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5일 토요일

십자가-시인 윤동주의 순결한 신앙고백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敎會堂) 꼭대기
십자가(十字架)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鐘)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1945년>

회라는 말의 어원을 뒤적거려보면 그리스어의 ‘에클레시아(ekklesia)'와 ’키리아케(Kyriake)'가 등장한다. 에클레시아는 “시민의 집, 의회”를 의미하며, 키리아케는 “주님에게 속한다”는 뜻으로 독일서는 지금도 교회를 ‘키르헤(Kirche)’라고 부른다. 초기교회는 이 말을 유대교와 이방종교로부터 구별하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답하는 특수집단”이란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리스도를 주(主)로 모시는 집단인 교회는 그 발생 초기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등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모이는 공동체였으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민족 단위의 교회 혹은 전체적인 공동교회로 그 성격이 변하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리스 정교회,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 등으로 분화되었다가, 다시 민족적이고 지역적인 환경과의 연관 속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교회로 발전해왔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발라케즈가 1632년에 그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모든 교회의 가장 높은 곳에는 십자가(十字架)가 달려 있다. 어설픈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를 기독교의 신성한 전유물로 여기지만 천만의 말씀, 십자가는 예수 이전 고대부터 만들어졌고 로마 제국에서는 십자가형(Cruxification)에 쓰이던 사형 틀이었다는 상식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세로는 예수와 예수를 믿는 신자를 연결하고 가로는 신자와 신자를 연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을 인정받으려면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건 이후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기독교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먼저 적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입만 벌리면 ‘믿습니다’를 외치기보다는 가슴에 손을 얹고 “예수처럼 타인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나?”하고 자문해보는 것이 기독교 신자의 첫걸음인바,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아 놓은 것 또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이타적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만 오라는 표시로 받아들이면 틀림이 없다. 

한국에서 개신교 신자 비율이 처음으로 불교를 앞지른 것은 지난 97년이었다. 당시 한국갤럽이 전국의 18세 이상 남녀 1천6백13명을 대상으로 ‘제3차 한국인의 종교실태와 종교의식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신교인의 비율이 20.3%로 나타나 18.3%에 그친 불교신자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었다. 개신교인 비율은 84년 같은 조사에서 17.2%, 89년에는 19.2%로 불교에 비해 1.6~1.7% 포인트 뒤졌었으나 97년 조사에서 2% 포인트나 앞질러 국가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명실공이(?) ‘기독교 국가’가 됐다. 한국인 대다수가 한국의 어느 거리에서든 교회 십자가를 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 ‘기독교 국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왕국’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뉴욕 메트로 지역 일원의 한인 교회 수는 차고에 십자가 붙여놓고 목사 부부가 찬송가 부르는 개척교회에서부터 신도수가 1만여명에 육박하는 대형교회까지 줄잡아 8백여개, 신학교가 30여개, 관련 언론기관이 10여개, 수양관이 20여개다. 왜 교회 내에서 이간질을 하느냐며 목사가 성가대 지휘자의 멱살을 잡든 말든, 팔뚝 빠지도록 손발톱을 다듬어 헌금을 하면 그 헌금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TV방송에 내보내든 말든, 가게 속여 팔아먹었다며 집사와 장로가 언성을 높이든 말든, 장로가 헌금을 슬쩍 착복했든 말든, 적어도 겉으로는 가장 믿음이 돈독한 소수계로 손꼽히고 있다. 

시인 윤동주
어쨌거나 할렐루야? 천만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집에 하나씩은 모셔두고 있는 십자가가 기실은 사람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이고 날마다 그 형틀을 바라보면서 이웃에 사랑을 베풀 것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려고 애썼던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년~1945년) 또한 긴 한숨 내쉬면서 고개를 가로 저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부농으로 독실한 기독교 장로였던 조부 윤하현이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明東村)에 정착한 연고로 어린 시절 윤하현의 손에 이끌려 명동촌의 명동교회에 다녔던 윤동주는 기도하듯 자기를 성찰하는 시를 썼었다. 명동교회 시절을 회상하며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십자가’도 그 중 하나다. 쫓아오던 햇빛이 높은 첨탑 꼭대기의 십자가에 걸렸다는 감각적 표현도 신선하지만, 예수를 인간적으로는 ‘괴로웠던 사나이’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으로는 ‘행복(幸福)한 그리스도’로 묘사하고 있음에 기독교리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었다는 칭찬이 아깝지 않고,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겸손하면서도 결연한 신앙고백으로 마무리 짓고 있음에 윤동주가 십자가의 의미를 제대로 깨쳤던 진짜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겸손한 내면의 성찰이 그의 작품의 주조를 이뤘던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믿는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기독교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왜곡된 현실을 반성해야 한다. 윤동주의 ‘십자가’를 신자들 돈 뜯어 키운 교회를 주식회사처럼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한국의 목사들에게 읽어주고 또 읽어주고 싶다.

