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7일 수요일

Captives - 무의미한 상실(喪失)에 사로잡힌 포로들

스페인 내전 때 좌파 인민전선 정부를 지워하기 위해 참전한 외국인 의용군들. 1936. PHOTO TAKEN BY ALEC WAINMAN, © THE ESTATE OF ALEXANDER WHEELER WAINMAN, SERGE ALTERNÊS, JOHN ALEXANDER WAINMAN

Captives(포로들)


Some came in chains 더러는 쇠사슬에 묶여 들어왔지
Unrepentant but tired. 후회하지는 않으나 피곤해
Thinking and hating were finished 생각하고 미워하는 것 끝났네
Thinking and fighting were finished 생각하고 싸우는 것 끝났네
Retreating and hoping were finished. 후퇴하고 희망 품는 것 끝났네
Cures thus a long campaign, 괴짜들 그래서 긴 출정(出征)
Making death easy. 죽음도 쉽게 만들면서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1961년>


프리카 대륙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신의 집이라 불리는 서쪽 봉우리에 얼어 죽은 한 마리의 표범이 있다? 아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어니스트 M.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가 버린 자아(自我)가 있다. 높이 5,895m, 세계최고의 화산,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꼭대기가 만년설로 덮여 있는 산, 스와힐리어(語)로 ‘빛나는 산’, 킬리만자로에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지만 헤밍웨이의 ‘문학적 무덤’으로 더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세태에 환멸을 느껴 허무주의에 푹 빠졌던 로스트제네레이션(Lost Generation)의 기수 헤밍웨이는 1936년에 발표한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에서 사냥 도중의 부상으로 괴저병을 얻어 죽음을 앞둔 작가 ‘해리’의 회고를 통해 안이한 생활로 예술가로서의 성실성을 상실했던 자기의 과거를 반성했었다. 작중 주인공 ‘해리’는 천부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돈, 여자, 술 오만과 편견, 권태와 속물근성에 파묻혀 위대한 작가 정신을 스스로 배반한 것을 몹시 후회하여 죽음을 원한다. 죽음만이 부끄러운 과거의 자기를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그 길을 걸으면 번민과 고통은 사라지며, 저 은백(銀白)으로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서는 순간 작가로서의 갱생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1939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할 당시의 헤밍웨이.
From Wikipedia
‘킬리만자로의 눈’을 집필하면서 자신의 작가정신을 낱낱이 해체하여 혹독한 반성으로 재조립했던 헤밍웨이는 1940년 스페인 내전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발표하여 출세작 ‘무기여 잘 있거라’에 버금가는 호평을 받았고, 1952년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탈고한다.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에 이어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헤밍웨이 역시 자신을 영원히 죽일 수는 없었다. 작가정신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을 수없이 죽이지 않으면 메울 수 없는 것이 원고지였다. 1960년 쿠바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 말년의 안식지 핑카에서 쫓겨났고 아이다호 케첨에 새 둥지를 틀었으나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엽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드물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헤밍웨이는 이따금 시를 쓰기도 했다. 문학성으로만 따지자면 시라고 할 수도 없지만 시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속내를 내비쳤었다. 스페인 내전과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되새긴 것으로 보이는 ‘포로들(Captives)’도 그 중 하나다. 수사나 운율은 그저 그런 수준, 그러나 작품을 관통하는 시상만큼은 그의 소설작품에 비해 뒤지지 않는 것 같다. 포로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생각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후퇴하다가 붙잡혔나?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죽음도 쉽게 여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등 그가 대표작들을 통해 던졌던 질문을 짧게 요약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그가 자살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성급한 추론도 고개를 들고. 신문기자로서, 신념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참전 군인으로서, 인생과 세상을 자세히 관찰했던 작가로서 헤밍웨이가 얻은 결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헤밍웨이는 이 세상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포로수용소로 인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다시 읽어보면 훨씬 더 이해가 쉬워진다. 그의 또 다른 시 ‘아들에게 주는 충고(Advice To A Son)’를 보면 이 세상 인간의 삶에 대한 시니컬한 그의 관찰이 잘 드러난다. 다음은 ‘Advice To A Son(아들에게 주는 충고)’의 전문.

1926년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헤밍웨이와 그의
첫번째 부인 엘리자베쓰 해들리 리차드슨, 
그리고 아들 잭. From Wikipedia
Never trust a white man, 절대로 백인을 믿지 마라,(그들은 교활한 놈들이다)
Never kill a Jew, 절대로 유태인을 죽이지 마라,(그들은 끈질긴 놈들이다)
Never sign a contract, 절대로 계약서에 사인하지 마라(너를 옭아맨다)
Never rent a pew. 절대로 교회 긴 의자를 빌리지 마라(현실적인 노력은 안하고 기도나 해서 뭔가 얻으려고 하지 마라)
Don't enlist in armies; 군대에 가지 마라(이념이나 사상에 휩쓸려 총알받이가 되지 마라)
Nor marry many wives; 결혼을 여러 번 하지 마라(진정으로 너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살아라)
Never write for magazines; 잡지에 투고하지 마라(몇 푼 원고료 때문에 작가로서의 양심이나 품위 등 잃는 게 더 많다)
Never scratch your hives. 부스럼을 긁지 마라(작은 갈등을 키우지 마라)
Always put paper on the seat, 변기에는 종이를 깔고 앉아라(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Don't believe in wars, 전쟁을 믿지 마라(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선동에 속지 마라)
Keep yourself both clean and neat, 너 자신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라(타인에게 손가락질 받지 마라)
Never marry whores. 절대로 창녀하고는 결혼하지 마라(돈을 위해 순결을 파는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마라)
Never pay a blackmailer, 절대로 협박하는 놈에게는 돈 주지 마라(협박에 굴복하지 마라, 그 놈들은 끝까지 뜯어먹으려고 덤벼든다)
Never go to law, 송사하지 마라(이겨봤자 남는 게 없고 잃는 게 더 많다)
Never trust a publisher, 절대로 출판업자들을 믿지 마라(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출판을 할 뿐 너를 위하는 건 아니다)
Or you'll sleep on straw. 안 그러면 넌 지푸라기 위에서 자게 된다(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신세 처량하게 된다)
All your friends will leave you 모든 너의 친구들을 너를 떠난다(우정에 의지하지 마라)
All your friends will die 모든 너의 친구들은 죽는다
So lead a clean and wholesome life 깨끗하고 건전하게 살아서
And join them in the sky.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라

여기서 ‘아들’은 헤밍웨이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아들 같은 젊은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헤밍웨이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을 정리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인들의 교활함과 유태인들의 끈질긴 근성, 비참한 현실을 치유 못하는 종교의 무기력함, 이념과 이념이 충돌하는 전쟁의 무의미성, 네 번의 결혼을 하면서 깨달은 여자들의 속물근성, 예기치 못한 세상살이의 위험, 지나가고 나면 덧없게 느껴지는 우정 등등 모두 헤밍웨이 자신이 젊어서부터 몸소 목격하고 체득한 것들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런 실망감과 배신감과 허무감이 뒤섞이고 뒤섞여 헤밍웨이로 하여금 ‘로스트 제네레이션’의 깃발을 들게 만든 건 아니었는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의 시작(詩作) 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유치한 시작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허무와 고독을 분석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한 데 대해서는 “역시 헤밍웨이답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