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일 금요일

꽃 - 존재를 확신 못하는 존재의 ‘무의미’

동네 공터 한 구석에서 존재를 주장하듯 노랗게 핀 수선화가 눈길을 끈다.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것인지 수선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인지 헷갈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952년, 김춘수; 1922년-2004년>


름이라는 게 뭔가?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 아래 입 구(口)가 붙은 것으로서 주위가 어두워져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운 저녁에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말하는 것, 그러나 그 이름이 실체의 전부는 아니다. 누가 “나를 개똥이라고 불러 달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너는 소똥이다”라고 하면 ‘개똥이’가 아닌 ‘소똥이’가 되고 만다. 이른 바 존재(存在)와 그 존재에 대한 인식(認識)의 문제다. 존재와 인식의 함수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정답도 없는 것 같다. 모세의 하나님처럼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Ego sum qui sum)”임을 주장하여 존재할 수도 있지만,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처럼 특정성질이나 이론에 선행하는 존재 자체의 의의를 확인함으로써 존재할 수도 있고, 타자(他者) 철학의 선구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주장했던 것처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철학과 이론 또한 존재 앞에서는 모두 ‘믿거나 말거나’, 믿으면 스스로의 존재를 한정하게 되고 안 믿으면 ‘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존재의 확인이 곧 삶이고 그걸 깨우치는 게 도(道),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 노자(老子)도 그걸 역설했었다. 주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은거를 결심하고 서쪽으로 여행하는 도중 관문에서 관문지기의 청을 받고 저술했다는 '도덕경(道德經)' 첫머리를 “도가 도일 수 있으나 늘 그러한 것은 아니고(道可道 非常道), 이름으로 이름 지을 수 있지만 늘 그렇게 불리는 것은 아니다(名可名 非常名). 이름 없음이 천지의 시작이요(無名 天地之始) 이름 있음으로 해서 만물이 생겨난 것이니(有名 萬物之母)...”라고 시작한 것도 존재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타자와의 소통에 의해 인식되느냐를 놓고 무척이나 고민한 흔적으로 보인다. 

시집 '꽃' 표지
1999년 찾을모 간행
시인 김춘수를 ‘꽃의 시인’으로 만들어준 작품 ‘꽃’ 또한 따지고 보면 일종의 존재 탐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인에게는 매우 죄송한 말씀이지만 첫째 연과 둘째 연은 노자의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를 풀어쓴 것이고, 셋째 연과 넷째 연은 주체적 존재론을 부정하고 타자에 의한 인식을 중시했던 레비나스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존재에 대한 확신을 못해 방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느낌마저 든다. 의도적이었나? 실수였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지만, 나는 그 ‘꽃’이 아닌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희망하다가, 마지막 연에 가서는 뜬금없이 ‘우리’를 등장시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음에 존재 그 자체를 주장하는 하이데거와 타자의 눈치를 보는 레비나스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갑자기 레비나스 품에 안겨버리는 아가씨를 보는 듯하다. 세 번째 첫 행의 ‘그’와 넷째 다섯째 행의 ‘그’가 이름은 같은 ‘그’일망정 동일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존재의 방황은 정점에 달하는 것 같다. 그런 존재의 방황을 감성적으로 읊은 것이 시라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생전의 김춘수 시인 또한 자신의 존재 의미 확인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했던 것 같다. 일본 유학시절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한국인 고학생들을 따라 도쿄 인근 가와사키 항구에 하역작업을 하러 갔다가 요코하마 헌병대 프락치가 끼여 있는 줄도 모르고 천황이나 총독정치 등에 대해 한국말로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7개월간 옥살이를 한 후 ‘불령선인(不逞鮮人)’ 딱지가 붙은 일이라든지 전두환 독재 때 시인으로서 저항은 못할망정 1981년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를 냉큼 받아들인 일 등에 대해서도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단언했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김춘수는 스스로 존재를 주장하지도 않고 타자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규정되는 것도 거부한 셈이었다. 관념과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무의미’ 시론에 푹 빠져버린 것도 그런 존재의 방황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를 불러 ‘꽃’으로 존재하게 해놓고는 정작 자신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고 열망한 김춘수 시인에게 “너는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나? 나도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답했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가 주장하는 존재의 의미는 그 자체가 ‘무의미’하여 ‘무의미의 시’에 몰두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꽃’은 읽으면 읽을수록 시적 감동보다는 철학적 고민에 휩싸이게 하는 시 중의 하나다. 김춘수는 ‘꽃의 시인’이 아니라 ‘존재의 시인’으로 불리는 게 옳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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