2017년 3월 20일 월요일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 1- 페미니스트 시인이 본 ‘남자의 좆’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 1


강남의 술집은 음습하고 황량했다
얼굴에 ‘정력’을 써붙인 사람들이
발정한 개처럼 낑낑대는 자정,
적막강산 같은 어둠 속에서
여자는 알몸의 실오라길 벗었다
강남 일대가 따라 옷을 벗었다

아득히 솟은 여자의 유방과
아련히 빛나는 강남의 누드 위로
당당하게 
말좆 같은 뱀이 기어올랐다
소름을 번쩍이며
좆도 아닌 것이
좆 같은 뻣뻣함으로
여자의 젖무덤을 어루만지고
강남의 목아지를 감아 흐느적이고
여자의 입에 혀를 널름거리고
강남의 등허리를 기어내리고
태초의 낙원
여자의 무성한 아랫도리에 닿아
독재자처럼 치솟은 대가리를
강남의 아름다운 자궁에 박았다
여자는 나지막한 비명을 지르고
강남의 불빛이 일시에 꺼졌다

적막강산 같은 무덤 속에서
해골뿐인 남자가 비루하게 속삭였다

뱀은 남자의 좆이야
이브의 유혹도 최초의 좆이었지

해골들이 하하 쳐드는 술잔에
뱀의 정액이 넘쳐 흘렀다
도처에 페스트가 들끓고 있었다
강남의 흡혈귀가 조용히 웃었다

놔먹인 땅에 이제 칼과 창이 필요했다
아무데나 기어드는 뱀의 대가리에 
휙 휙 내리치는 해방의 칼
하얗게 빛나는 흡혈귀의 아가리에
쭉쭉 꽂히는 자유의 죽창

