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송별(送別) - 그대와 내가 구름으로 다시 만나려니


送別 (송별)

下馬飮君酒 (하마음군주)   말에서 내려 그대와 술을 마시네 
問君何所之 (문군하소지)   그대에게 어느 곳으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君言不得意 (군언부득의)   그대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歸臥南山陲 (귀와남산수)   남산 언저리로 돌아가 숨어서 살려고 한다네 
但去莫復問 (단거막복문)   그렇다면 가시게나, 더 묻지 않겠네 
白雲無盡時 (백운무진시)   흰 구름 다하는 때가 없으려니(언제나 흰 구름 속이려니) 

                                           <왕유(王維); 699년-759년> 

람이 사는 게 삶이지만, 삶이 반복되면서 사람 또한 그 삶 속에 있게 되는 바, 그걸 전통(傳統)이나 관습(慣習)이라고 한다. 비유(比喩)나 상징(象徵)도 문화권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평화를 상징한다는 비둘기 만해도 그렇다. 여호와가 대홍수로 인간세상을 심판할 때 홍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노아에게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어다줬다는 기독교 성경 속 이야기를 진실로 믿는 서양 사람들은 비둘기를 보면 평화나 희망을 떠올리지만 살이 쪄서 잽싸게 날지 못하는 비둘기를 활로 쏴서 잡아먹고 사는 적도 부근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은 비둘기를 보면 군침을 흘린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구름도 동서양 사람들의 눈에 다르게 비쳐진다. 한자 구름 운(雲)은 하늘[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양의 비 우(雨) 아래 수증기가 퍼지는 모양의 운(云)을 붙인 것으로서 매우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반면 영어 ‘cloud’의 뿌리를 파보면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신의 궁둥이를 머릿속에 떠올렸는지 ‘궁둥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loutos’가 딸려 나온다. 자연 속에서의 장수를 최고의 덕으로 간주하는 도교 사상의 영향으로 한자문화권 사람들은 구름을 선계(仙界)의 상징으로 인식한 반면 정신세계의 뿌리가 그리스 신화 속에 닿아 있는 서양 사람들은 구름을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신의 궁둥이쯤으로 간주하여 좋지 않게 여겨왔다는 행간이 읽혀진다. 실제로 에드거 앨런 포우가 그의 명작 ‘아나벨 리(Annabel Lee)’에서 “한 떼의 구름에서 나온 바람이 나의 아름다운 아나벨 리를 싸늘하게 만들었다(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고 자신(?)있게 쓴 것도 그 같은 문화적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한자문화권에서 구름이 선계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은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에 힘입은 바 크다. 신선사상의 핵심은 도를 닦아 신선이 됨으로써 불로장생하는 것, 구름이 해․산․물․돌․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 등과 함께 인간의 불로장생을 기원하기 위해 그려지는 십장생도(十長生圖)에 등장하는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다. 도교는 후한(後漢, 서기 25년-220년) 말기 믿거나 말거나 전설 속의 인물 장도릉(張道陵)을 개조로 출현한 오두미도(五斗米道) 또는 천사도(天師道)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기실은 그 이전부터 민간에서 유행해오다가 당(唐)나라 때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당시 자의반 타의반 벼슬살이와는 거리를 두고 자연 속에서 시문 짓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이백(李白) 등 많은 문인들이 도교에 심취했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왕유 시선, 1984년, 삼련서점
몇 번의 좌절을 경험한 후 인간세상을 멀리하면서 자연 속에서 산수를 벗 삼았던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 왕유(王維; 699년-759년)의 시나 그림 속에 구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당시의 사회상과 전통과 관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어머니가 열렬한 불교 신자인 까닭에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던 왕유는 불교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자(字)까지 마힐(摩詰)이라고 했으나,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반란군의 포로가 돼 부역을 했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관직을 박탈당하는 등의 우여곡절과 함께 속세에 환멸을 느낀 후, 망천(輞川; 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불교에 심취하여 속세를 멀리했던 왕유를 가리켜 ‘시불(詩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왕유의 작품을 보면 유불선(儒佛仙)이 고루 나타나는 바, 유가(儒家)의 법도를 지키면서도 불교의 공(空)을 노래하는 한편 선경(仙境)을 동경했었고, 산수를 소재로 한 그림에도 특출한 재주를 보여 훗날 문인화의 원조격인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을 받는다. 북송의 문장가 소식(蘇軾)은 “왕유의 시를 보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왕유가 개척한 문인산수화가 담백한 농담(濃淡)과 절제된 여백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정갈하게 가라앉혀주듯이 왕유의 시 또한 독자들에게 부담 없는 여운을 준다. 왕유의 시 가운데에는 송별(送別)을 읊은 것들이 유난히 많지만, 대부분 정한(情恨)에 휩싸이지 않고 담백한 여운을 주는 바, 그 또한 유불선에서 체득한 절제(節制)와 각오(覺悟)와 달관(達觀)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위에 예시한 송별시도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하다. 벗과 이별주를 마시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남산 언저리로 가서 숨어 살겠다고 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보내겠다는 것이다. 거기 슬픔이나 아픔, 미련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다. 구름 속에 묻혀 살겠다는 사람을 물어물어 다시 찾아가봤자 구름 속만 헤맬 것이라는 달관만 남아 긴 여운을 준다. 왕유의 또 다른 송별시 ‘산중상송파(山中相送罷)’도 그렇다. 

山中相送罷 (산중상송파)   산에서 서로를 보내고 나서 
日暮掩柴扉 (일모엄시비)   해 저물어 사립문을 닫네 
春草明年綠 (춘초명년녹)   봄풀이야 내년에도 푸르겠지만 
王孫歸不歸 (왕손귀불귀)   떠나간 그대 다시 오려나 안 오려나 

어디로 가느냐고 다시 묻지 않겠다는 것이나 벗과 헤어지고 나서 해가 저물자 사립문을 닫는 것이야말로 절제의 극치, 그걸 그림으로 그린다면 또 한 폭의 차분한 분위기의 문인화(文人畵)가 되지 않을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