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7일 금요일

서시(序詩) - 순수한 영혼의 순수한 부끄러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세상이 혼탁해져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그의 부끄러움이 그리워진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8년 ‘하늘과 바람과 시’, 尹東柱; 1917년-1945년>


찍이 맹자(孟子)는 군자(君子)의 삼락(三樂)을 말하면서 두 번째 즐거움으로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서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을 꼽았었다. 그런데 왜 하늘에 부끄러운 것은 ‘괴(愧)’이고 사람에 부끄러운 것은 ‘작(怍)’인가? 둘 다 마음 심(心)이 붙어 있으므로 부끄러움이라는 게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마음 심(心)에 령(靈)의 일종으로서 무시무시한 탈을 쓴 형상의 귀신 귀(鬼)가 붙은 ‘괴(愧)’는 영혼으로 느껴 오래오래 남는 부끄러움인 반면, 마음 심(心)에 ‘잠깐’ 또는 ‘잠시’의 의미로도 쓰이는 잠깐 사(乍)가 붙은 부끄러워할 작(怍)은 인간사회의 특정한 상황 또는 일로 인해 느끼는 한시적 부끄러움이라는 행간이 읽혀진다. 수신(修身)을 사회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맹자이기에 ‘괴(愧)나 직(怍)을 느끼지 않는 것을 군자의 두 번째 즐거움으로 꼽았음직도 하다. 

학창시절의 윤동주
부끄러움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의 하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오로지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시인들이 부끄러움에 주목하는 것도 그게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순수하고 겸손한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또 시라는 게 인간의 순수 감정을 천착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시인 자신의 순수함과 자신이 그려낼 수 있는 부끄러움의 깊이가 정비례하기에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순수한 자기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제시대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에서 태어난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1945년)가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기 직전인 1941년11월 20일 경 스물 네 살의 나이에 인생진로를 고민하면서 쓴 것으로 추측되는 ‘서시(序詩)’가 그렇다. 그 시가 꽃잎 지는 것만 봐도 눈물 흘리는 여고생에서부터 인생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들에게까지 두루 읽히면서 감동을 주는 건 그 시절 윤동주의 영혼이 그 만큼 순수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거니와 그가 일본 유학 중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 수감 중 옥사한 것도 그런 순수한 성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시’라는 제목은 윤동주 스스로 붙인 게 아니라 1948년 1월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시인 정지용(鄭芝溶)의 서문으로 이뤄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할 때 유고 시집에 수록된 작품 전체의 내용을 개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지만, 그게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해온 윤동주 시인의 삶을 개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을 쓸 당시 윤동주 스스로 붙인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야 물론 맹자의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렇다 치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고백이 너무 섬세하여 가슴이 뭉클해지거니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하는 대목에선 순수한 영혼에게서만 감지되는 숭고함마저 진하게 묻어난다. 

기실 윤동주처럼 철저하게 자아를 성찰한 시인도 드문 것 같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자화상(自畵像)’도 그 점을 잘 뒷받침해준다. 다음은 ‘자화상’ 전문.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 속에 있는 ‘한 사나이’가 윤동주 자신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 자신이 미워지고 가엾어져 도로 가서 들여다보는 행위야말로 끊임없는 자아성찰의 반복을 의미하는 바, 그런 자신을 그리워하는 윤동주이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영혼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때의 부끄러움이야말로 참으로 순수한 영혼의 순수한 부끄러움일 터, 시는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임을 재차 실감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