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 인생, 그 아쉬운 다기망양


맨해튼과 퀸즈 사이를 흐르는 이스트 리버 사이드 공원의 갈림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임의 끝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 인생의 갈림길에서의 선택 또한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그 중 하나를 택하기로 하고는, 오랫동안 서서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한 길을 가능한 한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그 길이 굽어서 꺾여 내려간 데까지,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그리곤 그 길 못지않게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더 낫다고 여길만한 이유도 있었겠지요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그 길은 더 풀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적었으니까요.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그 길을 다니다보면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 길 또한 다른 길과 다름없을 것이지만.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그 날 아침 똑같이 뻗어있던 그 두 갈래 길에는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아, 나는 또 다른 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뒀었죠!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어떤 길이 어떤 길로 이어질 지도 모르기에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말이죠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난 한숨을 쉬며 털어놓을 겁니다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먼 먼 훗날 어디선가 말이에요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나는...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나는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고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그로 인해 모든 게 달라졌다고.

                                                                    <1916년, Robert Lee Frost; 1874년∼1963년>

기망양(多岐亡羊),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렸다? 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 양자(楊子)는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이웃이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하여 동네방네 뒤지면서 호들갑을 떨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갈림길이 너무 많아 양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탄식해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어디 학문뿐이랴. 단언컨대 인생의 갈림길에서도 어느 길로 가야 행복의 양을 찾을 수 있을지 미리 아는 사람은 없다. 왜? 한번 물레방아를 돌린 물은 다시는 그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한 사람은 다시는 그 갈림길로 되돌아올 수 없으니까. 고집을 부려 문과대에 진학하지 않고 아버지 주장대로 법대나 의대에 지원했더라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으로 이민 오지 않았더라면?....참으로 바보 같은 가정(假定) 화법이지만 그런 가정법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어쩌랴. 인생에는 연습이 없고 장기나 바둑처럼 한수 물리지도 못하는 것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따라 오늘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결과론에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로버트 프로스트
로버트 L.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가 1916년에 발표한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도 그런 결과론에 따른 아쉬움과 회한을 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프로스트는 ‘풀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적은 길’를 선택했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을 걸으면 그 만큼 실패할 확률이 작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이 덜 다니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한숨은 왜 내쉬나? 프로스트 평론가들은 그걸 ‘시적(詩的) 아이러니’라고 포장하지만 기실은 어느 길을 선택했더라도 먼 훗날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라는 프로스트의 의뭉한 재치를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실제로 프로스트는 1925년 한 편지에서 “그 ‘한숨(a sigh)'은 내가 걸어온 길을 후회한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익살”이라고 밝혔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는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후회한다는 것을 프로스트는 절감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의 삶 자체가 한숨덩어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현대 미국 시인 중 가장 순수하고 목가적이고 고전적인 시인”으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 불행하고 외롭고 슬픈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살 때 세상을 떴고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의 어머니 또한 유방암을 앓다가 1900년에 심장병으로 죽었으며, 누이동생 지니를 그의 손으로 정신병원에 보내야만 했다. 또 여섯 자녀 중 큰 아들 엘리어트는 8세 때 콜레라로 사망, 셋째 아들 캐롤은 38세 때 자살, 다섯째 딸 마조리는 29세 때 출산 후 부작용으로 사망, 여섯째 딸 엘리너 베티나는 낳은 후 3일만에 사망...여섯 자녀 중 유일하게 이런 저런 중병을 앓지 않았던 둘째딸 레슬리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넷째 딸 얼마만 프로스트보다 늦게 죽었다.

생활도 그리 유복했던 편이 아니었다.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사망 후 생활고로 인해 동부 뉴잉글랜드로 전 가족이 이주하여 할아버지가 사준 농장을 일궈야 했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보조, 신문배달, 전구(電球) 공장 등지에서 품을 팔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트머쓰대에 들어갔으나 두 달 만에 때려치운 것도 가정형편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스무 살 때인 1894년 ‘뉴욕 인디펜던트’지에 처녀작 ‘나의 나비; 어떤 애가’를 기고하여 원고료로 15달러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뻐서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엘리너 미리엄 화이트에게 청혼했지만 엘리너가 “우선 대학 졸업장부터 따고 나서 결혼 이야기를 하자”고 조건부 딱지를 놨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결국 프로스트는 하버드에서 2년 공부한 후에야 결혼에 성공한다). 프로스트가 유달리 전원에 집착하고 또 시작에 몰두한 것도 그런 불행한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 프로스트였기에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볼 때마다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을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 ‘한숨덩어리’를 시로 다듬으려고 애썼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 ‘The Road Not Taken’같은 명시가 탄생한 게 아닌가 싶다.

길이 사람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길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런 갈래 길에서는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먼 훗날 한숨을 내쉬는 게 인지상정이며, 그런 인지상정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아름답고 순수한 감성이라는 프로스트의 따뜻한 격려를 상기하면서 ‘The Road Not Taken’을 다시 읽어보라. 현실이 고단할수록 지금껏 걸어온 길을 돌이켜볼 때마다 아쉬움과 후회의 안개가 짙게 깔리겠지만 먼 훗날 다시 돌이켜볼 때는 가도 가도 삭막하기만 한 이 세상의 여로에서는 그 또한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으리라.

댓글 2개:

  1. 번역도 훌륭하고 시에 담긴 깊은뜻의 설명 정말감사합니다.
    많은도움 받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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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는 게 뭔지 생각할 때마다 읽어보는 시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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