                     <‘지배문화, 남성문화’ 제4호(1988). 고정희(高靜熙: 1948~1991)>

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아마데우스’로 두 번이나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밀로스 포먼 감독이 연출한 영화 ‘국민 대(對) 래리 플린트 소송’(The People vs. Larry Flynt)에서 저질 포르노 잡지 ‘허슬러’로 떼돈을 모은 주인공 래리는 말한다....살인은 불법이다. 그러나 살인 장면을 찍은 사진을 뉴스위크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섹스는 누구나 하는 합법적인 행위이지만 그걸 잡지에 실으면 감옥에 간다. 섹스와 살인, 어느 게 더 나쁜가?...굳이 래리 플린트의 교묘한 항변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포르노처럼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드물다. 포르노는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뒤쪽 절반을 잘라낸 말로 “인간의 성적 행위의 사실적 묘사를 주로 한 문학·영화·사진·회화”를 말한다. 어원이 “창녀(porno)에 관하여 쓰인 것(graphos)”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pornographos’인데서 보듯 처음엔 호색문학(好色文學)만을 의미했지만 영화나 사진 등으로 개념이 확산되면서 ‘obscence’ 내용을 담은 것들을 총칭하게 됐다. ‘obscence’은 ‘scene(무대) 밖의 것’ 즉 무대에서는 보일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추잡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건 옛날 이야기, 성 해방시대가 도래한 지금 포르노를 ‘더럽고 추잡한 것’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은 줄어든 반면 나름대로의 효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에로틱한 심상(心像)을 야기함으로써 심리적 최음제 역할을 한다든지, 가상의 성욕 충족으로 성범죄를 감소시킨다든지, 날이 갈수록 포르노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추세다. 1968년 미국서 19명의 권위자와 20명의 스태프로 ‘외설과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위원회’를 발족시켜 “성에 대한 흥미는 극히 당연한 것으로 건강에도 이로우며, 포르노그래피 문제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성에 대하여 보다 솔직하고 대범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것도 그 같은 추세가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198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고정희 시집
'이 시대의 아벨'
섹스에 관한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아직도 이중적인 것 같다. 내가 하면 순결한 로맨스, 남이 하면 더럽고 추잡한 짓, 시인들 또한 이중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민주화가 막 꽃 피기 시작한 것과 맞물려 페미니즘(feminism)의 물결이 거세게 일던 1980년대 여성 시인들이 섹스를 여성 수탈의 상징으로 매도한 것도 그런 이중적 태도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전남 해남 출신으로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YWCA 간사와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가정 법률 상담소 출판부장 등을 지내면서 여권신장운동에 앞장섰던 시인 고정희(高靜熙: 1948~1991)도 그런 ‘부작용’을 전혀 눈치재치 못했던 것 같다. 고정희가 1988년 ‘지배문화, 남성문화’ 제4호에 발표한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 1’를 보면 여성에게 있어서 섹스는 천형 또는 저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신학대학에서 공부한 기독교 성경의 영향 탓을 감안하더라도, 통상의 섹스라는 게 남녀 쌍방의 합의(?)하에 이뤄진다는 것을 잠시 까먹었다는 듯이, 싫든 좋든 인류는 섹스를 통해 번식한다는 사실은 도외시한 채, 남성의 쾌락추구로만 매도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에만 치우친 나머지 객관적인 균형감각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페미니즘의 본질을 남성비하나 남성공격으로 착각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섹스를 탐하는 남성을 ‘발정하여 낑낑대는 개’로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 남성의 성기를 ‘말좆 같은 뱀 대가리’에 비유하면서 “아무데나 기어드는 뱀의 대가리에/ 휙 휙 내리치는 해방의 칼/ 하얗게 빛나는 흡혈귀의 아가리에/ 쭉쭉 꽂히는 자유의 죽창”이라고 마감하고 있음에 남성에 대한 섬뜩한 적개심마저 느껴진다. 음습하고 황량한 강남의 술집에서 섹스를 거래하는 인간들이 비루할 따름이지 섹스 자체가 원래 비루한 것은 아니잖은가?! 에덴의 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가 금단의 열매를 먼저 따먹은 것은 아담이 아니라 이브였고,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도 금단의 열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걸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신학대학 출신 시인이 섹스를 더럽게 즐기는 사람들보다도 섹스 자체를 죄악시한 데 대해서는 실소가 머금어진다. 

여자가 ‘남자의 좆’을 언급하면 페미니즘 운동이 되고 남자가 ‘여자의 xx’를 입에 올리면 외설로 받아들였던 당시 한국사회의 수준도 낯간지럽다. 고정희 시인이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 1’를 발표하고 나서 3년 뒤쯤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 사고로 작고했던 1991년 연세대 국문과 교수 마광수가 주인공 ‘나사라’가 대학교수 ‘한지섭’과 음란(?)한 성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의 여성잡지 연재소설을 단행본으로 묶어냈다가 검찰에 구속된 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연세대 교수직에서도 쫓겨났던 필화사건을 떠올리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에서 “성난 남근이 내 팬티를 뚫는다. 아니 뚫는 게 아니라 팬티가 마치 콘돔처럼 남근을 감싸고 나의 성기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팬티가 주는 이질감 때문에 더욱 흥분한다”고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은 음란외설이고 고정희가 “좆도 아닌 것이/ 좆 같은 뻣뻣함으로/ 여자의 젖무덤을 어루만지고/ 강남의 목아지를 감아 흐느적이고/ 여자의 입에 혀를 널름거리고...여자의 무성한 아랫도리에 닿아/ 독재자처럼 치솟은 대가리를/ 강남의 아름다운 자궁에 박았다/ 여자는 나지막한 비명을 지르고/ 강남의 불빛이 일시에 꺼졌다”고 읊은 것은 페미니즘이라고 포장했던 평론가들의 이중적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1994년 일본에서 번역·출간된 ‘즐거운 사라’는 일본에 소개된 한국 소설들 중에서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가운데 일본 언론과 비평계는 “여성의 주체적 프리섹스를 옹호한 한국 최초의 진정한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칭찬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희를 “한국 문단에 페미니즘의 꽃을 피운 시인”이라고 추켜세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즐거운 사라’를 단순한 음란소설로 규정하면서 여성을 비하했다고 호되게 비난했었다. 

