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 Housewife (젊은 주부)
At ten AM the young housewife
오전 10시 젊은 주부가
moves about in negligee behind
평상복을 입은 채 얼쩡거린다
the wooden walls of her husband’s house.
자기 남편의 집 나무 울타리 뒤편에서.
I pass solitary in my car.
나는 내 차를 타고 고독하게 지나간다.
Then again she comes to the curb
그 때 그녀가 모퉁이로 와서
to call the ice-man, fish-man, and stands
얼음장수와 생선장수를 부른다. 그리고 서서
shy, uncorseted, tucking in
수줍어하면서, 코르셋도 입지 않은 채,
stray ends of hair, and I compare her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to a fallen leaf.
낙엽과 비교한다.
The noiseless wheels of my car
내 차의 소리 없는 바퀴들은
rush with a crackling sound over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린다
dried leaves as I bow and pass smiling.
마른 잎사귀 위로, 내가 고개 숙이고 미소 지으며 지나갈 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년~1963년>
흔한 것일수록 중요한 것인 경우가 많다. 흙, 물, 공기 등등도 무한정 공짜이지만 기실 그것들이 없으면 인간은 하루도 생존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특별한 것일수록 가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사실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지난 2007년 런던대 교육연구소의 나타부드 포우드사비 박사도 영국 내 8천가구를 대상으로 임금 인상이나 친구와 연인과 만나는 시간 등 자질구레한 일상에서부터 실직 등의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인생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자질구레한 일상도 의외로 큰 금전적 가치와 맞먹는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포우드사비 박사에 따르면 매일 친구와 가족을 보는 것을 값으로 따지면 연봉 8만5천파운드(약 1억5천800만원) 인상에 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경우 병에 걸리기 전과 같은 생활의 만족도를 여전히 유지하려면 최소한 연간 48만파운드(약 8억9천100만원)를 필요로 하고, 갑자기 실직하면 실직으로 인한 수입 상실을 제외하고도 14만3천파운드(약 2억6천600만원)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찌 일상의 소중함을 돈으로 따질 수 있으랴. 아침에 일어나 식구들 얼굴을 보는 것과 못 보는 것, 어슬어슬 한기가 감도는 새벽에 일어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비 오는 날 창문 밖에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풍경....어쩌면 삶의 색깔 또한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 속 자질구레한 물상(物像)들의 조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러더포드 출신의 윌리엄스를 기념하여
2012년 미 우정국에서 발행한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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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물상들을 사랑한다. 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의사 출신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년-1963년)도 그랬다. 그는 “시를 쓸 때엔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No ideas but in things)’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미지즘(imagism) 시운동을 심화시킨 객관주의(Objectivism)를 주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작(詩作) 초기엔 당시 유행하던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활용을 극대화하는 실험시를 썼으나 차츰 자기만의 목소리로 자기 주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물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노래하여 소위 ‘미국의 문화적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5부작 ‘패터슨(Paterson)’을 쓰기도 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에 펴낸 시집 ‘브뤼겔의 그림들과 다른 시들(Pictures from Brueghel and Other Poems)’로 196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리엄스는 종전 시작(詩作)의 감초로 여겨지던 상징(象徵)의 남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투철한 현실인식과 일상의 평면적인 관찰을 기본으로 시를 써서 미국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었다.
뉴저지 러더포드에서 출생한 윌리엄스는 삶 그 자체를 사랑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미덕으로 꼽았다. 뉴욕 호레이스 만 고교(Horace Mann High School) 재학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나, 부모의 권유로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학부에 진학하여 소아과 의사가 됐고, 고향 러더포드에서 소아과 의사로 개업한 후에도 처방전에까지 시를 쓸 정도로 시작에 몰두했다. 그가 1917년에 발표한 ‘The Young Housewife(젊은 주부)’도 그 때 그 시절 쓴 것으로 보인다. ‘Young Housewife’를 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갓 결혼한 새댁, 윌리엄스 활동 당시 남녀가 결혼을 하면 교외의 한가로운 주택가에 집을 마련하고 남편이 출근한 후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게 유한계층의 관례였던 바, 단꿈을 꾸듯 행복하게 살아가는 새댁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삶의 아름다운 단면을 스케치하고 있음을 본다. 젊은 여인의 평상복에서 느껴지는 긴장의 이완, 젊은 여인이 코르셋도 입지 않은 채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느껴지는 관능미,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런 젊은 주부를 몰래 훔쳐보는 작중 화자(話者)의 야릇한 흥분, 그 흥분을 고조시키기라도 하듯 달리는 차 바퀴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들의 효과음...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그런 시적 감동을 이끌어낸 윌리엄스의 관찰력이 놀랍기만 하다.
윌리엄스의 이미지즘은 에즈라 파운드와의 교유에서 크게 영향 받았다는 게 중론, 그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물건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데 특출함을 보였다. ‘젊은 주부’와 ‘얼음장수’ 또는 ‘생선장수’의 극적인 대비도 일상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포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거니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바퀴와 그 바퀴에 깔려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들의 청각적 이미지 대비도 돋보인다. 그가 1023년에 발표한 ‘빨간 손수레(The Red Wheelbarrow)’를 보면 원색의 물감으로 그린 선명한 그림 같기도 하다. 다음은 ‘The Red Wheelbarrow’의 전문.
so much depends 너무 많이 실려있네
upon 위에
a red wheel 빨간 바퀴
barrow 손수레
glazed with rain 빗물에 반짝였네
water 물
beside the white 그 곁의 그 하얀
chickens. 병아리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한 작품을 대하는 듯하다. 주변에 널린 자질구레한 것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빨간 바퀴’와 ‘하얀 병아리’의 원색적인 대비로 시적 클라이막스를 고조시키고 있음을 본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의 이미지를 누구나 친근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어체로 재현한 윌리엄스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흡사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거리를 산보하다가 눈에 띄는 것들을 보고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들처럼. 윌리엄스에게 있어서 시는 장인정신으로 완벽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감흥을 읊는 것도 아니었던 바, 평범한 삶의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담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만들어내는 윌리엄스의 시작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도시 소시민들을 위한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평범한 삶을 사랑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시인이었다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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