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1일 화요일

Song of Myself 제1편 - ‘너’를 위한 ‘나 자신의 예찬’

저 싱싱한 풀잎 속의 원자들이 내 몸 속에도 있다면? 내가 곧 자연이라는 휘트먼의 통찰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합일이 느껴진다.

Song of Myself  I 

I Celebrate myself, and sing myself,                                  
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                               
For every atom belonging to me as good belongs to you.    
나는 나 자신을 축하한다, 또 노래한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도 그러하겠지
내게 있는 모든 원자 당신도 있을  테니까.

I loafe and invite my soul,                                                  
I lean and loafe at my ease observing a spear of summer grass.
나는 빈둥거리면서 나의 영혼을 불러내지                                                                          
여름풀의 뾰쪽한 끝을 편하게 바라볼 때도 몸을 구부리고 빈둥거리지 

My tongue, every atom of my blood, form'd from this soil,  
              this air,                                                               
Born here of parents born here from parents the same, and   
             their parents the same,                                        
I, now thirty-seven years old in perfect health begin, 
Hoping to cease not till death.                                        
나의 혀, 내 피 속의 모든 원자, 이 흙과  이 공기에서 생겨나왔지
여기 부모에게 태어났고 부모도 마찬가지, 부모의 부모도 마찬가지
나, 이제 37세, 더할 나위 없는 건강이 시작되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기를 바라네

Creeds and schools in abeyance,                                   
Retiring back a while sufficed at what they are, but never  
             forgotten,                                                         
I harbor for good or bad, I permit to speak at every hazard, 
Nature without check with original energy.                        
신념과 배움은 잠시 미정인 상태
그럭저럭 충분하다고 여겨 잠시 접어두지만  결코 까먹지는 않아
나는 좋은 것과 나쁜 것 품어주리, 모든  위험을 말해도 괜찮을 거야
원기 거스르지 않고 타고난 대로 살리라

                                                                <1855년 ‘Leaves of Grass’, Walt Whitman; 1819년–1892년> 

스가 범람해서 그런지 ‘성(性)’하면 ‘sex’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 ‘性’은 섹스보다도 훨씬 더 상위의 개념이었다. 한자 ‘性’은 마음 심(心)과 날 생(生)이 합쳐진 것으로서 태어날 때의 마음 즉 개개인의 타고난 특질을 말한다.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심어준다고 해서 ‘천성(天性)’이라고도 한다. 일찍이 자연과의 합일을 역설했던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莊子)는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이를 길게 이어주면 걱정할 것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이를 자르면 슬퍼할 것(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이라고 말하면서 천성대로 살라고 충고했었다. 천성대로 사는 게 가장 바르고 진실하다는 것이었다. 천성은 인간 개개인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자연계 전체로 확대된다. 아니 자연(自然) 그 자체다. ‘자연’의 본래 의미 또한 풀이나 물 따위가 아니라 ‘천성대로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19세기 미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어 ‘가장 미국적인 시인’이자 ‘자유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이야말로 천성(天性)의 시인이었다. 1819년 지금은 도시화되었지만 당시엔 숲과 밭밖에 없던 뉴욕 롱아일랜드의 헌팅턴 웨스트 힐즈에서 가난한 농부의 9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휘트먼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11세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돈을 벌어야할 정도로 불우했으나, 변호사 사무실 심부름꾼과 인쇄 견습공 등으로 전전하면서도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기존의 방법론이나 틀을 깨는 자유분방함을 보였다. 성경의 운율로 미국 특유의 서사시를 쓰고자 했던 그가 주인공으로 특출한 영웅을 내세웠던 종전의 서사시들과는 달리 보통사람들을 내세웠던 것도 그런 성격 탓이었을 것이다. 휘트먼의 자유분방한 시 쓰기는 미국 자유시의 토대가 됐고 미국적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게 후세의 평가다. 

시집 '풀잎'에 실린 새뮤얼 할리어의 휘트먼 초상(왼쪽)과 만년의 휘트먼.
1855년에 출간된 휘트먼의 첫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은 그 자체로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이전 시인들의 작품들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명상에서 나온 감흥을 주로 읊은 것들이었던 반면 휘트먼의 ‘풀잎’에 실린 작품들은 자연과 인간과의 합일을 노래했다. 첫 시집 출판 때부터 미국 초월주의의 선구자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도움과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그가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에 심취해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휘트먼이 전원(田園) 출신이고 태어날 때부터 천성이 자유분방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시풍(詩風)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풀잎’의 첫머리에 실린 총 52편의 연작 시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도 당시로서는 뻔뻔하고 시건방지게 여겨지던 자기 자신의 예찬인데다가 곳곳에 외설적 표현들까지 섞여 출판사가 출판을 거부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 속의 인간을 찬미한 수작”이라는 등 하나 둘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가장 미국적인 시’라는 칭찬을 듣게 된다. 내가 나 자신을 축하하고 노래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시건방져 보이지만 “내가 나 자신의 천성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본주의의 출발점”이라는 휘트먼의 통찰이 그 시건방짐을 압도한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인간은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지 않는 바, 두 번째 행 “내가 짐짓 그러하는 것을 당신도 짐짓 그러하겠지(And what I assume you shall assume)”에서 보듯 ‘나’와 ‘너’ 공존을 추구하고 있거니와, 결국 ‘나 자신의 노래’는 ‘너를 위한 노래’가 된다. 휘트먼의 시가 미국적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후세의 평가도 거기서 나온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 시에서 또 주목해야할 단어는 세 번째 행의 ‘원자(atom)’다. ‘atom’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a-: 부정, tomos: 쪼갬)’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a-tomos’에서 나온 것으로서, 이미 기원전 5세기 경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사용한 바 있지만, 현대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사용되는 원자의 개념은 영국의 화학자․물리학자 존 돌턴(John Dalton)이 1803년의 한 연설을 통해 발표한 원자가설(原子假說)에서 출발한다. 휘트먼이 그 ‘atom’을 시어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야말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의 혀, 내 피 속의 모든 원자가 이 흙과 공기에서 형성됐다(My tongue, every atom of my blood, form'd from this soil, this air)’는 과학적 관찰이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연계의 원자가 ‘나’나 ‘당신’에게도 있고 또 그게 나의 부모와 부모의 부모 등등으로부터 한없이 전수돼온 것이라는 휘트먼의 통찰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이 아닌가?! 맨 마지막 행을 ‘Nature’로 시작한 것도 ‘나’와 ‘당신’→‘부모’→‘자연’이 ‘atom’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휘트먼에게 있어서 ‘나’는 곧 ‘자연’이었던 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품는 ‘나’의 행위까지 자연의 한 현상으로 파악한 ‘Song of Myself’는 ‘Song of Yourself’이고 또 ‘Song of Nature’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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