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Herbsttag(가을날)’ - 또 그 ‘때’가 왔다

보스턴 캠브릿지와 알스턴 사이를 흐르는 찰스 리버 사이드.  가을색이 완연하다.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을 다시 읇조려 본다.






















Herbsttag(가을날)

Herr①: es ist Zeit.② Der Sommer war sehr groß.③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④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⑤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주여①, 가을이 왔습니다.②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③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④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 

가 왔다. 무슨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주님이 재림하여 심판하는 때’를 떠올리겠지만 천만의 말씀, 가을이 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23.5˚나 삐딱하게 기울어진 지구 땅덩어리가 태양 주위를 돌기 시작한 이래 “태양의 황경이 180˚를 넘어서면서 태양이 적도를 통과하여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들어가는 때”를 ‘가을’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거창한 의미를 가지기에 ‘때가 왔다’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태양으로부터 약 1억 5000만㎞ 떨어진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의 궤적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가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낮과 밤의 기온차 또한 크게 벌어지고 과실이 무르익고 식물의 생장이 휴면기에 들어가기에 자고이래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을’을 뜻하는 영어 ‘autumn’의 뿌리도 라틴어 ‘autumnus’로서 ‘수확(收穫)’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영어 ‘fall’은 양분의 공급이 중단된 잎들이나 과실이 ‘떨어지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가을’이 ‘인생의 수확기’ ‘내리막길’ ‘후반부’ 등을 비유하는 데 쓰여 왔다는 건 가방 끈 짧은 사람들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맞다. 꼭 이맘 때 쯤이었으리라,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가 ‘가을날(Herbsttag)’을 쓴 것도. 그 ‘가을날’ 첫머리가 ‘Herr①’ 즉 ‘주(主)’로 시작하기에 모든 것을 주님에게서 구하고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역사 유구하고 인류 보편적이라는 증거가 또 하나 나타났다고 반색하겠지만 그 또한 만만의 말씀, 여기서의 ‘주’는 기독교의 신을 특정한 게 아니라 ‘대자연’ 또는 그것을 신격화한 ‘조물주(造物主)’로 해석하는 게 옳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그 작품을 쓸 무렵의 릴케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 등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에 반발하여 과학적 이성적 태도를 취했었다는 사실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 

‘가을날’ 첫 번째 행의 ‘groß’도 이 작품이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③? 무슨 자다가 일어나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서양문화=기독교 문화’라고 수박의 겉만 핥아온 한반도 사람들은 하느님과 예수를 의식하여 ‘groß’를 ‘위대하다’라는 의미로만 해석해왔지만, 기실 ‘groß’는 ‘great’ 뿐만 아니라 ‘big’ ‘magnificent’ 등의 의미도 지니는 바, 이 작품에서는 ‘굉장하다’라는 의미로 풀이해야 문맥이 통한다. 술 퍼마시고 중언부언하지 않는 한 여름을 위대하다고 칭찬해놓고 가을을 노래할 시인은 없을 테니까. 찌는 듯한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소나기에 오장육부가 젖고 파리와 모기가 평화를 물어뜯던 여름은 참 지긋지긋했었으나, 그로 인해 만물이 생장하기에 차마 투덜거릴 수가 없어서, ‘참 굉장했었다’라는 반어법(反語法)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es ist Zeit.’②를 ‘가을이 왔다’고 번역한 것도 엉터리 중의 엉터리, 영어로 바꾸면 ‘It's Time’으로서, 예수가 재림하여 심판해주기를 고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상용 어구를 풍자하여 ‘드디어 때가 됐다(왔다)’고 너스레를 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신의 은총 속에서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작품”이라고 떠벌이는 것이야말로 코미디의 클라이막스, 이 작품의 주제는 니체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이빨이 흔들리도록 곱씹었던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不安)과 고독(孤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④’라는 셋째 연 첫 행에 함축돼 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 즉 실존으로서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인간’을 의미하며,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는 불안과 고독을 인간이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어줍잖게 종교 따위에 귀의하지는 않겠다는 실존 선언이며, 그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쓰겠다⑤’는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을 앞두고 가을바람이 나뭇잎들을 떨어뜨려 이리저리 몰고 다닐 때 그 나뭇잎들과 함께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존선언이야말로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조물주에 대한 가장 치열한 반항이 아닌가?! 

