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7일 화요일

풀 - 삶으로 저항하는 민초

롱아랜드 존즈 비치에서 파이어 아일랜드로 가는 길 옆의 풀들. 숱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에서 시적 영감이 느껴진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196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 김수영; 1921년-1968년>


초(草)의 원형은 풀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그린 싹 날 철(ꟈ) 두 개가 모인 초(艸), 철(ꟈ)이 세 개가 모이면 풀 훼(卉), 네 개가 모여 크게[大] 보이면 잡풀 우거질 망(莽)이 된다. 통상 초(艸)는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쓰이고, 단독으로 쓰일 때는 그 아침 조(早)가 붙은 초(草)를 사용하는데, 개간하기 전의 땅에는 으레 풀이 있기 때문에 그런 조합이 이뤄진 게 아닌가 한다. 논이나 밭이 들어서기 전의 미개척지에는 풀이 먼저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영어 ‘grass’의 뿌리 또한 고대영어 ‘græs’이고 ‘græs’는 ‘자라다’라는 의미의 고대영어 ‘grōwan’에서 나왔다. 지금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풀’과 ‘grass’는 원초적인 생명력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민초(民草)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풀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혹자는 “‘民草’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단어로서 ‘다미구사(たみくさ)’라고 읽혀진다”면서 거부감을 표시하지만 백성이나 국민을 ‘풀’에 비유하는 게 일본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단지 일본 사전에 먼저 등재되었다고 해서 눈 흘길 일은 아니라는 것은 영어 ‘grass-roots democracy(풀뿌리 민주주의)’도 잘 말해준다. 흔히 ‘grass-roots democracy’라는 말은 1936년 미 공화당전당대회에서 크게 부각된 이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말의 뿌리를 찾자면 19세기 남북전쟁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야 한다. ‘grass-roots democracy’의 효시는 1859년 뉴욕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청년 공화당원(The Young Republicans)’, 미국이 연방정부를 중심으로 단합할 것을 주장했던 공화당원들은 젊은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18세부터 40세까지의 공화당원들을 회원으로 하는 ‘청년 공화당원’을 조직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위가 되어 사상 최초로 공화당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1931년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조지 H. 올름스테드가 각지의 ‘청년 공화당원’ 조직을 하나로 묶어 공화당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올름스테드를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정식으로 공화당 청년조직을 맡아달라고 당부함으로써 1935년 ‘Young Republican National Federation (YRNF)’ 결성과 함께 올름스테드가 회장에 취임했었다. 이후 YRNF는 숱한 주지사와 상원의원들을 배출하면서 ‘grass-roots democracy’의 대명사로 굳어졌었다. 현재 부자들과 기업가 편을 드는 공화당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싹 틔웠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지만. 

시인 김수영
시인 김수영(金洙暎)이 ‘풀’을 발표한 것은 박정희 군사독재가 뿌리를 깊이 내리던 196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 대다수의 서민들이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른 채 군사독재의 군홧발 아래서 신음하던 그 때 그 시절 김수영은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함으로써 민주주의 뿌리나마 보존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 해 2월 1일 박정희 독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착공했었다. 지금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국토의 대동맥’이 어쩌고 ‘조국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이 저쩌고 박정희 치적의 으뜸으로 꼽으면서 호들갑을 떨지만, 그렇듯 소 뒷걸음질에 쥐 밟히는 것에 열광하는 한심한 결과론으로만 따지자면, 일제시대 철도와 댐을 건설하여 한반도 근대화를 앞당겼던 일본인들이 비실비실 웃을까봐 겁난다. 정신적 자존감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은 몰라도 시인이나 지식인들만큼은 결코 독재자 박정희를 예찬해서는 안 된다. 경부고속도로의 총 공사비는 1967년 국가예산의 23.6%에 해당하는 429억7300만원, 당시 1인당 국민총소득은 142달러, 농촌서는 춘궁기에 아사자가 발생하고 도회지에서는 빈민들이 매혈로 주린 배를 달래던 때였던 바, 얼마나 많은 민초가 경부고속도로의 아스팔트 밑에 깔려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 섭섭하기만 하다. 

서울 출신으로 6·25 때 공산군에 징집돼 거제도 수용소 포로로 석방되기도 하고 미8군 통역·공무원·신문기자 등을 지내 사상적으로 비교적 중립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김수영은 스스로든 타의에서든 ‘풀’을 자처했었다. 4·19를 몸소 겪으면서 현실의 억압에 굴하지 않는 강렬한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키웠고, 그걸 문학의 본령으로 삼았으며, 그랬기에 독재가 종식되기 전인 1980년대까지도 한국 시단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문학사적으로도 “참여시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이성부, 이시영, 조태일로 이어지는 1970년대 민중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열린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시여, 침을 뱉어라’는 아직도 문학도들에게 매우 진지하게 읽혀지는 시론(詩論)들 중의 하나로 꼽힌다. 

‘풀’은 민중, 민중은 저항이 뭔지도 모르면서 저항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귀하다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나는’ 귀함을 보인다. 김수영은 그걸 높이 평가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시와도 직통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듯이, 비바람이 불 때는 그냥 누워버리는 피동성(被動性)을 보이지만 비바람이 잦아들면 먼저 일어나는 능동성(能動性)을 보이는 풀 또한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갖는 바, ‘풀’과 시의 생명력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저항 이상의 행간이 읽혀지기도 한다. 생명의식의 존중이라고나 할까, 하찮은 풀을 통해 생명의 끈질김과 고귀함을 도출해내는 김수영의 시적 상상력에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에 실려 있는 시편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1819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미국 민중을 대변하는 시인이 됐던 휘트먼은 종전의 시의 형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일상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자아의식·평등주의·민주주의·동포애 및 조국애 등을 노래하여 ‘가장 미국적인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김수영의 ‘풀’ 또한 휘트먼의 ‘풀잎’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휘터먼이나 김수영 둘 다 전쟁을 겪었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전 신문기자 생활을 했었다. 

‘풀’은 온몸으로 아파하면서 신음으로 쓴 시, 겸손한 주체와 하찮은 객체와의 흔쾌한 일체감, 휘트먼이 “미국 전체가 본질적으로 위대한 시이고 또 시인은 민중과 어울려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김수영 또한 독재시대의 민중이 겪는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던 듯하다. 자기 자신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나는 풀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맨 마지막 구절에는 ‘풀’이 아닌 ‘풀뿌리’를 등장시켜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고 마감한 것 또한 뿌리마저 누울 수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에 대한 ‘자포자기적 저항’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을 맞아 박정희 독재 덕분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그리워할지 몰라도 그 때 그 시절 개발독재의 아스팔트 밑에 깔려야 했던 민초들은 언제 다시 일어설지 모르는 암담하고 처절한 심정으로 뿌리마저 누웠었다는 것을 까먹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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