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6일 목요일

월명성희 - 역사(歷史) 속의 영웅 비웃는 시(詩) 속의 간웅

'적벽'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적벽의 한 부분(왼쪽)과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 삽화. 충성이 금과옥조인 유교를 국시로 삼은 명나라 때 나관중은 삼국지연의를 지으면서 한황실의 후예를 자처한 유비는 긍정적으로 묘사한 반면 위나라의 기틀을 다진 조조는 부정적으로 묘사했었다.

月明星稀 烏鵲南飛 (월명성희 오작남비) 

對酒當歌 人生幾何 (대주당가 인생기하)   술을 대하면 노래를 해야지, 인생 얼마나 사나 
譬如朝露 去日苦多 (비여조로 거일고다)   아침이슬 같으니 지난날 고통이 많았네 
慨當以慷 憂思難忘 (개당이강 우사난망)   슬퍼하고 탄식해도 근심 잊혀지지 않으니 
何以解憂 唯有杜康 (하이해우 우유두강)   어떻게 근심을 푸나? 오직 술뿐일세 
靑靑子衿 悠悠我心 (청청자금 유유아심)   푸르고 푸른 옷자락들 내 마음은 걱정 또 걱정 
但爲君故 沈吟至今 (단위군고 침음지금)   오로지 그대들을 위해 지금껏 끙끙 앓아왔네 
呦呦鹿鳴 食野之苹 (유유록명 식야지평)   우우 우는 사슴들이 들에서 햇쑥 뜯어먹듯이 
我有嘉賓 鼓瑟吹笙 (아유가빈 고슬취생)   내게도 아름다운 손님 오셨으니 거문고 타고 생황 부네 
明明如月 何時可輟 (명명여월 하시가철)   달은 밝고 밝은데 어느 때 그칠 수 있으랴 
憂從中來 不可斷絶 (우종중내 부가단절)   마음에서 우러나는 근심 끊어버릴 수가 없네 
越陌度阡 枉用相存 (월맥도천 왕용상존)   논두렁 밭두렁 건너면서 굽실거리고 안부 묻고 
契瀾談嘗 心念舊恩 (계란담상 심념구은)   눈물로 약속하고 말로 떠보면서도 속으론 옛 은혜 생각하네 
月明星稀 烏鵲南飛 (월명성희 오작남비)   달빛 밝아 별빛 흐려지는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가는구나 
繞樹三匝 何枝可依 (요수삼잡 하지가의)   나무 둘레 서너 차례 맴돈들 어느 가지 의지하랴 
山不厭高 海不厭深 (산부염고 해부염심)   산은 높음을 싫어하지 않고 바다는 깊음을 싫어하지 않느니 
周公吐哺 天下歸心 (주공토포 천하귀심)   주공이 입에 문 것 뱉어내자 천하인심 돌아왔다네 

                                                                             <조조(曹操): 155년-220년>

사(歷史)라는 것도 인간이 쓰는 것이어서 100%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주지의 상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주장을 믿고 싶지 않지만 역사를 파고들면 들수록 그런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권력자가 큰소리 한 번 치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쩡쩡 울리는 한반도처럼 좁은 지역에서의 역사는 승자가 제 손바닥 위에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당(唐)나라가 존폐 위기에 몰린 신라(新羅)의 요청으로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를 차례로 멸망시켜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고 신라 땅에도 계림도독부(鷄林大都督府)를 둔 게 엄연한 사실(史實)임에도 불구하고 고려 인종(仁宗) 때 실세로 부상한 신라 왕족 후예 김부식(金富軾)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저술하면서 신라 혼자 힘으로 삼한을 통일한 것처럼 꾸민 것은 물론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 등을 영웅으로 만들어놨고, 고려 태조 왕권(王建)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아 고려를 세운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태봉(泰封)의 궁예(弓裔)를 사이비 승려로 몰아세웠으며, 고려 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李成桂) 또한 고려왕조 멸망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우왕(禑王)이 승려 신돈(辛旽)의 자식이었다는 등의 추잡한 소문을 부풀려 고려왕실을 깎아내렸었다. 그런 역사 쓰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기세가 등등해진 보수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종신집권을 획책하다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아가씨들과 술을 마시다가 측근에게 저격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와 ‘민족의 영웅’으로 재포장하고 있음을 본다. 엊그제는 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미화하는 내용의 시집 ‘사람’을 출간한 것과 협회 소속 젊은 시인들이 집행부에 대국민 사과를 촉구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인간에 의한 역사왜곡은 땅덩어리가 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최초로 통일국가를 세웠던 진시황은 아들 대에 이르러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중국 역사상 가장 잔악한 폭군 중의 하나로 기록됐고,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자신이 천하를 평정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항우(項羽)의 잔인무도함을 한껏 부풀렸으나 부패한 진나라를 뒤엎은 것은 유방이 아니라 항우였다는 사실은 천하가 주지하는 바다. 중국 역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의 기술이 비교적 공정하다고는 하나 그게 한나라 때 쓰인 것이어서 진시황이나 항우에게는 인색한 반면 한 고조에게는 매우 후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조조의 초상
후한(後漢) 말기 비상하고 탁월한 재능으로 여러 제후들을 차례로 격파하여 위(魏)나라 건국의 토대를 닦았던 조조(曹操; 155년-220년)도 역사왜곡의 희생자로 손꼽힌다. 당시 한나라는 십상시(十常侍)의 난에 이은 군벌의 전횡으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어서 한황실의 후예를 자처한 촉(蜀)의 유비(劉備)와 오(吳)의 손권(孫權)이 천하를 도모하고 있었던 바, 조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해체될 운명이었던 바, 대부분의 사서(史書)들이 조조의 손에 한나라가 망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음에 무덤 속의 조조가 눈살을 찌푸릴 만도 하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위나라 역시 2대를 못 넘기고 망한데다가, 특히 충성을 금과옥조로 삼는 유교가 국시였던 명(明)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저 유명한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쓰면서 조조를 간웅(奸雄) 또는 효웅(梟雄)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조조는 중국 역사에서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20세기 들어 공산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모택동(毛澤東)이 조조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한 이래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라는 게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재차 실감하게 된다. 지난 2010년 인기리에 방영된 총 95부짜리 대하드라마 ‘삼국(三國)’은 조조를 주인공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렸었다. 