화가가 그린 누드화를 보고 성욕을 느끼면 포르노가 되고 아름다움을 느끼면 예술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마찬가지로 시 감상에 관한 한 시는 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독자의 것이라는 상식 아닌 상식도 다시 곱씹혀진다. 고정희는 시인보다는 페미니스트로서 더 큰 성공을 거뒀던 것 같다. 여성운동가로서의 성취는 존중하지만 시인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가 않다는 말이다. 고정희의 ‘뱀과 여자―역사란 무엇인가 · 1’ 또한 여러 번 읽어봐도 성욕은 느껴지지 않으므로 포르노는 아닌 것 같고, 기독교 성경 창세기 한 부분을 어설픈 페미니즘으로 풀어쓴 것처럼 보이는 바, 래리 플린트에게 물어봐도 “‘좆도 아닌 것이/ 좆 같은 뻣뻣함으로’? 포르노도 아닌 것이 포르노 흉내를 냈다”고 고개를 가로 저을 것 같다. 고정희가 여성운동과 시작(詩作)을 분리했더라면 더 훌륭한 여성운동가로서의 족적을 남기고 더 훌륭한 시인으로서의 작품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참고로, 고정희 시인의 시세계 일람을 위해 시집들을 발간연도 순으로 정리해 둔다. 

1979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평민사
1981 <실락원> 인문당
1983 <초혼제> 창작과 비평사
1983 <이 시대의 아벨> 문학과 지성사
1986 <눈물꽃> 실천문학사
1987 <지리산의 봄> 문학과 지성사
1989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창작과 비평사
1989 <Sister's We Are the Path and the Light> 둥지
1990 <광주의 눈물비> 동아
1990 <여성해방출사표> 동광출판사
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 들꽃세상
1991 <뱀사골에서 쓴 편지> 미래사
1992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창작과 비평사(유고시집)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차안(此岸)과 피안(彼岸) 경계에 서서

3월 중순인데도 뉴욕 일원에 폭설이 내려 거리마다 인적이 끊겼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피안처럼 느껴진다.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Whose woods these are I think I know.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아는 것 같기도 하네. 
His house is in the village though; 
그 사람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He will not see me stopping here 
그는 내가 여기 멈춰 선 것을 보지 못하리라
To watch his woods fill up with snow. 
그의 숲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네.

My little horse must think it queer 
내 작은 말은 기이하게 생각하겠지
To stop without a farmhouse near
근처에 농가라곤 한 채도 없는데 멈춰 선 것을 
Between the woods and frozen lake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 
The darkest evening of the year. 
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말이야. 

He gives his harness bells a shake 
말이 방울을 흔들어대네
To ask if there is some mistake. 
뭐가 잘못됐느냐고 묻는 것 같네.
The only other sound’s the sweep 
그 밖의 유일한 소리는 
Of easy wind and downy flake. 
안락한 바람과 포근한 눈송이 휩쓸리는 소리뿐. 

The woods are lovely, dark and deep,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어, 
But I have promises to keep,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그리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어,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그리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어.


<From The Poetry of Robert Frost, edited by Edward Connery Lathem,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


음을 뜻하는 영어 ‘death’의 뿌리는 ‘죽다’라는 의미의 고대 네덜란드어 ‘dood’와 고대 게르만어 ‘tod’로서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죽음을 뜻하는 한자 사(死)는 영어보다는 구체적이다. 살 바른 뼈 알(歺)에 화할 화(化)가 변한 비수 비(匕)가 붙은 것으로서 죽어서 살과 뼈가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생명체 특히 인간에게 있어서 삶을 끝낸다는 것은 어의(語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죽음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없다. 누구나 다 죽음을 싫어하고 두려워하지만 아무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유의미한 삶을 꾸려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보다 겸손하게 죽음을 준비하게 된다. 끝없는 윤회의 한 과정인 인생을 고해로 간주하는 불교에서 열반(涅槃)을 중시하는 것도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는 태도로 이해된다. 열반은 ‘바람 따위가 불기를 멈추다’ 또는 ‘촛불 등을 불어서 끄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를 음역한 것으로서 “번뇌의 불을 꺼서 깨우침의 지혜를 완성하고 완전한 정신의 평안함에 놓인 상태”를 말한다. 열반의 이상경(理想境)은 일체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解脫) 있으므로 적정(寂靜)한 것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에 속박된 현상 세계를 차안(此岸)이라 하고 열반의 세계를 피안(彼岸)이라고 한다.

