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선운사 동구 - 햇볕에 바래고 달빛에 물든 시인의 탄식

뉴욕 롱아일랜드 끝 몬탁의 휴게소에서 바닷가 쪽으로 난 고갯길, 이런 호젓한 길을 걷노라면 '달빛에 물든 삶'의 편린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1968년 '동천',  서정주; 1915년-2000년>


간의 삶을 끊임없는 인연(因緣)으로 파악하는 불가(佛家)가 아니더라도 과거(過去) 없는 현재(現在) 없고 현재 없는 미래(未來) 없다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이래 심리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말도 인간의 의식이 끊임없이 연결돼 있다는 관찰에서 나온 말이거니와, 소설가나 시인들의 작품도 과거의 경험과 인식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한 것이고 보면,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작품 이해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뿌리이지만, 한 소설가의 말을 빌리자면 “과거가 햇볕에 바래면 역사(歷史)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神話)가 된다”고 했다. 역사는 승자(勝者)의 포효(咆哮)이고 신화(神話)는 패자(敗者)의 신음(呻吟), 시인들이 역사보다는 신화에 매달리는 것도 승자의 포효보다는 패자의 신음이 감동의 폭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러나 어떤 시인들은 승자의 포효를 찬미하면서 양지를 걷기도 했다.

만년의 서정주
전라북도 고창(高敞) 출신으로 한국 시단에 굵직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도 그 중 하나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김광균․김동리․오장환․김달진 등과 함께 문학잡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할 때만 해도 생명과 삶을 예찬하는 소위 ‘생명파(生命派)’였으나,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을 하고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 등을 발표하여 조선인 전쟁 참여를 독려했었고, 해방 후엔 이승만 정권의 우익 성향에 편승하여 박목월 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했는가 하면 이승만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후인 1961년에 간행된 서정주의 제3시집 ‘신라초(新羅抄)’에 대해서도 서정주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친일파와 좌익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신라의 후손’을 자처한 박정희를 의식하여 그 이전에 써놓았던 시들에 ‘선덕여왕의 말씀’ ‘신라의 상품’ ‘노인헌화가’ 등을 추가하여 시집 제목을 ‘신라초’라고 했고, 그 시집으로 1962년 5.16 문예상 본상을 수상했다”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또 1979년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자 1981년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전두환을 공개 지지한 데 이어 1987년엔 전두환의 56회 생일을 맞아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중략....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운운하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지어 바쳐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었다. 

서정주가 격동기마다 ‘햇볕에 바랜 역사’를 예찬하여 일신의 안락을 도모하기는 했지만 ‘달빛에 물든 신화’를 모른 척한 것은 아니었다. 서정주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달빛에 물든 신화’를 기록하기 위해 이따금 ‘햇볕에 바랜 역사’를 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귀촉도’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동천’ 등 그의 수작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달빛에 물들인 시’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시집에는 ‘햇볕에 바랜 역사’를 읊은 작품들을 단 한편도 싣지 않았었다. 1975년 출간된 ‘질마재 신화’ 역시 ‘달빛에 물든 신화’였다. ‘질마재’는 서정주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선운리에 소재한 고개 이름, ‘질마재 신화’는 질마재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와 신화를 소재로 하여 쓴 45편의 시 모음집에 불과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생명과 불교와 신라를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서정주의 의식의 뿌리를 숨기지 않고 표출했다는 데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부’, ‘해일’, ‘상가수의 소리’, ‘소자 이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알묏집 개피떡’ 등등 모두 ‘햇볕에 바랜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로서, 작품 대부분의 뿌리가 질마재 출신인 서정주의 의식 깊숙한 곳에 박혀 있던 것들이었던 바, 그의 시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을 빌려 표현하자면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서정주 자신의 참모습”을 보는 듯하다. 

기실 서정주는 ‘질마재 신화’ 이전부터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1968년 펴낸 다섯 번째 시집 ‘동천(冬天)’에 실린 ‘선운사(禪雲寺) 동구(洞口)’도 그런 증거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골째기로’ ‘않했고’ ‘남었습니다’ 등의 전라도 사투리 자체가 서정주 자신의 육성(肉聲)이거니와, 노래 부르고 웃음 파는 ‘막걸릿집 여자’는 ‘달빛에 물든 사람’의 상징으로서 평생 시나 지어 먹고 살아온 서정주 자신의 이미지와도 연결되고, 그 ‘막걸릿집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전라도 특유의 민요 ‘육자배기 가락’은 전라도 사투리를 시어(詩語)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서정주 자신의 시작(詩作)을 연상케 한다. ‘선운사 골째기’는 서정주의 의식의 흐름이 시작된 ‘정신적 본향’이고, ‘동백꽃’은 서정주가 추구해온 소박한 삶의 재미이거나 기쁨일 것이며,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은 서정주가 평생 써온 작품들일 수도 있으며,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는 구절은 인생 내리막길에 접어든 서정주의 탄식이라고 단정해도 무방할 듯싶다. ‘질마재 신화’의 예고편격인 그 시를 읽노라면 선운사 입구의 허름한 막걸릿집에 들른 서정주가 쉰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나서 긴 한숨과 함께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2000년 10월 10일 부인 방옥숙이 죽자 1백일을 넘기지 못한 채 12월 24일 세상을 뜬 서정주는 고향 선운리 생가 맞은 편 야산에 묻힌다. 어쨌거나 서정주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한국 시단에 우뚝 선 거목, 서정주 이전에 서정주 없었고 서정주 이후에 서정주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해마다 가을이면 선운사 언저리에서 국화축제가 열리면서 시인 서정주의 유적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지만 서정주의 삶이 ‘햇볕에 바래고 달빛에 물든’ 곡절을 더듬어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 그의 삶 자체가 육필(肉筆)로 꼬불꼬불 쓴 한편의 시 같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생전 그의 삶이 그랬듯이 그의 무덤에도 낮에는 햇볕이 내리쬐고 밤에는 달빛이 비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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