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일 월요일

빈집 -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공(空)의 집

삶과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면 스스로를 빈집에 가두게 된다. 뭔가 있었는데 없어져서 빈집이 아니라 원래 아무 것도 없었던 빈집에 갇히게 된다.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년, 기형도(奇亨度); 1960년-1989년> 


었다는 게 뭔가? ‘비다’는 “일정한 공간에 사람이나 사물 따위가 들어 있지 아니하게 되다”를 뜻하는 동사, 원래 아무 것도 없었나? 뭔가 있었는데 없어졌나? 어떤 때는 의미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그간 찾아온 의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인간의 삶 또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헷갈린다. 영어로 말하자면 ‘vacant’와 ‘empty’사이에서의 방황이라고나 할까. ‘vacant’나 ‘empty’나 둘 다 ‘빈’을 뜻하는 형용사지만 곱씹어보면 말맛이 확연히 다르다. ‘vacant’의 뿌리는 ‘비우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acare’로서 ‘원래 뭔가 있었거나 또는 있어야 하지만 그게 없어지거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통상 사람이 살도록 지어진 집에 사람이 없을 경우 또는 승객이 앉도록 만들어진 버스나 전철의 좌석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을 경우 등등을 말한다. 반면 ‘empty’의 뿌리는 고대영어 ‘ǣmettig’로서 ‘원래부터 비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빈집’은 1989년 서울 종로 2가 파고다 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어 세인들의 눈길을 끌었던 시인 기형도(奇亨度)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시, 그의 의문의 죽음과 맞물려 이런 저런 해석이 증폭됐던 그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빈집’의 ‘빈’이 ‘vacant’인지 ‘empty’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문맥상으로만 봤을 때는, 제3행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가 말해주듯 창의 밖에는 ‘겨울안개’가 있었고 창의 안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등이 있었으므로 ‘vacant’인 것처럼 보이지만, 제1행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잃어버린 사랑’이 맨 마지막 행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의 ‘가엾은 내 사랑’과 동일한 ‘사랑’이라면 ‘empty’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래 그 집에는 촛불과 흰 종이와 눈물과 열망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사랑을 잃어버린 후에는 그것들 또한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고, ‘잃어버린 사랑’은 ‘가엾은 내 사랑’이 되어 ‘빈집’에 갇혔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잃어버렸으므로 ‘가엾은 내 사랑’ 또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것인 바, 결국 그 ‘빈집’은 아무 것도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공간 즉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기형도가 ‘빈집’의 ‘빈’을 ‘vacant’로 여기다가 그게 ‘empty’라는 것을 절감했던 건 아닌지?! 즉 허무(虛無)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1994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어쩌면 기형도는 그의 사랑이었던 삶과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나머지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하고 ‘빈집’을 썼는지도 모른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가 이승을 하직한 파고다 극장은 24시간 영업을 하던 3류 극장으로서 당시 동성애자들이 들끓었기에, 그의 죽음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으나(실제 사인은 뇌졸중으로 판명), ‘빈집’을 쓸 당시 기형도가 자신의 삶이나 자기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가 자신의 죽음을 방치 내지는 결행했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기형도를 잘 안다는 어떤 시인은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라고 탄식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빈집’의 기형도의 유서(遺書)로 남았다. 그가 잃어버렸다는 ‘사랑’ 또한 실체가 있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색(色)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가 삶의 밑바닥으로 여겨지는 3류 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공(空)이 되고 말았다. ‘빈집’ 또한 공(空), 기형도의 시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빈집’의 ‘빈’이 ‘vacant’로 여겨지겠지만 그게 원래 ‘empty’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간과하면 ‘빈집’의 감동 또한 공(空)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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