1900년경의 릴케
릴케를 독일시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낯간지러운 오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일어권 시인’이라고 해야 옳다. 1875년 지금은 체코로 불리는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청년기 이후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반시대·반통속적인 줏대를 길렀고, 뮌헨서 공부하고 독일어로 말하고 썼지만 독일 지배 하 체코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단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1899)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F.A.R. 로댕에게서 조각을 배우는 등 국적이나 민족주의에 연연하지 않았었다. 개개의 형상에 의지하였던 생의 불안을 존재적 문제로 다시 수용하면서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를 방황하다가 피카소의 그림이라든지 발레리의 시와 접한 후 10여년에 걸쳐 대표작 중의 하나인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장시(長詩) ‘두이노의 비가’는 ‘가을날’의 해설판이자 완결판, 릴케 자신이 1912년 1월 중순 어느 날 북풍이 몰아치는 두이노성 절벽을 걸어내려 가다가 사나운 바람소리와 물결소리 속의 목소리 듣고 길 위에서 받아썼다는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서열 가운데 그 누가 들어줄 것인가?”로 시작되는데, 천사 조차도 들어주지 않는 인간의 고독을 천착하고는 “삶과 죽음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만 인간은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생 고독과 불안에 시달렸을망정 ‘예수님’이나 ‘하느님’은 찾지 않았고 죽음 또한 주로 스위스 시에르 근처의 뮈조트 성(城)에서 지내면서 발레리의 작품을 번역하던 중에 담담하게 맞이했다고 전한다. 

자, 어쨌거나 이제 때가 됐다. 아직은 따사로운 햇살이 ‘마지막 과실’들을 완성시킴으로써 포도주의 단맛이 더 한층 깊어지겠지만, 머잖아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창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런 가을밤이 더욱 더 길어지면서, 이제 집짓기를 포기한 사람이 잠자지 않고, 읽고 , 그리고 긴 편지를 써야할 때가 왔다. 더러는 해질 무렵 거리의 낙엽이 되어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삶이 뭔지, 사는 게 왜 이다지도 쓸쓸한지, 피할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이라면 어찌 부둥켜안아야 하는 건지를 곱씹고 또 곱씹으리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창시절에 처음 읽었던 릴케의 ‘가을날’을 다시금 해석하면서.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추풍인(秋風引)-가을 타는 남자의 술래잡기


秋風引(추풍인)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  어느 곳에까지 가을바람이 왔나? 
蕭蕭送雁群(소소송안군)  소소 불어 기러기 떼 보내더니 
朝來入庭樹(조래입정수)  아침에 정원 나무를 흔들어대는데 
孤客最先聞(고객최선문)  외로운 나그네가 제일 먼저 듣네 

                                               <유우석(劉禹錫); 772년-842년> 

월과 함께 술래잡기 놀이하는 것 같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셀 동안 아니 그것도 귀찮으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따위의 열 글자짜리 구절을 외울 동안 살금살금 다가와 뒷등을 탁 치고 달아나는 놀이 말이다. “이젠 진짜 가을이구나” 하는 말을 그치자마자 낙엽들이 뒷등을 탁 치고 달아나는 것 같다. 10월 들어 두 번째 맞은 휴일 오후, 낙엽에게서 등을 얻어맞은 분함을 풀기 위해 한시(漢詩) 모음집을 꺼내 두 눈 꼭 감고 점 보듯이 아무 데나 펼치자 당(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술래놀이를 하느냐?”는 듯이 허허로이 웃는다. 가을바람이 어디까지 왔느냐고? 외로운 이민자의 귓전에까지 근접한 것 같다. 소소(蕭蕭)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의뭉 떨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기실 그 소소 바람 소리를 제일 먼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맨 처음 이사 왔을 때 값싼 코압(Co-Op) 아파트일망정 수목이 울창한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이 있는 것을 망외의 기쁨으로 여겼건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갈수록 그게 형장(刑場)으로 바뀔 줄이야! 아무리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어도 가을은 왔고, 매해 여름 무성한 욕망(慾望)으로 하늘을 덮던 플라타나스 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때마다 자포자기(自暴自棄)와 미련이 교차하면서, 서늘한 가슴앓이가 도지곤 했다. 분수대 주변에 심겨진 팬지들의 꽃잎도 말라비틀어지고, 관리소 직원들을 약 올리듯이 웃자라던 잡초들 또한 시큰둥하게 누워 텅 빈 하늘이나 바라보고,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온 듯 중국집 배달부가 이 쪽 저 쪽을 오가며 아파트 이름을 확인할 때 가난한 이민자의 권태로운 일상(日常)이 문득 초라해지면서 내 것이 아닌 듯 서먹서먹해지는 것이었다. 

