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춘망사(春望詞) - 그리움, 그 끊을 수 없는 춘수(春愁)

매사추세츠 보스턴 캠브릿지와 알스턴을 가로지르는 강가 공원의 꽃그늘 아래서 한 여성이 책을 읽고 있다. 사는 게 권태롭고 불안하고 외로울 때 그리움이 싹트는 것은 아닌지?!

春望詞(춘망사) 


花開不同賞 (화개부동상) 꽃이 피어도 함께 감상하지 못하고 
花落不同悲 (화락부동비)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하지 못하네 
欲問相思處 (욕문상사처) 그리운 임(상사) 계신 곳 묻고파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꽃은 피고 꽃은 지는데 

攬草結同心 (남초결동심) 풀 뜯어 한 마음으로 엮어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 임(지음)에게 보내려다가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봄의 시름으로 끊고 마는데 
春鳥復哀吟 (춘조복애음) 봄새가 다시 와 애달피 우네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바람에 꽃은 날로 시들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아름다운 만날 기약 아직 아득한데 
不結同心人 (부결동심인) 사람의 마음은 함께 엮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헛되이 풀만 같은 마음으로 엮네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꽃으로 가득 찬 가지 어찌 감당하리오 
翻作兩相思 (번작량상사)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아침에 거울을 보면 흐르는 옥 젓가락 같은 두 줄기 눈물 
春風知不知 (춘풍지부지)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설도(薛濤); 768-832> 

‘그리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랑하거나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다’라고 풀이돼 있다.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상이 없는 ‘막연한 그리움’도 수두룩하다.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마음고생 몸 고생 없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하며, 날이 갈수록 왠지 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이란 현재의 허전함이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것, 오늘의 삶이 외롭고 쓸쓸할수록 그리움은 커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세상의 단맛 쓴맛 떫은맛을 어느 정도 맛본 사람들은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시 속에서의 그리움 또한 대부분 사랑하는 임을 향한 그리움으로 나타나지만 그게 꼭 사랑의 파트너를 향한 그리움만만은 아니다. 김소월(金素月)의 그리움에서 보듯, 되레 그걸 빌려 외롭고 쓸쓸한 자신을 달래고자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실존(實存)철학자들의 말을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가 권태(倦怠)와 불안(不安)과 고독(孤獨)으로 뒤범벅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바, 그 권태와 불안과 고독 속에서의 고뇌와 고통이 커지는 것과 비례하여 막연한 그리움도 커지고, 그 막연한 그리움이 투사(投射)되어 나타나는 여러 가지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리움’ 즉 ‘상사(想思)’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명나라 때 그려진 설도 초상화와 설도 시집(인민문학출판사  1983)
중국 당(唐)나라 때 장안(長安)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사천성(四川省)의 서도(成都)로 이주한 후에 기생이 됐던 여자 설도((薛濤; 768-832) 또한 상사(相思)에 걸렸던 것 같다. 그의 시 ‘春望詞(춘망사)’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설도가 성도 교외 완화계(浣花溪)에서 은거할 때 만난 시인 원진(元稹)과의 정분을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시로 읊은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꼭 그런 눈으로만 볼 건 아닌 듯싶다. 당시 서천(西川) 절도사로 부임했던 위고(韋皐)가 설도를 기적(妓籍)에서 빼내 자신의 교서랑(校書郞)으로 임명하려고 했을 정도로 그녀의 시문(詩文)이 뛰어났다고는 하나, 기생 출신으로서 동천(東川) 감찰어사로 내려왔던 원진과 맺어지기를 기대했을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거니와, 설사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나눴다고 하더라도 백거이(白居易)와 유우석(劉禹錫) 등 당대의 문인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설도전(薛濤箋)으로 불리는 종이까지 만들어 쓸 정도로 똑똑했던 여자가 바람둥이로 소문 난 원진과의 사랑을 못 잊어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운 바, 위 작품 또한 인생의 권태와 불안과 고독에서 배태된 막연한 그리움을 읊은 것으로 보인다. 제2수의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의 ‘지음(知音)’과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의 ‘춘수(春愁)’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지음’은 춘추시대 진(晉)의 대부로서 거문고를 잘 탔던 백아(伯牙)가 자신의 음률을 가장 잘 이해했던 종자기(種子期)가 죽자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다는 데서 나온 고사 ‘백아절현(伯牙絶絃)’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설도는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을 그리워했던 바, 그게 원진이었든 또 다른 그 누구였든 아니면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든 시상의 전개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런 그리움의 맺음을 ‘춘수’로 끊었다는 것은 삶이 지속되는 한 매해 화창한 봄날이면 천형처럼 겪는 ‘봄앓이’가 더 컸다는 말이 아닌가?! 

어쩌면 삶 자체가 그리움 맺기인지도 모른다. 현재 성도의 망강공원(望江公園) 안에 그녀가 종이 뜰 때 물을 길었다는 유적 설도정(薛濤井)과 함께 설도 기념관과 석상이 세워져 설도를 기리고 있다고 하나 모두 다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봄날 꽃그늘 아래서 춘망사(春望詞) 한 수 읊조려보면서 설도의 그리움의 깊이를 가늠해보는 것도 삶의 권태와 불안과 고독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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