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목요일

홀로서기 - 그 이후에는 ‘함께 넘어지기’

롱아일랜드 시티의 한 공원에서 바라다 보이는 맨해튼 풍경. 

홀로서기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이하 略>  <서정윤; 1957년- >


설은 머리로 읽고 시는 가슴으로 읽는다. 1984년 ‘현대문학’에 ‘화석’ ‘겨울 해변가에서’ 등의 작품으로 김춘수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서정윤의 연작시 ‘홀로서기’는 애인에게 채이고 직장에서 해고당했을 때 사글세방으로 돌아와 소주 홀짝이며 가슴으로 읽으면 훌륭한 안주깜이 된다. 살짝만 깨물어도 입안 가득 고소함이 번지는 땅콩 같은 시다. 문학적 감수성은 풍부했어도 공부는 별로 잘하지 못했던지 재수 끝에 영남대 국문과에 진학했다는 더벅머리 총각이 ‘영대문화’를 편집하면서 발표했던 ‘홀로서기’는 제목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훌륭한 시일뿐만 아니라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지 않아도 재밌게 읽혀진다. 평이한 시어(詩語)의 징검돌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정제된 감성의 조약돌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정윤 시집 '홀로서기' 표지
87년 처음 시집으로 엮어진 ‘홀로서기’ 시리즈는 이미 지난 2002년 판매부수 300만부를 넘어섰고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의미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80년대의 시’라는 거창한 수식어까지 붙여준다. 서정윤이 시대의 감성을 잘 읽었는지 시대가 서정윤의 감성에 젖었는지는 섣불리 분간할 수 없겠지만 그 작품이 군사독재가 무너지면서 몰고 온 혼돈, 가치관의 뒤죽박죽, 물질과 향락과 몰개성의 물살에 휩쓸렸던 시대를 대표하는 시들 중의 하나라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듯싶다. 그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찾아 홀로 서려고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을 쳤던가! 고등학교 문학의 밤에서나 낭독하면 어울릴 감상을 꼬옥 껴안으며 싸구려 카타르시스에 취해 두 눈 지그시 감던 철수와 영희,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원했던 그 때 그 시절 철수와 영희에게 있어서 ‘홀로서기’는 솜사탕 같은 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솜사탕은 솜사탕, 철수가 영희를 꼬드길 때 사먹던 솜사탕은 참으로 감미로운 것이었지만 둘 다 갱년기에 접어들어 눈길 마주치는 것을 버거워할 때는 거저 줘도 먹고 싶지 않은 게 솜사탕이라는 것을 어느 아저씨 아줌마가 부인하랴. 철수와 영희가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먹고살기 위해 365일 뼈 빠지게 일하면서 아까운 청춘 다 까먹은 후, 사는 게 허전하다고 느껴지는 어느 비 오는 날 그 ‘홀로서기’를 다시 읽는다면? 그 때도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아득한 미소를 날릴까?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철없던 시절 청승 참 많이 떨었다고 배시시 웃을 것 같다. 더벅머리 대학생 서정윤은 싸구려 감상에 취해 있으면서도 도덕의 열쇠는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듯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고 중얼거렸었지만 세상의 단맛 쓴맛을 어느 정도 경험한 올해 쉰셋의 중년 남자 서정윤은 홀로 서기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을 실토하리라 믿는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더 이상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찾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일찍이 플라톤이 ‘향연’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안드로기노스’(androgynous)를 소개하면서 “인간은 본디 양성구유(兩性具有)의 전인(全人)이었으나 신의 노여움을 사서 둘로 쪼개져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으로 나뉜 이후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잃어버린 반쪽’을 애타게 찾게 됐다”고 주장한 것을 ‘사랑의 본질’로 이해했으나, 사랑을 골백번 해도 뭔가 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부터는 시인 류시화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담대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인간이 홀로 서봤자 언젠가는 홀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절감하지 않았던가?!

홀로 서 보지 못한 사람들은 홀로 서기를 염원하지만 홀로 서서 살아온 사람들은 홀로 넘어질 수밖에 없음을 서러워한다. 세상의 변두리 식당에서 고독(孤獨)의 국과 불안(不安)의 밥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을 시켜먹으면서 반찬으로 나오는 이기주의의 깍두기를 콱콱 씹으면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찾지 않아도 뻔뻔하게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더 이상 홀로 서려고 애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장담한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쓸쓸하고 외로운 밤 동네 공원을 거닐며 가로등 불빛 뒤에 숨어 있는 조각달을 향해 담배연기나 뿜어대는 철수와 어깻죽지가 빠지도록 손발톱 다듬어 모은 돈으로 고급 승용차를 사서 일요일마다 집사님 권사님을 실어 나르는 영희가 밤마다 등을 돌리고 자는 것 또한 이미 지긋지긋하리만치 홀로 서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홀로 선다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것인지 처절하게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함께 넘어지기’ 위해 애쓴다. 세월의 비를 맞으면 석상(石像)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듯 무식한 놈도 시를 골백번 읽으면 시인이 된다는 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서정윤의 ‘홀로 서기’로 고독과 불안을 감지하기 시작했던 철수와 영희도 이제 시인이 다 됐을 터, 홀로 서서 고독하고 불안한 그들에게 이 가을 텅 빈 거리에서 함께 넘어지자고 술 한 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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