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9일 금요일

가는 길 - 그립다는 말 안 해도 그립다

퀸즈 롱아일랜드 시티의 한 산책로. 길이 있어서 걷는 건지 걷고 싶어서 길을 만들어놓은 건지 헷갈리지만 길을 가다보면 가슴 속 한 구석에서 그리움 같은 게 느껴진다.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金素月) : 1902년-1934년>


소월이 대갈통의 피도 마르지 않았을 21세의 애송이 시절인 1923년 10월 ‘개벽(開闢)’ 40호에 발표한 ‘가는 길’은 우스꽝스럽게도 청춘남녀보다도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읽으면 더 찐하다. 일상의 톱니바퀴에서 빠져 나와 텅 빈 공원을 산책하면서 호수에 잠긴 낮달을 바라보면서 담배 연기 길게 내뿜으면 그리움에 풍덩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 그리움의 호수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일수록 발을 헛디뎌 익사(?)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물어보나마나, 그런 ‘익사사고’를 ‘방황(彷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지만 사랑할 사람이 없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갈 곳이 없으며, 말초신경을 다 만족시켜도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 친정으로 쫓겨났다가 되돌아와 문간에 서 있는 여편네같은 가을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지금 그들은 이제 긴 여행을 떠날 차비를 해야 한다. 세월의 강물에 그리움을 띄운다는 게 얼마나 슬프고 고독하고 처절한 작업인지 뼈저리게 학습할 각오를 해야 한다.

방황할 때는 좋아하는 노래일수록 눈을 감고 들어야 한다. 가능한 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얼굴은 보지 않는 게 좋다. 그걸 무시했기에 2년 가까이 출퇴근길에 태우고 다니던 가수 주현미를 라과디아 공항 근처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차창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찬바람 쌩쌩 불던 어느 일요일 오후 소파 위에 누워 텔레비전을 틀었을 때 나타난 그녀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흘러간 뽕짝을 진지하게 부르던 옛날의 주현미가 아니었다. 짙은 화장, 삶의 무게에 의해 축 쳐진 눈매, 바랜 음색, 입 큰 것 말고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까까머리 시절 사모하던 국어 선생님을 하얀 눈 조명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네 캬바레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세상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씁쓸하게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애수(哀愁), 왜 술에 취해 알딸딸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브루클린 세탁소 김씨와 브롱스 야채가게 이씨가 플러싱 노래방에서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를 때마다 왜 두 눈을 지긋이 즈려 감는지 주현미는 알까 모를까? 몰랐으면 좋겠다.

김소월
김소월의 ‘가는 길’에서 노래한 그리움 또한 대상이 없는 것이었다. 허리케인 지나간 후 맑게 갠 하늘에서 길을 잃은 흰 구름의 방황 같은 것, 그걸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래서 튀어나온 게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리움은 말이나 표현에 선행하는 것, 인생을 ‘가는 길’에 비유할 때 그런 그리움은 필연적이라는 게 김소월의 관찰이었던 것 같다.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가마귀’를 등장시켜 ‘서산(西山)에 해진다’ 즉 ‘좋은 세월(시절)이 막을 내린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게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기실 마지막 연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또한 ‘장강의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고, 일대(같은 세대)에서도 새 사람이 옛 사람을 대신한다(長江後浪推前浪, 一代新人換舊人)’는 중국의 격언을 슬그머니 차용한 것으로서,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는 길’은 문학청년의 습작(習作)같은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다. 김소월이 활동했던 시기가 한국 현대시의 발아기였고 그 시기에는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소재에의 의존’이나 이미지나 수사의 표절을 문제 삼는다는 게 쓸데없는 시비걸기(?)로 간주됐기에, ‘가는 길’ 또한 ‘한국의 명시’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 김소월이 인생 내리막길에 선 늙은이의 정서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는 하지만!

앞만 보고 살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다봤을 때 후회의 징검돌들이 끝없이 놓여진 것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 내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이라는 건 그 후회의 징검돌들을 건너올 때 놓치거나 잃어버린 것, ‘그리워하다’라는 의미의 영어 ‘miss’ 또한 본래는 ‘놓치다’ ‘잃어버리다’라는 의미다.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잃어버렸나? 먹고사느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르면서 사람의 눈빛만 봐도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대충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앉은뱅이책상에다 촛불 켜놓고 시를 쓸 수 있을까? 누구를 죽도록 사랑하여 비 오는 장충단 공원 벤치에 앉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을까? 변두리 극장 귀퉁이 좌석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보고 눈물 흘릴 수 있을까?....고백컨대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다. 그런 ‘자신 없음’을 ‘그리움’의 끈으로 단단히 묶어 꿋꿋하게 세우고 싶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 그리움이 외로움으로 변한다는 것도 이미 골백번도 더 깨달았다.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마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나 꺾으며 먼 산 바라보던 도연명(陶淵明)도 “...머릿속에 먹물 든 남자는 늘 혼자 취해있고(一士長獨醉) 열심히 살아가는 남자는 해가 다 가도록 깨어 있기에(一夫終年醒) 취하고 깨어 있음을 서로 비웃어(醒醉還相笑) 말을 해도 서로 맞지 않는다(發言各不領)...”고 긴 한숨 내쉬지 않았던가?! 병입고황(病入膏肓), 치료약도 없다.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립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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