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원의 느티나무가 연리지로 변해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땅에선 연리지가 되고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기를 원한다. 양귀비와 당현종의 사련도 그랬을 거라는 백거이의 관찰에서 사랑은 윤리와 도덕도 뛰어넘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
長恨歌(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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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吹仙袂飄飄擧 (풍취선몌표표거) 바람이 불어 선녀의 소맷자락이 날리니
猶似霓裳羽衣舞 (유사예상우의무) 흡사 무지개 치마와 날개옷이 춤추는 듯 하네
玉容寂寞淚闌干 (옥용적막누란간) 옥 같은 얼굴에 적막하고 눈물이 그치지 않으니
梨花一枝春帶雨 (이화일지춘대우) 배꽃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 하네
含情凝睇謝君王 (함정응제사군왕) 정을 품고 시선 모아 군왕(황제)께 감사말씀 올리네
一別音容兩渺茫 (일별음용량묘망) 한번 이별하고 나니 음성과 얼굴 모두 아련합니다
昭陽殿裏恩愛絶 (소양전리은애절) 소양전 안에서의 은혜와 사랑 끊어진 뒤로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중일월장) 봉래궁 안에서의 세월은 길기만 합니다.
回頭下望人寰處 (회두하망인환처) 고개 돌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不見長安見塵霧 (부견장안견진무) 장안은 보이지 않고 먼지와 안개만 자욱합니다.
唯將舊物表深情 (유장구물표심정) 오직 예전에 쓰던 물건으로 깊은 정 표하고자
鈿合金釵寄將去 (전합금채기장거) 장식함과 금비녀를 부쳐 보내려합니다.
釵留一股合一扇 (채류일고합일선) 비녀는 정강이 모양이고 장식함은 부채모양이니
釵擘黃金合分鈿 (채벽황금합분전) 비녀는 황금을 쪼갰고 장식함은 장식을 나눴습니다
但敎心似金鈿堅 (단교심사금전견) 마음을 금과 장식처럼 단단하게 먹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인간회상견) 천상과 인간세상에서 만나 서로를 볼 것입니다
臨別殷勤重寄詞 (림별은근중기사) 떠나려 함에 꼭 전할 말이 많아 서두르지만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량심지) 말 가운데 (우리) 두 마음만 아는 맹서가 있습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칠월 칠일(칠석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아무도 없는 밤에 은밀하게 속삭일 때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로 짝짓기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 원했었지요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끝없는 하늘과 변함없는 땅이 다할 때가 있더라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이 한은 면면이 이어져서 끊어질 때가 없을 것입니다
<백거이(白居易); 772년-846년>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시쳇말로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다. 그래서 ‘맹목적(盲目的) 사랑’이라는 말도 생겨났거니와 서양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blind love’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고 한다. 지난 2004년 영국 런던대학(UCL) 연구진은 뇌 학술지 '뉴로이미지(NeuroImag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면 뇌의 비판적 사고기능과 부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의 활동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었다. 일단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면 뇌가 상대의 특성과 성격을 평가할 필요가 줄어든다고 판단하여 맹목적으로 변하고, 그런 뇌의 작동은 낭만적 사랑과 모성애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도 사람이고, 그 사람이 사랑에 눈이 멀면 나라가 기울어진다고 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중국 한(漢) 무제(武帝) 때 궁중 음악을 관장하는 협률도위(協律都尉) 이연년(李延年)이 “북방에 아름다운 여인 있어(北方有佳人)/ 세상에 둘도 없이 홀로 섰네(絶世而獨立)/ 한번 돌아보니 성이 기울고(一顧傾人城)/ 다시 돌아보니 나라가 기우네(再顧傾人國)/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을 어찌 모를까마는(寧不知傾城與傾國)/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얻기 어렵네(佳人難再得)”라고 노래를 불렀고, 이에 무제가 과연 그런 여인이 있는지 묻자 옆에 있던 누이 평양공주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이 바로 그런 미인이라고 귀띔해줬고, 무제가 그녀를 불러들이고 보니 과연 아름다워서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고 ‘한서(漢書)’는 전한다. 그녀가 바로 한무제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홍안절대이부인(紅顔絶代李夫人)’ 이연((李姸)이다. 만년의 한무제는 요절한 이부인을 그리워하여 저 유명한 ‘추풍사(秋風辭)’를 짓기도 했다.
