 춤추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덜 취해 깨어있을 때는 즐거움을 나누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하면 각자 흩어지는 것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정이 다하여 기리 놀고 싶어서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저 은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네.
 
天若不愛酒(천야부애주) 하늘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주성부재천) 주성이 하늘에 없을 터
地若不愛酒(지야부애주) 땅이 만약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地應無酒泉(지응무주천) 땅엔 응당 주천이 없을 터
天地旣愛酒(천지기애주)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좋아하였으니
愛酒不愧天(애주부괴천) 술을 좋아하더라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리
已聞淸比聖(이문청비성) 이미 들은 바 있네 청주는 성인에 견주고
復道濁如賢(복도탁여현) 또 탁주는 현인으로 통한다는 것을
賢聖旣已飮(현성기이음) 성인과 현인을 이미 마신 마당에
何必求神仙(하필구신선) 어찌 꼭 신선이 되려 하겠는가
三杯通大道(삼배통대도) 석 잔 술이면 대도와 통하고
一斗合自然(일두합자연) 한 말 술이면 자연과 하나가 되느니
但得酒中趣(단득주중취) 취중에 함께 얻은 흥취일랑
勿爲醒者傳(물위성자전) 술 깬 사람들에게는 떠들어댈 거 없네
 
 三月咸陽城(삼월함양성) 춘삼월 함양성은
千花晝如錦(천화주여금) 온갖 꽃이 비단 펼쳐 놓은 것 같지만
誰能春獨愁(수능춘독수) 누구라서 봄날 수심 떨칠 수 있으리오
對此徑須飮(대차경수음) 이럴 땐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네
窮通與修短(궁통여수단) 곤궁함 영달함과 수명의 장단은
造化夙所稟(조화숙소품) 태어날 때 이미 다 정해진 것
一樽齊死生(일준제사생) 술 한 통 속에선 삶이나 죽음이나 그게 그거
萬事固難審(만사고난심) 세상 일 살펴봤자 어렵기만 하지
醉後失天地(취후실천지) 취하면 하늘과 땅 다 잊어버리니
兀然就孤枕(올연취고침) 홀로 베개 베고 잠이나 자자꾸나
不知有吾身(부지유오신) 내 몸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니
此樂最爲甚(차낙최위심) 이게 바로 최고의 즐거움이일세

窮愁千萬端(궁수천만단) 걱정은 천 갈래 만 갈래
美酒三百杯(미주삼백배) 좋은 술은 삼백 잔
愁多酒雖少(수다주수소) 걱정은 많고 술은 적지만
酒傾愁不來(주경수부내) 마신 뒤엔 걱정거리 다시 찾아오지 않네
所以知酒聖(소이지주성) 이런 까닭에 주성이
酒酣心自開(주감심자개) 술을 즐기면서 마음을 열었는가 보네
辭粟臥首陽(사속와수양) 전하는 말에 누구는 수양산에서 조밥이나 먹다 고꾸라지고
屢空飢顔回(누공기안회) 뿌릴 씨조차 없던 안회는 굶주렸다는데
當代不樂飮(당대부낙음) 당대에 술도 못 즐긴다면
虛名安用哉(허명안용재) 허명 따위 어디다 써먹나
蟹螯即金液(해오즉금액) 게나 대합조개는 귀한 안주이고
糟丘是蓬萊(조구시봉래) 술지게미 언덕이 바로 봉래산이네
且須飮美酒(차수음미주) 이제부터 좋은 술이나 마시고
乘月醉高臺(승월취고대) 취기에 달을 타고 높이 올라가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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