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음란으로 화장한 시인의 민낯

2013, chai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광마집(狂馬集, 1980), 마광수(馬光洙): 1951년~ >


(色)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 또는 그것을 나타내는 물감 따위의 안료”라는 풀이와 함께 “색정이나 여색, 색사(色事) 따위를 뜻하는 말”이라는 풀이도 함께 딸려 나온다. 영어로 말하자면 전자는 ‘color’이고 후자는 ‘sex’, 영어 문화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지만 한자 문화권 사람들은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했다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한자 ‘색(色)’은 사람 인(人)과 무릎 꿇은 사람을 그린 절(卩)로 구성되어 顔色(안색)’을 말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마음(心·심)이 기(氣)로 전달되고 기는 미간(眉間) 즉 얼굴에 표출되기에 이를 색(色)이라 한다”고 풀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몸을 편 기쁨과 무릎을 꿇을 때의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므로 ‘안색’의 뜻이 생겼다”고도 풀이하지만, 그런 풀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색이 호색(好色)이나 색골(色骨) 등에서 보듯 ‘성(sex)’의 의미로 쓰이는 데 주목하여 “후배위(後背位)의 성교 때 흥분하여 뒤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색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단순호치(丹脣皓齒)라는 말이 미인의 대명사로 쓰이고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니 미색(美色)이니 하는 말이 생겨난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이 화장(化粧)에 열을 올리는 것도 색(色)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미 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화장용 색소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원전 7500년 전 이집트 여인들이 화장을 했다는 이야기는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되어 주지하는 바다. ‘화장’을 뜻하는 영어 ‘cosmetics’의 어원은 “옷을 잘 입고 치장을 하는 기술”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osmetikē tekhnē’, 또 ‘kosmetikē’의 뿌리는 ‘질서’ ‘장식’을 뜻하는 ‘kosmos’에 닿아 있다. 고대 이집트 여인들이 짙고 긴 눈썹을 아름답게 여겼듯이 사람 형상의 인격신들이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 또한 여신들이 가졌음직한 아름다운 얼굴 샘플을 상정해놓고 자신의 얼굴을 꾸몄을 거라는 속뜻이 읽혀진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플라우투스(Plautus (BC 254 – 184 BC)는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는 소금을 치지 않은 음식과도 같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1980년에 출간된 마광수의 처녀 시집 '광마집'(사진 오른쪽)과 2007년 모 일간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마광수.
군사독재시절이던 1992년 여대생이 자신의 대학 교수와 성관계를 갖는 줄거리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논쟁에 휘말려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馬光洙)는 정말 색(色)을 밝히는 색골(色骨)이었나? 이 세상에 널린 주제들 중 하필이면 섹스를 골라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천성 자체가 음란한 거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섹스에 관한 사회의 위선과 이중적 잣대에 도전하는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찬사가 엇갈리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화장을 걷어 내고 보면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섹스로 작품을 화장했을 뿐 섹스가 작품의 민낯은 아니라는 말이다. 1980년 펴낸 그의 처녀시집 ‘광마집(狂馬集)’애 실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화장’은 민낯을 가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민낯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찰이 읽혀지거니와,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민낯으로 사랑 받으려고 덤벼드는 뻔뻔한 여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열심히 화장하는 여자에게서 여성으로서의 순수가 더 많이 느껴진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가 없고,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는 구절에서는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타자성(他者性)의 철학’마저 감지된다. ‘얼굴의 철학’으로도 불리는 ‘타자성의 철학’에서는 “타인의 얼굴은 내가 임의로 피할 수 없는 낯선 침입자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주관적 지배성이 배제된 ‘관계성 없는 관계’로서 자아는 단지 타자를 지각함으로써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타자를 수용할 때 타자는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침입자가 아니라 내면의 닫힌 세계에서 밖으로의 초월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접촉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민낯을 화장하는 ‘야한 여자’를 수용하기 위해 자신 또한 화장하고 싶다는 마광수는 정액을 배출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수컷은 아닌 것 같다. 여자를 예뻐지기 위해 화장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성차별적인 시각엔 동의할 수 없고, 24년 전 제자가 쓴 시를 2006년에 펴낸 자신의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실은 게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등 문학가나 교수로서의 품행이 방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음담패설 늘어놓는 남자들 중 진짜 색골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만한 남자들은 다 안다. ‘나는 미친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놈이 아니듯이, 마광수가 진짜 미친 말이었다면 자신의 이름 앞쪽 두 글자를 뒤집어 ‘광마(狂馬)’라는 아호(雅號)를 짓지는 않았을 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역시 ‘화장을 많이 한 야한 여자’가 좋다는 게 아니라 ‘화장을 많이 해서라도 예뻐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그래서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고 첨언(添言)해둔 게 아닌가?! 실제로 마광수는 자신에게 비난의 손가락질이 쏟아질 때마다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도하여 순치시키는 도덕교과서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문학이 근엄하고 결백한 교사의 역할, 또는 사상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되고 만다”라고 항변했었다. 그런 항변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술집 여자들이 화장발로 술을 팔듯이 마광수 자신 또한 작품을 팔기 위해 음란성으로 화장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눈을 흘기지만 한자 색(色)의 어형(語形)에서 ‘후배위 성교 때 흥분하여 뒤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색’을 떠올리는 사람들만큼은 마광수에게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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