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9일 목요일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금기 깨는 ‘안드로기노스’

            skchai  201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2007년 문학과지성사, 김선우; 1970~ > 

할 금(禁), 꺼릴 기(忌), 금기(禁忌)라는 게 있다. ‘禁’은 나무 목(木) 두개가 합쳐진 수풀 림(林) 아래 제사상을 본뜬 보일 시(示)가 붙은 것으로서 애니미즘(Animism, 精靈崇拜)가 판치던 그 옛날 숲속의 정령들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글자로 보이고, 몸을 구부린 형상의 자기 기(己) 아래 마음 심(心)이 붙은 ‘己’는 스스로 싫어하고 꺼리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taboo’라고 하지만 그게 영어로 편입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메리엄 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에 따르면 1777년 영국의 탐험가이자 선장 제임스 쿡(James Cook)이 폴리네시아의 통가(Tonga)족이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할 때 특정한 행위나 물건을 꺼리는 것을 보고 처음 소개한 말 ‘tabu’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 서양사회에도 금기는 있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금기는 인류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생겨났고, 그것이 사회적 인정의 크기와 비례하여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게 사회인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섹스(sex)는 석가모니나 예수도 경계할 만큼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했던 바, 성적 문란은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매우 위험한 요소로 인식되었고, 그 만큼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져 금기가 많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금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욕주의의 첫 번째 경계 또한 섹스였고, 구약성서 창세기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처음 만든 후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했을 때까지는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부터는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여 무화과 나뭇잎으로 그곳을 가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음을 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계사회(母系社會)가 부계사회(父系社會)로 전이된 것도 섹스에 관한 금기 탓이 크다고 주장한다. 모계사회의 경우 신체 특성상 성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많은 남성들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병이 급격히 확산돼 종족 보존을 위태롭게 했고, 자연스레 섹스에 관한 여러 금기가 생겨나면서 부계사회로 전이됐다는 것이다. 

금기가 특정 사회의 제약의 일종이라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금기를 깸으로써 해방감을 맛보려고 한다. 이미 기원전 3세기 경 과두정치를 비판하다 노예로 팔려갔다가 아테네로 귀환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이 정치에의 뜻을 접고 후학 양성과 저술에 전념하던 시기에 집필한 ‘향연(饗宴)’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안드로기노스(androgynos)’ 이야기를 빌어 스승 소크라테스의 ‘에로스(Eros)론’을 소개한 것도 플라톤 나름대로의 인간해방 선언이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스어 ‘androgynos’는 ‘남성’을 뜻하는 ‘andro’와 ‘여성’을 뜻하는 ‘gynē’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서 남녀 양성(兩性)을 모두 갖춘 전인(全人)을 뜻하는데, 인간은 원래 ‘androgynos’였으나 신의 노여움을 사서 남(男)과 여(女)로 분리됐고, 이후 남녀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자 하는 욕망 ‘에로스’가 싹트게 됐다는 것이었다. 플라톤이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에 따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죽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아기의 출산으로 이어지는 바, 남녀 교합에 의한 아기의 출산은 추(醜)가 아니라 미(美)이며, 그런 육체적인 미의 추구는 자연스레 육체를 뛰어넘는 정신적 미의 추구로 승화되는데, 그런 경지에 이르면 아름답고 행복한 영원불변 이데아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른 바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말도 거기서 나왔다. 

김선우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시 ‘대관령 옛길’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 김선우(金宣佑; 1970- )도 한국사회가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여겨 금기 깨기에 나선 사람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소위 ‘좌파 운동권 출신’으로서, 지난 2000년 창작과 비평에서 펴낸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서 “나의 혁명이 몽환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나의 몽환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생각건대 내가 진실로 사랑한 것은 모든 생명이 품고 있는 독기였으니, 부디 이 시들이 세상의 소란에 독이 되기를 바란다”고 재천명한 이래 한진 중공업이나 쌍용 자동차 해고자 문제 등 노동운동에 동참하는 한편 정부 정책에 반대하여 4대강 및 제주 강정마을의 자연보호에도 큰 관심을 보이는 등 사회참여에 열성적인 것을 보면 한국 사회에 대해 꽤나 불만이 많은 듯하고, 젊은 여성 시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섹스를 시의 소재로 끌어들인 것도 섹스로 상징되는 생명력으로 억눌린 한국사회의 인간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김선우가 지난 2007년에 발표한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를 읽노라면 플라토닉 러브의 세계로 진입하는 ‘안드로기노스’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작품에 대해 “여래(如來)의 3밀(密)이 나에게 들고, 나의 3업(業)이 여래에게 들며, 여래의 3밀과 중생의 3업이 서로 상응하고 섭입(攝入)하는 무이평등(無二平等)의 경지” 즉 ‘입아아입(入我我入)’을 떠올리지만, 등단 이래 열심히 사회참여를 해오면서 여성의 아름다움과 생명을 천착(穿鑿)해온 김선우이기에 색(色)과 욕망(慾望)을 금기시하는 절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바, 이 작품 또한 순수하게 남녀간 교접의 절정(絶頂)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섹스의 노출을 금기시하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젊은 여성 시인이 섹스의 열락(悅樂)을 드러내놓고 노래했다는 사실 자체가 당돌함을 넘어선 큰 충격으로 다가오거니와, 자칫 외설로 흐르기 쉬운 남녀 교접의 절정을 개화(開花)에 비유하여 지극히 정갈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금할 수 없고, 여성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남성은 물론 온 세계를 포용하려고 시도하고 있음에 지금껏 김선우가 추구해온 시 세계가 절정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다. 남녀 하나가 되어 열락에 부르르 떠는 ‘안드로기노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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