'stopping by woods...'도록(Susan Jeffers, 1978)과 만년의 로버트 프로스트
차안과 피안의 경계에 서서 차안과 피안을 번갈아 바라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차안에 대한 미련? 피안에 대한 두려움? 슬픔과 아쉬움 아니면 해탈과 순응?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스쳐지나갈 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인생의 깊고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었던 미국의 국민시인 로버트 L.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1963)도 그랬던 것 같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학교 교사였다가 언론인으로 변신한 윌리엄 프레스코트 프로스트(William Prescott Frost)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죽은 후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로렌스로 이주하여 성장했던 프로스트가 1923년에 발표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를 읽다보면 차안과 피안의 차이가 감지된다. 첫 머리를 ‘Whose woods’로 시작한 것은 네 것 내 것 소유권을 다투면서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차안의 삶 대유(代喩), 성가시고 짜증나는 차안의 말방울 소리와 안락한 바람이 포근한 눈송이를 휩쓸어가는 피안의 소리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고 있음을 본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자작시를 낭송할 정도로 시낭송 순회공연으로 명성을 날렸던 프로스트는 압운(押韻)의 대가이기도 했다.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에서도 현란하고도 오묘한 각운(脚韻)이 돋보인다. 제목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에서의 ‘Stopping’과 ‘Evening’, 첫째 연의 know-though-snow, 둘째 연의 queer-near-year, 셋째 연의 shake-mistake-flake, 마지막 연의 deep-keep-sleep-sleep를 의식하면서 다시 한 번 읊조려보라. 시와 음악 사이의 울타리가 무색해진다. 뿐만이 아니다. 1연-2연-3연-4연을 전개하는데 있어서도 각 연의 세 번째 행의 마지막 단어 here-lake-sweep로 고리를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연의 각운 또한 죽음을 의미하는 ‘Sleep’을 선택하여 무성음 P로 마침표를 찍는 정교함에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 또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가르친다. 이른 바 ‘불이(不二)’다. 불이는 피(彼)와 차(此)의 분멸(分別)이 없는 것, 인간의 번뇌와 괴로움은 ‘하나(一)’에서는 생기지 않는바 항상 ‘둘(二)’로부터 발생하는데, 주관과 객관의 분열을 넘어서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깨칠 때 비로소 번뇌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즉 둘로 보면 미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프로스트가 불가의 도를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각운을 이용하여 차인과 피안을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한 것을 보면 삶이 있으므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오늘의 삶이 더 유의미해진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깨달았던 것 같다.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그대에게-자기마저 속이려는 남과 여의 삼바









그대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으로 
소유하려는 것조차 
나의 욕심이라고 깨닫고 
시인하며 
가슴을 털며 돌아서면 
사랑은 조건이 없는, 아니 
진정한 사랑의 조건은 
진실, 
그 하나만으로 족한 것. 
가면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기마저 속이려는 숱한 
가여운 영혼을 본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보다 무의미한 것이기에 
우선은 
내 마음의 진실을 찾아 
아픈 추억들 뒤지고 있다.

                 <‘홀로서기2-점등인의 별에서’(청하, 1987), 서정윤(徐正潤): 1957년-> 

가 내린다. 이런 땐 언제나 낯선 땅 뉴욕일망정 창밖을 내다보며 x폼을 잡아야 한다. 어젯밤의 자욱한 안개로도 풀어지지 않은 슬픔들이 벌거벗은 나무 가지마다 방울방울 맺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슴 속 이리 저리 흩뿌려지는 추억들, 멀리서 플러싱 가는 7번 전철은 아무런 생각 없이 데그덩데그덩 굴러가고, 유령처럼 모퉁이를 돌아가는 가구점 배달 트럭...새삼 온기가 그리워진다.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인다. 그랬다. 남자에게는 여자가 있었고 여자에게는 남자가 있다. 슬픔을 잊으려 사랑하지만, 사랑 때문에 슬퍼진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그런 남(男)과 여(女)가 반드시 어딘가에 있으리라. 

