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노동의 새벽’ - 노동자들의 카타르시스

2014, chai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풀빛, 1984, 박노해; 1957년- >

동(勞動)의 일할 노(勞) 또한 등불 형(熒)과 힘 력(力)이 합쳐진 것으로서, 그 옛날 횃불을 밝혀놓고 일을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영어 ‘labor’의 뿌리 또한 ‘비틀거리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labare’다. 그렇듯 육체적인 노동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전쟁포로나 노예나 하층민들이 주로 담당했던 바, 백성 민(民)의 생김새 또한 그와 무관치 않다. 신분 차별이 엄연했던 시절의 ‘民’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한쪽 눈을 찔린 전쟁포로나 노예가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모양을 본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노동자(勞動者)’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게 된 것은 2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구상에 처음으로 공산주의의 횃불을 치켜든 독일의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1848년 2월 1일 공산주의자들의 최초의 강령인 ‘공산당 선언(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을 출판한 이후다. “하나의 유령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공산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로 끝맺는 그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본질과 모순과 멸망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이 인류역사의 기본내용이자 사회발전의 추동력(推動力)이라 주장했었다. 마르크스의 설명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proletaria)’는 ‘부르주아지(bourgeoisie)’의 상대적 개념으로 “자기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아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임금 노동자”를 말한다. 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지난 세기 지구촌을 휩쓸었고, 공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살육과 숙청으로 많은 피를 흘렸지만, 그 대가(?)로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노동자들의 복지 또한 향상됐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박노해 첫 시집 '노동의 새벽'
1984년 풀빛 출판사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이야말로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시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1925년 8월 당시 조선에 불어 닥친 공산주의 바람을 타고 박영희․최서해․조명희․이기영․한설야 등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를 결성하는 등 노동자 계급을 위한 문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가 아닌 지식인들이었고, 80년대 들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박영근(朴永根, 1958~2006)을 필두로 박노해․백무산․이소리․김해화․김기홍 등 노동자 출신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소위 ‘민중문학’을 꽃피웠다. 그 중에서도 ‘박해받는 노동자를 위하여’의 앞 글자 ‘박노해’를 필명으로 삼아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낸 박노해는 ‘노동자의,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시를 노동자가 아닌 다른 계급의 사람들에게도 읽히게 만듦으로써 한국의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국의 금서(禁書) 리스트에 올랐던 ‘노동의 새벽’이 100만부 가까이 팔려 한국사회와 문단을 큰 충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얼굴 없는 시인’으로도 유명했던 박노해는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고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펴내는 등 노동운동을 벌이다가 1991년 당국에 체포되면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당시 ‘반국가단체 수괴’라는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으나, 1998년 8월 15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된 이후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현장을 돌며 ‘글로벌 평화나눔’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한 세기 전 카프 계열 시인들의 작품이 그랬듯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또한 가난의 멍에를 짊어진 노동자들의 분노와 슬픔과 탄식이 주조를 이룬다. 순수문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시라고 하기보다는 노동자의 거친 절규로 보일만도 하다. 그러나 그 절규를 ‘새벽 쓰린 가슴 위로’ 돌리고 돌려 부은 ‘차거운 소주’로 씻어내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노와 슬픔 속에서 사랑과 희망을 키워내고 ‘노동자의 햇새벽’을 지향함으로써 ‘노동자들만을 위한 시’의 벽을 깨뜨리고 있음을 본다. 정화의 수단으로 소주(燒酒)을 선택한 것도 절묘하다. 사를 소(燒)에서 보듯 소주는 원래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증류주(蒸溜酒)였으나 제조과정이 까다롭고 비용 또한 많이 들어 요즘엔 에틸 알콜(ethyl alcohol)을 물로 희석시킨 값싼 희석주(稀釋酒)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바, 작품속의 소주가 증류주라면 노동자의 분노와 슬픔을 증류하는 것이 연상되고 희석주라면 분노와 슬픔을 희석시키는 것이 연상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술을 좋아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가난과 피로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마신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값이 싸서 ‘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가 한국주류시장에서 3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게된 것도 쉽게 이해되거니와 거기서 박노해가 시상(詩想)을 이끌어낸 것도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읽으면 읽을수록 취기가 은근히 감도는 시다.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강설(江雪)- 눈 감고 눈을 세다

매사추세츠 보스턴 캠브릿지의 강변 공원 설경. 인적이 끊긴 공원에 부는 바람소리가 더욱 더 차게 느껴진다.


江雪(강설)


千山鳥飛絶 (천산조비절) 온 산에 새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만경인종멸) 모든 길엔 사람 발길 끊겼네

孤舟蓑笠翁 (고주사립옹) 외로운 배에 삿갓 쓴 노인

獨釣寒江雪 (독조한강설) 눈 내려 차가운 강에 홀로 낚시질 하네

                                                 <유종원(柳宗元); 773년-819년>

하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33 스트리트 쪽 출구, 블라우스 바람의 크리스틴과 턱수염이 노리끼리한 제임스, 그리고 까무잡잡한 얼굴의 이민자 하나가 춤추며 하강(下降)하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핀다. 하양은 동색(同色), 하나는 내려오고 또 다른 하나는 올라가고 있을 뿐, 담배연기는 지상(地上)에서 영원(永遠)으로, 눈송이들은 영원에서 지상으로,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공통점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비타민 C 가루 냄새가 날 것 같은 크리스틴의 입, 버터를 바른 듯한 제임스의 입, 김치찌개 냄새가 남아있는 한국계 이민자의 입, 서로 다른 입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지만 2-3피트 허공에서 하나가 되어 사라지고 있고, 저 하늘 꼭대기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따로 따로 내려오던 눈송이들도 지상에 안착하자마자 하나로 합쳐져 바람 부는 대로 길게 드러눕고 있지 않은가. 

