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안개 - 안개의 탓만은 아니다

퀸즈 포레스트 힐의 사거리. 비안개에 촉촉하게 젖은 불빛들이 '안개의 탓만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안개

1 .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 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들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기름이 흐르는 욕망의 도시 뉴욕도 스무 살 처녀애처럼 귀엽게 눈을 흘길 때가 있나? 흐림, 비, 안개....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부끄러운 듯 안개 속에 머리를 파묻고 서 있는 마천루들이 너무나 순진해 뵌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들이 관능적으로 머리채를 흔들어댄다. 젖은 눈의 신호등은 애수로 반짝인다. 누군가를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날에 들려오는 음악은 이름도 모르는 샹송 가수의 모노톤이어야 한다. 가끔 묵직한 첼로 음이 바닥에 깔리면 더욱 좋고.

지금 살아 있다면 만 50세가 되었을 것이다.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던 기형도라는 시인이 생각난다. 서해안 간척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아버지를 따라 유랑하다가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했을 때 안개밖에 친구 삼을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기형도를 세상에 드러나게 한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안개’ 역시 x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들의 텅 빈 가슴을 채워주던 소하리의 안개였다.

소하리의 안개는 우울하면서도 새침했던 것 같다. 소설가 김승옥이 1964년 ‘사상계’에 발표한 단편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에서 등장인물들을 나른하고 축축한 몽환의 세계로 몰아넣던 안개도 아니었고, 입이 약간 삐뚤어져 더 섹시해보이던 가수 정훈희의 ‘안개’도 아니었으며, 바닷가나 들판에서 군대처럼 밀려오는 농무도 아니었다. 이른 새벽 공원에서 밤새 잠 못 이룬 마음 여린 산보자들의 슬픔과 고뇌를 감싸주는 아량도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는, 아무 인연도 없다는 듯이 스쳐 지나가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아픈 속내를 알고는 차마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런 안개였던 것 같다.

기형도는 안개 속에서 나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를 통해 이상한 이름 석자를 되뇌었을 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가 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범인은 안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었다. 설령 안개가 기형도의 목을 조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스물아홉 살 짜리 문학청년이 무엇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다가 새벽녘 싸구려 극장에서 숨을 거둔 이유만큼은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누군가와 동무하고 싶었으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깔깔거려보고 싶었으나,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기보다는 자신이 그 누구를 알아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싶었으나, 그저 외로운 사람들끼리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싶었으나, 그런 기대감을 갖고 안개 속을 마냥 걸었지만 안개가 몰인정하게도 그 기대감들을 박살냈을 거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새벽녘 사창가의 창녀들처럼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 끌어들이는 실랑이를 벌여 그를 지치게 하고는 그가 푹 고꾸라졌을 때 “모든 건 너의 개인적인 불행일 뿐, 나의 탓은 아니다”라고 희미하게 비웃었는지도 모르고.

맞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는 시인의 관찰에 동의한다. 오늘의 고뇌와 슬픔도 모두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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