1966년 스물아홉 살짜리 프랑스 영화감독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도 그런 남과 여를 찾아냈었다. 직접 각본을 쓰고, 핸디카메라로 촬영, 3주 만에 편집까지 마쳤다는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에서 슬픈 추억에 발목이 잡혀 고독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리는 남과 여를 맺어줬었다. 스턴트맨 남편을 잃은 30대의 미망인 안은 딸 프랑수아의 문제로 학교에 갔다가 아내가 자살한 자동차 경주 선수 장을 만난다. 사랑은 거짓말, 파리행 기차를 놓친 안이 장의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는 길, 죽은 남편에 대해 묻는 장에게 안은 남편이 배우이며 가수이자 시인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차창 밖을 내다본다. 추억에 잠긴다.....본능과 고독의 충동에 못 이겨 함께 몸을 섞지만 결국 여자는 남자를 남겨두고 홀로 기차에 오른다. 그러나 여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은 남자가 역에 먼저 도착해 여자를 기다린다. 여자가 거짓말로라도 자신의 사랑을 충족시키려는 일탈을 불사한 반면 남자는 그런 거짓말의 일탈을 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긴다. 사랑을 확인한다....빨강, 노랑, 청색의 모노크롬 화면과 대사 없이 표정과 동작만으로 상황을 처리하는 등 시적으로 절제된 영상을 프랜시스 레이의 음악이 포근하게 감싼다. 

1987년 청하에서 펴낸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 2- 점등인의 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방식도 다른가? 다른 것 같다.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을 보내면서 문학성보다는 감성에 매달렸던 대구 출신의 시인 서정윤(徐正潤: 1957~ )도 남녀 간의 사랑방식 차이에 대해 꽤나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에 관한 인식의 차이에 무척이나 실망이 컸던 것 같다. 여자를 사랑하면서도 그 여자의 ‘진실’이 뭔지 확신하지 못해 고뇌하고 있음을 본다. “가면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기마저 속이려는 숱한/ 가여운 영혼을 본다”느니 “내 마음의 진실을 찾아/ 아픈 추억들 뒤지고 있다”고 토로하는 대목에서는 사랑을 위해 사랑을 하는 여자의 진실과 여자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남자의 진실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한 독단마저 읽혀진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던 시인 류시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서정윤이 지난 2013년 재직 중이던 대구영신중학교에서 제자 성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벌금 10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을 선고받은 사건도 ‘사랑의 진실’을 확신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사건이 터지자 서정윤은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약간의 신체적 접촉만 있었을 뿐 성추행은 아니었다”라고 주장했지만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3학년 A양에게 “진학 상담을 좀 하자”며 교사실로 부른 뒤 몸을 껴안고 볼과 입술에 수차례 입을 맞추었는가 하면 “가슴이 얼마나 컸는지 만져 봐도 되나요?”하고 치근댔던 사실까지 까발려져 말 그대로 개망신을 당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사춘기 여학생들이 푹 젖어드는 감성적인 시를 계속 써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서정윤이 사랑의 진실에 허기진 남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만도 아닌 듯싶다. 낼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시인이 열댓 살 먹은 소녀와의 성애를 탐했다기보다는 사랑의 진실을 찾지 못하고 방황만 해온 ‘가여운 영혼’의 일탈이 아니었나 싶다. 서정윤 자신이 그의 출세작으로 꼽히는 ‘홀로서기’에서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고 예견(?)했듯이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다가 지친 나머지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서정윤을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이해해주고 싶다. 

남과 여, 사랑을 위해 사랑을 하는 여자, 여자의 진실을 갖고 싶어 하는 남자, 인터넷에서 ‘서정윤 시인’을 검색해보면 ‘홀로서기’보다는 ‘여중생 제자 성추행’이 더 많이 떠오르고 있는 지금 한때의 베스트셀러 시인 서정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랑? 진실?....그것도 아니면 아픈 추억을 뒤적이면서 홀로서기? 어느 새 커피가 식어버렸다. 피에르 바슐레(Pierre Bachelet)가 불렀다는 영화 주제곡 ‘남과 여의 삼바’를 다시 듣고 싶다.

2017년 3월 2일 목요일

거대(巨大)한 뿌리- 더러운 역사 속 시인의 정체성 확인

뉴욕 포레스트 힐스 사우스 코압 아파트 정원의 거대한 떡갈나무 뿌리.