그래, 맞다. 결국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왜 매번 잊어버리고 있을까. 팔짱을 낀 채 빨간 립스틱의 입술 사이로 담배를 가져가면서 이따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20대의 크리스틴과 터럭 끝에 눈을 달고 있는 40대의 제임스, 촌스럽게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민자 역시 눈을 바라보면서 하나로 합쳐진다. 멋쩍은 듯 빙그레 웃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회상(回想)의 언덕으로 달려가리라. 담배연기는 올라가고 눈발은 내려오듯이, 헬렌이나 제임스는 업스테이트 스키장이나 전나무 숲으로 달려가겠지만 이민자는 가난이 곰팡이 스는 시골집 건넛방으로 달려간다. 거기서 돌아가시기 전 해소병으로 고생하셨던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썩어서 물러터진 고구마를 만지작거린다. 

어느 해, 멀리서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살얼음 언 듯한 겨울 하늘을 쪼개고 있을 때 그 쪼개진 하늘의 틈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불가승수(不可勝數),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으나 <선데이 서울> 가운데 페이지에 벌거벗고 서 있는 여배우도 더 이상 웃지 않았고, 표지에 찌개국물 자욱이 선명한 문예월간지 속의 활자들이 더 이상 살아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눈발을 세는 것밖에 따로 할 일이 없었다. 혼잡한 서울 생활, 현고학생(顯考學生) 할아버지 신위(神位), 사랑과 욕망, 고독과 번민 따위가 옆방 고구마 가마니에서 새어나오는 퀴퀴한 냄새와 뒤섞이면서 감각을 마비시킨 지 오래였다. 그랬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적막한 겨울 오후 눈송이들을 세는 것밖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몽유병자(夢遊病者)처럼 머릿속을 텅 비운 채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볼 때면 각막은 으레 젖유리로 변하곤 했다. 몸 안의 의식 있는 것들이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창(窓), 두 눈의 유리창에 잡다한 상념의 김이 서리는 것이었다. 

유종원 초상
당(唐)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 773년-819년)의 시 ‘강설(江雪)’을 외우고 다닌 것도 그 즈음이었으리라. 유종원은 당 고종(高宗) 때의 재상 유석(柳奭)의 후손으로서 33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상서예부원외랑이 됐으나, 환관들과 부패관리들이 나라 말아먹는 게 꼴 보기 싫어 정치개혁운동에 가담했다가 영주사마로 좌천된 후 다시는 중앙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고 했다. ‘강설’은 그가 낙백하여 울분을 곱씹던 시절 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울분은커녕 세상 원망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서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읽고나면 가슴 속에 처절한 체념이 쨍 얼어붙었다고나 할까, 단 스무 자의 한자에 담겨진 이 세상의 고독과 체념과 순응을 담은 유종원의 시재(詩才)가 부럽기도 했다. 그게 너무 절묘하고 멋있어서 옛사람들은 그림으로까지 그리면서 유종원이 느꼈던 감정의 한 쪼가리나마 공유하려고 애를 썼던 바, 그림을 ‘독조한강설도(獨釣寒江雪圖)’라고 했던가? 

이 작품에서 ‘천산(千山)’과 ‘만경(萬徑)’의 천(千)과 만(萬)은 구체적인 숫자가 아니라 ‘모든’을 의미하는 바, 천에서 만으로의 점층(漸層)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가다가 고주(孤舟)의 홀로 독(獨)으로 점을 찍는 시적 테크닉이 일품, 천산과 만경을 헤매다가 늙어서는 추운 강물 위 홀로 외로운 배에서 낚시질이나 하는 것이 그저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라는 게 낙백한 유종원의 깨달음이었나? 그런 깨달음이 큰 시인 유조원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낙백한 천만 장삼이사들의 공통적인 것이라면? 허공중에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독조한강설도’가 그려지는 것도 천과 만의 인지상정이리라. 지금껏 그런 흔한 인지상정들을 나 혼자만의 느낌을 특별한 것으로 여겨온 치졸한 감성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독재자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단물 빨아먹는 사람들이 애국이 어쩌고 경제가 어쩌고 침 튀기는 게 꼴 보기 싫어 이민을 왔지만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는 게 팍팍하기는 오십보백보, 그래, 이 세상은 원래 한 폭의 ‘독조한강설도’인지도 몰라...그런 생각을 하면서 흩날리는 눈들을 바라보노라니 또 다른 눈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저건 긴 머리 휘날리며 돌아서던 그녀의 젖은 두 눈, 이건 누렇게 퇴색한 할아버지의 두 눈, 번들거리며 이글이글 타오르던 성난 아버지의 두 눈, 미스 리, 김 부장, 강 국장의 눈, 눈, 눈....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 모든 눈들이 허공중에 있을 땐 뜬 것처럼 보이지만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질 때면 스르르 눈을 감는 것처럼 보인다. 그걸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비록 초점을 잃었을망정 허공을 바라볼 때는 뜨고 있지만 아래로 내리깔 때는 어느 샌가 눈을 감게 된다. 그래서 문득 깨닫는다. 수천 개의 사연, 수만 개의 인연, 수억 개의 생각, 눈을 셀 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을. 저 흩날리는 눈들도 몇 천 피트 아니 몇 만 피트 상공에서 “지상에 내려가면 눈을 감자, 눈을 뜨고 있으면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솟구치는 슬픔으로 우리의 몸 전체가 녹아 없어질는지도 몰라”하며 서로 눈을 감자는 약속을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그 때의 깨달음을 지키자. 어릴 땐 눈을 뜨고 눈을 셌었지만 앞으론 눈을 감고 눈을 세리라. 머릿속으로나마 ‘독조한강설도’를 그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