조조가 기반을 닦았던 위나라가 1백년만이라도 지속됐다면 조조가 한 고조 유방 못지않은 영웅으로 기록됐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조조야말로 명실상부하게 문무를 겸비한 영웅이었다. 환관의 후손으로서 신분의 벽을 넘어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으로 위나라 건국의 초석을 놓은 호걸이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재를 발휘하여 자신의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건안삼조(建安三曹)’라 불렸고, 그가 전장을 누비며 지었다고 해서 ‘횡삭부시(橫槊賦詩; 창을 비켜들고 지은 시)’로 불리는 시편들을 보면 조조의 인간적인 고뇌와 섬세한 성품이 여실히 드러난다. 

조조의 ‘횡삭부시’ 중의 하나인 ‘월명성희 오작남비(月明星稀 烏鵲南飛)’는 조조가 오나라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을 벌이기 며칠 전 선상에서 진중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베푼 연회 도중 지은 것으로서, 당시 양주 자사 유복이 ‘월명성희 오작남비(月明星稀 烏鵲南飛) 요수삼잡 하지가의(繞樹三匝 何枝可依)’ 구절이 불길하다고 지적하자 대노하여 창으로 찔러 죽였다는 등의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시 전편에 조조의 웅지와 솔직담백한 성격과 정치가로서의 포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서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달빛 밝아 별빛 흐려지는데 까막까치 남으로 날아가는구나(月明星稀 烏鵲南飛)”는 “뛰어난 영웅이 나타나면 다른 군웅은 빛을 잃는다”로 해석되어 명구로 인구에 회자되는 바, 시(詩) 속의 ‘간웅’이 역사 속의 ‘영웅’들을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북송(北宋)의 시인이자 문장가 소식(蘇軾)은 그의 대표작 ‘적벽부(赤壁賦)’에서 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했었다. 또 “논두렁 밭두렁 건너면서 굽실거리고 안부 묻고(越陌度阡 枉用相存) 눈물로 약속하고 말로 떠보면서도 속으론 옛 은혜 생각하네(契瀾談嘗 心念舊恩)”에서는 조조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심가가 아니라 속으론 정이 두텁고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읽혀진다. 마지막 행의 ‘주공토포(周公吐哺)’는 “현인(賢人)이 찾아오면 입에 먹은 것[哺]을 뱉어내고[吐] 감던 머리[髮]도 움켜쥐고[握] 나와 맞이했다”는 주(周)나라 주공(周公)의 토포악발(吐哺握髮) 고사를 인용한 것으로서, 조조는 현인이나 훌륭한 장수를 구하기 위해선 자존심이고 뭐고 다 접어두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였던 바, 보스로서의 그릇 크기 또한 매우 컸던 것 같다. 조조는 천하의 패권을 위해 전쟁을 벌였을망정 유비처럼 의형제 관우․장비의 원수를 갚는답시고 오나라를 쳐들어갔다가 수십만 병졸을 몰살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었다. 조조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조조를 왜곡한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인간됨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겉포장만 번지르르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말이다. 

승자가 쓰는 역사와는 달리 패자도 쓸 수 있는 시가 역사보다도 진솔하다고 믿고 싶다. 역사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실(史實)을 나열한 것으로서 진실 유무와는 관계없이 읽혀지는 반면 시는 작자의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서 독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읽혀지지 않으니까. 평생 양지를 지향해온 시인 서정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56세 생일 때 헌정한 ‘처음으로-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등 특정인물을 찬미하는 서사시(敍事詩)나 송가(頌歌)가 기념식장에서나 읽혀질 뿐 당대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은가?! 박근혜 정권 출범에 즈음하여 한국시인협회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미화하는 시집 ‘사람’을 출간한 것이야말로 시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역사 왜곡 들러리 서기’여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거기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비롯, 도산 안창호, 몽양 여운형, 윤동주 시인, 녹두장군 전봉준, 주시경 선생 등 근·현대의 주요 인물을 함께 수록했다고는 하나 독재자들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의도 또한 매우 불순해보인다.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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