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일 수요일

The Lake Isle of Innisfree - 공감각적 이미지들의 잔치


The Lake Isle of Innisfree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거기 작은 오두막이나 하나 지으리, 욋가지와 진흙으로 지으리라: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아홉 이랑 콩밭 일구리라, 벌꿀통도 하나 놓고,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벌들 윙윙대는 숲속 빈터에서 혼자 살리라.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거기선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 평화는 천천히 떨어지면서 오는 거니까,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아침의 휘장들에서부터 귀뚜라미 노래하는 곳까지 떨어지리라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거기 한밤중은 온통 반짝거림, 한낮은 자줏빛 작열(灼熱)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그리고 저녁은 홍방울새 날갯짓으로 가득 차리라.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길 위에 서 있을 때도, 회색 포장도로 위에서도,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가슴 깊숙이 한가운데서 그 물결소리 들리네 

                                <1890년 ‘National Observer', William Butler Yeats; 1856년-1939년> 

(詩)를 ‘쓰는’ 게 아니라 ‘그리는’ 시인들도 많다. 그런 시인들은 시의 형식이나 시어(詩語)의 조탁에 매달리기보다는 어휘의 이미지와 상징에 주목한다. 19세기말에 태동하여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모더니즘(modernism)’ 시인과 작가들이 그랬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D.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T.S. 엘리엇(Thomas Sterns Eliot) 등은 낭만주의적 감상과 영탄이나 고답적인 서사 등 종전의 시적 전통에 반발하여 눈으로 보이고 손에 잡히는 듯한 섬세한 묘사로 독자들의 머릿속에 든 이미지들을 환기시키는 테크닉을 구사했던 바, 그런 점에서 ‘이미지스트(Imagist)’라고도 불렸다. 그들이 시각적․청각적 또는 그 두 가지를 아우른 공감각적(共感覺的) 표현을 즐겨 사용한 것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미지를 환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작품을 대하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생겨나고 읽은 후도 잔영(殘影)이 남는다. 그런 이미지즘이 한국에도 유입되어 김기림(金起林), 김광균(金光均), 정지용(鄭芝溶) 등이 “시(詩)는 회화(繪畵)다”라는 모토 아래 한국시단의 모더니즘의 꽃을 피웠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시선집
 1997년, 스크리브너 출판사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엘리엇의 모더니즘을 모방해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56년-1939년)도 ‘그림을 그리듯 시를 그린’ 시인들 중의 하나였다. 어떤 사람들은 “예이츠가 당시 문예 사조(思潮)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다른 시인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시작 양식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다르고, 절정기에 이르러 시적 상상력에 의한 환상을 시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테두리 안에 가둘 수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는 점만큼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예이츠가 화가 집안에서 출생하여 처음에는 화가를 지망하여 미술 공부를 했었다는 사실 또한 그 같은 경향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아버지 존은 런던의 헤더리 미술학교에서 예술을 공부했고 남동생 잭은 유명 화가가 됐으며 누이 엘리자베스와 수잔 메리는 미술 공예운동에 가담했었다. 예이츠가 아일랜드 시인․극작가로는 최초로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 노벨 위원회가 “고도의 예술적 양식으로 아일랜드의 영혼을 표현했다”고 평한 것도 그 같은 점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한다. 

예이츠가 1890년 ‘내셔널 옵저버(National Observe)’에 발표한 ‘이니스프리의 호수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은 시각적, 청각적, 공감각적 이미지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연에서 오두막을 지을 때 ‘욋가지에 진흙을 발라’라는 사실적 표현으로 독자들의 감각을 일깨워놓은 후 아홉 이랑 콩밭에 벌통을 놓음으로써 그 뒤에 ‘벌들이 윙윙거리는(bee-loud)’이라는 청각(聽覺)으로 확대시키고 있음을 본다. 평화도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떨어지면서 온다’(comes dropping slow). 희미한 새벽의 휘장에서부터 귀뚜라미가 우는 후미진 곳에까지 서서히 떨어지면서 온다. ‘한밤중 온통 반짝거림’과 ‘한낮의 자줏빛 작열’ 그리고 ‘홍방울새 울음소리와 날갯짓’에 이르면 모든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잔치를 벌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나서는 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장도로 위에서나 가슴 깊숙한 곳에서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소리(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게 만듦으로써 ‘이미지 잔치’의 여운을 길게 이어간다.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에는 이미지들이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다가 막판에 이르러서는 독자 내부에서 형성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예이츠의 주도면밀한 시작(詩作)이 놀랍다. 

‘이니스프리의 호수섬’은 예이츠가 영국서 생활하던 시절 복원 이전의 서울 청계천처럼 복개 공사로 물 위에 길을 낸 플리트 거리를 거닐 때 어릴 적 자주 찾았던 아일랜드 북부 슬라이고(Sligo)의 로크 질(lough Gill, 질 호수)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전해진다. 길 위에 서 있을 때나 또는 회색 포장도로 위에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철썩거리는 호숫가 물결 소리’를 떠올리는 시적 영감도 거기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이츠가 감수성이 예민하던 10대 때 자주 찾았던 질 호수는 예이츠의 마음의 고향, 현대인이면 누구든 가슴 속에 하나쯤 품고 있고 또 품고 싶은 게 마음의 고향이고 보면, 사는 게 삭막하고 외롭다고 느껴질 때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섬’을 읊조려보면 어떨까 싶다.

댓글 1개:

  1.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글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경남 진영의 한 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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