'산책하는 양귀비' 1821년 타카쿠 아이가이 그림 |
그러나 진짜 ‘경국지색’으로는 당나라 현종 때의 양귀비(楊貴妃)가 첫손에 꼽힌다. 연못을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넋을 잃고 가라앉았다고 해서 ‘침어(沈魚)’로 불렸던 월(越)나라의 서시(西施), 가야금 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진다고 하여 ‘낙안(落雁)’으로 불렸던 한(漢) 원제(元帝) 때의 왕소군(王昭君), 달이 부끄러워 자신을 가릴 정도로 예뻐 ‘폐월(閉月)’로 불렸던 한(漢) 헌제(獻帝) 때의 초선(貂蟬)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양귀비는 꽃을 건드리자 꽃이 부끄러워하면서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해서 ‘수화(羞花)’로 불린다. 본명이 양옥환(楊玉環)인 그녀는 원래 현종의 며느리였으나, 그녀에게 반한 현종이 화산의 도사(道士)로 빼돌렸다가 궁 안에 도교사원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여관(女冠)으로 불러들여 취했던 바, 부자지간마저 갈라놓을 정도로 예뻤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현종은 즉위 초 ‘개원(開元)의 治(치)’로 칭송되는 어진 정치를 폈으나 양귀비에게 눈이 먼 이후엔 정사를 멀리하고 환락을 일삼다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자초하여 양귀비는 참살 당하고 자신은 권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양귀비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지므로, 4대 미인 중 명실상부(?)한 경국지색으로 나라를 기울게 한 미인은 양귀비가 유일하다고 하겠다.
사람들은 ‘맹목적인 사랑’을 비웃지만 내심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한 사람일수록 그러하다. 양귀비와 현종의 맹목적인 사랑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 후 활동했던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년-846년)도 그랬던 것 같다. 자(字)는 낙천(樂天)이어서 ‘백낙천’으로도 잘 알려진 백거이는 29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32세에 황제 친시(親試)에 합격하면서 한림원 학사가 되어 승승장구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외롭고 쓸쓸했던 것 같다. 그 즈음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를 보면 양귀비와 현종의 맹목적 사랑에 대한 선망(羨望)으로 가득 차 있다. 도학(道學)을 숭상하는 관료가 나라를 기울게 하여 정치적으로 단죄당한 사람들의 사사로운 애정을 찬미하는 서사시를 썼다는 자체가 파격으로 보이거니와 그게 당시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큰 히트를 쳤다는 것도 놀랍고, 구구절절 너무 섬세하고 애절하여 1천2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까지 애송되고 있음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비익조(比翼鳥)’는 암수가 각기 눈과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서 둘이 합쳐져야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이고 ‘연리지(連理枝)’는 각기 다른 뿌리를 가진 나무들의 가지가 하나가 되어 붙은 것, 하늘에서는 비익조로 짝짓기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사랑 고백이야말로 앞으로 또 천년이 지난다 해도 변함없이 인구에 회자될 만 하지 않은가?!
백거이 초상 |
백거이는 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관료였지만 마음만큼은 매우 부드럽고 섬세한 남자였던 것 같다. 조정의 공론에 반대하다가 항명으로 몰려 유배당했을 때 지었다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비파행(琵琶行)’은 그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비파행’은 화려한 옛날을 회상하면서 비파를 타는 늙은 창기의 이야기를 읊은 것으로서, 그 늙은 창기의 처지가 유배지에서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처지와 너무 흡사하여 동병상련을 느꼈는지는 모르나, “滿座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좌중 사람들이 듣고서 모두가 눈을 가리고 우는데)/ 座中泣下誰最多(좌중읍하수최다,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던가?)/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강주사마(백거이 본인)의 푸른 적삼이 흠뻑 젖었더라)”라고 자신의 여린 속내를 매우 솔직하게 드러냈었다.
백거이의 작품을 감상할 때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작중의 화자가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觀察者) 입장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 등의 시작(詩作)이 자신이 작품 속 화자가 되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 반면 백거이는 관찰자 시점에서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바, 그런 시작 기법은 관료생활에서 얻어진 절제(節制)와 거리두기 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자칫하면 식상할 수 있는 감상(感傷)을 적절히 조절하는 순기능을 발휘함으로써 망외(望外)의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본다. 양귀비가 ‘장한가’를 쓰고 늙은 창기가 ‘비파행’을 썼다면 자칫 개인의 한풀이로 비쳐질 이야기가 제3자의 정제된 관찰을 통해 더욱 더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기법이야말로 서사시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어서, 백거이의 작품들이 유난히 돋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위의 ‘장한가’ 중 ‘이상 생략’된 부분을 적어둔다.