그랬다. 가을은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어도 막무가내로 왔다. 잉글리시 가든을 뒤덮고 있던 초록이 커피색으로 짙어갈 즈음이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을 준비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건 나무들도 마찬가지, 소소 바람이 불면 잎의 양분이 줄기 쪽으로 옮겨가 엽록체가 분해되어 녹색을 잃고, 그와 동시에 잎자루 기부(基部)에 이층(離層)이 형성되고, 이층 세포의 접착력이 약해지면 잎이 탈락하게 되는 것을 골백번도 더 경험했건만 매번 처음 겪는다는 듯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 짝이 없다. 나이 먹을수록 남성 호르몬이 늘어났는지 대범해져가는 아내는 “나무가 알기는 뭘 알겠어요? 감정 이입이 지나친 거 아닌가요?” 하고 배시시 웃지만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소소 바람 불 때마다 서걱이는 나뭇잎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지 끝에 매달려 있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모양을 그저 그런 자연(自然)으로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다. 

하긴 자연이 그렇고,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면,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지난 여름 동안 같은 나ant가지에 매달려, 사랑을 속삭이고, 우정을 나누며, 꿈과 희망을 키워왔으면서도 안녕이란 말 한마디 없이 미련과 자포자기로 헤어져버리는 무정(無情)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 미련과 자포자기? 그러고 보니 참 익숙한 한 쌍의 노리개 같다. 그것들은 이룬 것도 없이 아랫배의 기름기만 부풀려가면서 달력의 숫자들을 징검다리 삼아 세월을 건너뛰고 있는 중년남자가 손바닥 피를 잘 돌게 한답시고 주물럭거렸던 한 쌍의 호두알 같은 것이었다. 누구는 낙엽을 태우면서 풍요(豊饒)와 윤택(潤澤)의 기억을 떠올렸다지만 뭔가 이룩해보려고 항상 쫓기듯이 살아온 이민자에겐 차마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이 실토한다. 그래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부끄러움 하나, 어느 덧 ‘가을을 타는 남자’가 돼버렸다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다. 

엊그제 서울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거기서도 미련과 자포자기의 낙엽들이 어지러이 엇갈리고 있었다. 모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는 친구는 “회사에서 용도 폐기당할 것 같다. 이제 떨어져나갈 날이 머지 않았다”며 술에 절어있었고, 사업에 성공하여 돈 좀 벌었다는 친구는 제까짓 놈이 늙으면 얼마나 늙었다고 청춘(?)을 되살리겠다며 열댓살 연하의 아가씨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다가 가정파탄과 부도를 맞았다고 했고, 학창 시절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구한 날 데모만 하던 친구가 아직도 국회의원 배지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차기 총선이야말로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며 정계 실력자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인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왜 그다지도 서글프게 전개되는 것일까? 손에 든 커피잔이 온기를 잃어간다. 뜨거운 것이 식어가는 것처럼 허망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게 아닌데...왜 이렇게 가을을 타는지 모르겠다. 어느 곳에까지 가을바람이 왔느냐고? 가슴 속 깊숙한 곳에까지 불어든 것 같다. 

상해고적에서 펴낸
유우석 전집 표지
중국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년-842년)은 꽤나 자존심이 강했던 것 같다. 강서성. 오군(吳郡) 출신으로서 한(漢)나라 때 중산(中山)의 정왕(靖王) 유승(劉勝)의 자손임을 자칭했었지만 기실은 흉노족의 후예로 조상이 북위(北魏) 때 낙양(洛陽))으로 옮겨왔다는 게 정설, 혁신을 주장하던 왕숙문당(王叔文黨)에 가담했다가 805년 9월에 연주(連州 자사(刺史)에 좌천되었다가 10월에 다시 낭주(朗州) 사마(司馬)로 옮겨졌지만 시를 쓸 때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었다. 매해 가을이면 울적해져서 계집아이처럼 온갖 청승을 다 떠는 중년의 이민자와는 달리 아무리 불우한 처지에 처하더라도 의젓하고 굳건한 자세를 견지했었다. 그의 시작(詩作)들이 ‘담백하면서도 오묘한 맛’을 내는 것도 그런 자존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말년에 시를 주고 받으며 교유했다는 백거이(白居易)가 감상(感傷)으로 시를 썼다면 유우석은 절제(節制)로 시를 썼다. ‘추풍인’도 그런 류의 하나다. 가을이 되어 심사가 처량해지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소소 불어 기러기 떼 보내고’라든지 ‘아침에 정원 나무를 흔들어대는데’로 대신하는 절제가 돋보인다. ‘가을바람이 어디까지 왔나?’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외로운 나그네가 제일 먼저 듣는다’라고 남의 말 하듯 자신의 속내를 슬그머니 내비치는 유우석에게 한 수 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