거대(巨大)한 뿌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어쩌다 셋이서 술을 마신다 둘은 한 발을 무릎 위에 얹고 
도사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남쪽식으로 
도사리고 앉았다 그럴 때는 이 둘은 반드시 
이북 친구들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앉음새를 고친다 
8.15후에 김병욱이란 시인은 두 발을 뒤로 꼬고 
언제나 일본여자처럼 앉아서 변론을 일삼았지만 
그는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다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번도 장안 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면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거대한 뿌리’(1974년), 김수영(金洙暎: 1921~1968)>


는 누구인가? 사람은 왜 자신의 뿌리에 연연하는 걸까? 1976년 알렉스 팔머 헤일리 (Alex Palmer Haley)가 7대조 할아버지가 1767년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노예로 팔려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 6대에 걸쳐 온갖 박해를 견디며 살아온 자신의 가계(家系)를 추적 기록한 세미 도큐멘타리 작품 ‘뿌리(Roots)’를 발표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었다. 미 전역에서 뿌리 찾기 열풍이 불었고, 그 열풍은 헤일리에게 1977년 퓰리처상 및 전미도서특별상을 안겨주었으며, ‘뿌리’를 극화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는 주요도시의 거리를 한산하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왜 헤일리는 보통사람이라면 자랑은커녕 숨기고 싶은 자신의 뿌리를 파헤쳤을까? 비천한 아프리카 출신 노예의 후예라는 것을 스스로 만천하에 까발린 데 대한 창피함은 없었을까? 노예 후손이라는 신분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노예를 부린 사람들의 후손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만인평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확신했기 때문일까? 2001년 전 뉴욕시경국장 버나드 B. 케릭이 자신의 어머니가 창녀였다는 것을 공개하는 회고록을 발표했을 때, 동두천 미군 기지촌 ‘양공주’ 출신 재미사업가 윤경순이 자서전 '나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해 자신의 참담했던 과거를 고백했을 때, 비슷한 시기 한국 모 재벌의 사생아들이 친자확인 소송을 벌였을 때도 그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었다. 

그런 의문의 자물쇠를 열지 못해 쩔쩔 맬 때 학자들은 정체성(正體性)이라는 유식한 열쇠를 내민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독일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부한 후 미국으로 이주한 정신분석학자 에릭 홈버거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이 주장했던 ‘자기 동일성’(自己同一性, Identity)이다. 에릭슨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환경과의 교섭을 통하여 새로운 경험을 거듭하게 되므로 생각이나 행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기는 언제나 과거의 자기와 같은 자기이며 또 미래의 자기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었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그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답변하면서, 자기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것이었다. 

김수영 시인과 1974년 민음사에서 펴낸 김수영 시선집 '거대한 뿌리'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인들도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일제 식민지 한반도에서 태어나 8.15 해방과 6.25 전쟁 등 시대의 굴곡을 온몸으로 뒹굴었던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이 박정희 독재 시절인 1974년 매우 시니컬한 시 ‘거대한 뿌리’를 발표한 것도 자기 정체성 확인을 위해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네에미 씹’ ‘개좆’ ‘미국놈 좆대강’ 등 보통사람이라면 입에 올리기 조차 꺼려할 욕설을 내뱉는 자기 비하, 영국 왕립지학협회 회원 ‘이사벨 버드 비숍여사’와 개울에서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는 아낙네들과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증폭시키는 열등감, 동양척식회사-일본영사관-대한민국 관리-미국놈 좆대강을 관통하는 민족의 비애 등등에도 불구하고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선언하는 오기가 자신의 ‘거대한 뿌리’에서 나오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 너무나 당당하여 시비를 걸기가 두려울 정도다. 

나는 누구인가? 에릭슨의 통찰을 빌려 말하자면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또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自問)에 대한 자답(自答), 그리고 그런 자문자답은 이 작품의 첫머리 “나는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가 암시하듯이 끊임없는 자기 정체성 재확인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실제로 김수영은 1968년 6월 15일 밤 술자리가 끝나고 귀가하던 길에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 새벽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기 두 달 전 부산 펜클럽 주최 문학세미나에서 발표한 ‘시(詩)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시의 존재(存在)’를 통해 “시인은 자기가 시인이라는 것을 모른다....시인이 자기의 시인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거울이 아닌 자기의 육안으로 사람이 자기의 전신을 바라볼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고 주장했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그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답변하면서, 자기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삶이라는 에릭슨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인에게 있어서 시작(詩作)은 끊임없는 자기 확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