漢皇重色思傾國 (한황중색사경국) 御宇多年求不得 (어우다년구부득)
楊家有女初長成 (양가유녀초장성) 養在深閨人未識 (양재심규인미식)
天生麗質難自棄 (천생려질난자기) 一朝選在君王側 (일조선재군왕측)
回眸一笑百媚生 (회모일소백미생) 六宮粉黛無顔色 (육궁분대무안색)
春寒賜浴華淸池 (춘한사욕화청지)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골세응지)
侍兒扶起嬌無力 (시아부기교무력) 始是新承恩澤時 (시시신승은택시)
雲鬢花顔金步搖 (운빈화안금보요) 芙蓉帳暖度春宵 (부용장난도춘소)
春宵苦短日高起 (춘소고단일고기) 從此君王不早朝 (종차군왕부조조)
承歡侍宴無閑暇 (승환시연무한가) 春從春游夜專夜 (춘종춘유야전야)
後宮佳麗三千人 (후궁가려삼천인)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총애재일신)
金屋粧成嬌侍夜 (금옥장성교시야) 玉樓宴罷醉和春 (옥누연파취화춘)
姊妹弟兄皆列土 (자매제형개렬토) 可憐光彩生門戶 (가련광채생문호)
遂令天下父母心 (수령천하부모심) 不重生男重生女 (부중생남중생녀)
驪宮高處入靑雲 (려궁고처입청운) 仙樂風飄處處聞 (선낙풍표처처문)
緩歌慢舞凝絲竹 (완가만무응사죽) 盡日君王看不足 (진일군왕간부족)
漁陽鼙鼓動地來 (어양비고동지내) 驚破霓裳羽衣曲 (경파예상우의곡)
九重城闕煙塵生 (구중성궐연진생) 千乘萬騎西南行 (천승만기서남항)
翠華搖搖行復止 (취화요요항복지) 西出都門百餘里 (서출도문백여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부발무나하) 宛轉蛾眉馬前死 (완전아미마전사)
花鈿委地無人收 (화전위지무인수) 翠翹金雀玉搔頭 (취교금작옥소두)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엄면구부득) 回看血淚相和流 (회간혈누상화류)
黃埃散漫風蕭索 (황애산만풍소삭) 雲棧縈紆登劍閣 (운잔영우등검각)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하소인항) 旌旗無光日色薄 (정기무광일색박)
蜀江水碧蜀山靑 (촉강수벽촉산청) 聖主朝朝暮暮情 (성주조조모모정)
行宮見月傷心色 (항궁견월상심색) 夜雨聞鈴腸斷聲 (야우문령장단성)
天旋地轉廻龍馭 (천선지전회용어) 到此躊躇不能去 (도차주저부능거)
馬嵬坡下泥土中 (마외파하니토중) 不見玉顔空死處 (부견옥안공사처)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상고진첨의) 東望都門信馬歸 (동망도문신마귀)
歸來池苑皆依舊 (귀내지원개의구) 太液芙蓉未央柳 (태액부용미앙류)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여면류여미) 對此如何不淚垂 (대차여하부누수)
春風桃李花開日 (춘풍도리화개일) 秋雨梧桐葉落時 (추우오동섭낙시)
西宮南內多秋草 (서궁남내다추초) 落葉滿階紅不掃 (낙섭만계홍부소)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자제백발신) 椒房阿監靑娥老 (초방아감청아노)
夕殿螢飛思悄然 (석전형비사초연) 孤燈挑盡未成眠 (고등도진미성면)
遲遲鐘鼓初長夜 (지지종고초장야) 耿耿星河欲曙天 (경경성하욕서천)
鴛鴦瓦冷霜華重 (원앙와냉상화중) 翡翠衾寒誰與共 (비취금한수여공)
悠悠生死別經年 (유유생사별경년) 魂魄不曾來入夢 (혼백부증내입몽)
臨邛道士鴻都客 (임공도사홍도객) 能以精誠致魂魄 (능이정성치혼백)
爲感君王展轉思 (위감군왕전전사) 遂敎方士慇懃覓 (수교방사은근멱)
排空馭氣奔如電 (배공어기분여전) 升天入地求之遍 (승천입지구지편)
上窮碧落下黃泉 (상궁벽낙하황천) 兩處茫茫皆不見 (양처망망개부견)
忽聞海上有仙山 (홀문해상유선산) 山在虛無縹緲間 (산재허무표묘간)
樓閣玲瓏五雲起 (누각령롱오운기) 其中綽約多仙子 (기중작약다선자)
中有一人字太眞 (중유일인자태진) 雪膚花貌參差是 (설부화모삼차시)
金闕西廂叩玉扃 (금궐서상고옥경) 轉敎小玉報雙成 (전교소옥보쌍성)
聞道漢家天子使 (문도한가천자사) 九華帳裏夢魂驚 (구화장리몽혼경)
攬衣推枕起徘徊 (남의추침기배회) 珠箔銀屛迤邐開 (주박은병이리개)
雲鬢半偏新睡覺 (운빈반편신수교)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부정하당내)
<이하 글의 첫머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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