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수선화(Daffodils) - 외로운 인생의 나르시시즘(narcissism)

보스톤 캠브릿지의 한 쇼핑몰 정원에 활짝 핀 수선화.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수선화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Daffodils(수선화) 


I wander'd lonely as a cloud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습니다.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계곡들과 구릉들 위로 높이 떠다녔지요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그 때 문득 한 떼의 무리를 봤습니다 
A host, of golden daffodils;                         군대처럼 많은 황금빛 수선화를요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호숫가, 나무들 아래서,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미풍에 팔랑팔랑 춤을 추고 있더군요 

Continuous as stars that shine                    빛나는 별들처럼 끊임없이 죽 이어져 있었지요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은하수 위에서처럼 반짝거렸죠, 
They stretch'd in never-ending line               끝없는 줄을 이루며 뻗어나가 있었습니다 
Along the margin of a bay :                         산 속 분지를 따라서 말입니다: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한 눈에도 1만송이는 보였습니다,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머리를 쳐들고 경쾌하게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그것들 말고 다른 물결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환희의 물결로는 단연 돋보였습니다: 
A poet could not but be gay,                      그 어떤 시인도 즐거울 수밖에 없었죠, 
In such a jocund company:                        그런 명랑한 어울림 속에서는요: 
I gazed-and gazed- but little thought           나는 응시했지요-또 응시했습니다-그러나 별 생각 없었습니다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  풍성한 그 쇼가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에 관해서는요 :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이따금, 긴 의자에 누워 있을 때면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허전하거나 시름에 잠길 때면,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그것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립니다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                    그건 혼자 있을 때의 더 없는 행복이지요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그러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춥니다.
                                                       
                                    <1807년 ‘Poems, in Two Volumes’, William Wordsworth; 1770년-1850년> 

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애(自己愛)’ 또는 ‘자기도취(自己陶醉)’라고 번역되는 그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요정 에코(Echo)의 사랑을 거절한 아름다운 청년 나르시서스(Narcissus 또는 Narkissos)가 그 벌로 어느 날 연못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됐는데, 그게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가 수선화(Narcissus)로 변했고, 거기에 착안한 정신분석학자들이 ‘자기애’ 또는 ‘자기도취’라는 의미로 ‘narcissism’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흔히 ‘나르시시즘’이라고 하면 공주병에 걸린 아가씨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인격적 장애의 한 증상으로 간주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때때로 ‘나르시시즘’의 증상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인간은 유아기에는 본능이나 관심을 주로 자기 자신에게 쏟다가 성장하면서 그 본능이나 관심을 어머니나 누이 또는 이성으로 대상을 확대시켜 나가는데, 심각한 배신이나 결별로 그 대상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게 되면 유아기나 청소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형태로 되돌아가게 된다”고 주장했었다. 고독에 빠진 사람들이 극심한 자기연민 또는 자기도취에 쉽게 빠져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워즈워드 생가 스케치와 2012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워드워드 시집
맞다. 쓸쓸하고 외로운 인생의 위안의 뿌리는 자기도취에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과는 일정 거리를 둔 시인들이나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빠져드는 것도 그런 자기도취의 일종으로 보이거니와 1770년 잉글랜드 북서부의 아름다운 호수 마을 코커마우스(Cockermouth)에서 다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으나 1778년 어머니가 죽고 법률가였던 아버지 또한 1783년에 세상을 떠나 매우 고독한 소년기를 보냈던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년)도 그런 기질이 다분했던 것 같다. 워즈워드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수선화(Daffodils)’에 대해서도, 많은 평론가들은 ‘자연과의 교감’이 어쩌고저쩌고 ‘영국 낭만주의 시의 꽃’이라느니 “영미(英美) 시문학사상 음악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라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지만, 시의 첫머리 “I wander'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에서 보듯 인생의 계곡들과 구릉들 위로 구름처럼 떠돌아야 했던 워즈워드의 생의 고독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 것 같아 눈이 흘겨지거니와, 워즈워드가 사는 게 공허하고 우울할 때마다(In vacant or in pensive mood) 언젠가 보았던 수선화들을 눈앞에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 되레 시의 감흥을 반감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워즈워드는 말년에 더햄과 옥스퍼드 대학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계관시인의 영예를 얻기도 했지만 평생 외로운 사람이었다. 스무 살 시절인 1790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고 프랑스 여자 아네트 발론(Annette Vallon)과 사랑에 빠져 1792년 딸을 출산하기도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혼자 영국으로 돌아와 역시 시인이었던 한 살 아래 여동생 도로시 워즈워드(Dorothy Wordsworth)를 평생 동무삼아 살면서 시작에 몰두했었다. 1807년 출간된 ‘두 권 책속의 시들(Poems, in Two Volumes)에 실린 ‘Daffodils’ 또한 1802년 봄 도로시와 함께 거닐다가 우연히 발견한 수선화 군락지를 보고 1804년에서 1807년 사이 작품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작품의 1,2,3 연은 과거 시제인 반면 마지막 4연은 현재 시제인 바, 과거의 즐거웠던 회상으로 현재의 공허함이나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이 시를 쓸 당시 또한 그리 명랑하고 기쁜 기분은 아니었다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구름이 되어 계곡과 구릉 위를 높이 떠다니면서 수선화의 군무(群舞)를 목격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시적 상상력의 산물, 많고 많은 꽃들 중에서 ‘narcissism’라는 말의 뿌리인 ‘수선화(Narcissus)’를 시의 소재로 택한 것도 묘한 우연(?)이고 보면, 워즈워드 역시 자기도취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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