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0일 수요일

어옹(漁翁)- 인간세상에서 바라보는 자연(自然)


漁翁(어옹)

漁翁夜傍西岩宿 (어옹야방서암숙)   어옹은 밤에 서쪽 바위 곁에서 묵고
曉汲淸湘燃楚燭 (효급청상연초촉)   새벽에 맑은 상수의 물 길어 잡목으로 불 지피네
煙銷日出不見人 (연소일출부견인)   안개 사라지고 해가 떠오르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欸乃一聲山水綠 (애내일성산수녹)   한숨 소리에 산과 물만 푸르러
回看天際下中流 (회간천제하중류)   돌아보니 하늘 가장자리 가운데 물 흘러가는데
岩上無心雲相逐 (암상무심운상축)   바위 위 무심한 구름들 서로 쫓아가네

                                           <유종원(柳宗元); 773년-819년>

국 전국시대 송나라 몽(蒙) 출신의 장주(莊周;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가 썼다는 장자(莊子) 내편(內編) 제물론(齊物論)을 보면 ‘나비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장주가 어느 날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는데, 훨훨 날아다니는 동안 나비였을 뿐 장주임은 알지 못했으나, 얼마 후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자신은 틀림없는 장주였다.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주가 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주는 장주이고 나비는 나비, 분명히 구별되었던 바, 장주는 자신이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을 ‘물화(物化)’라고 규정했다. 여기선 물화란 사물과 자아와의 구별을 잊는 것, 흔히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도 한다. 그런데 장자는 왜 물화 이야기를 꺼냈나?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군웅이 패권을 다투던 난세(亂世),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달팠던 현실의 불안과 고뇌를 잊기 위해 자연에 귀의하는 게 유행병처럼 번졌던 바, 장주 또한 잠시나마 나비가 되어 인간세상의 근심 걱정 다 잊고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건 ‘장자’ 전편에 걸쳐 나타나는 주제이기도 하다. 

맞다.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고뇌를 떨치려면 인간세상을 벗어나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인간세상에서 벗어나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돈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지지고 볶는 사람들보다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산수(山水)를 벗 삼자는 게 시인묵객들의 생각이었다.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현령 자리를 내팽개치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를 노래하고, 이백보다 한 세대 뒤에 활동했던 왕유(王維)가 종남산 언저리에 별장을 짓고 ‘림수(林叟)’ 즉 ‘숲 속의 늙은이’가 되고자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삶의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자연에의 귀의는 좋게 말하면 물화(物化)이고, 몰아(沒我)이고, 망아(忘我)이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현실도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 같이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세상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부류, 인간세상과 자연의 경계에 서 있는 부류, 자연 속으로 진입했던 부류 등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도 물화 내지는 망아와 현실도피(現實逃避) 사이의 고뇌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종원의 초상
중국 당나라 시대의 문장가․시인으로 명망이 높아 소위 당송(唐宋) 8대가의 하나로 꼽히는 유종원(柳宗元; 773년-819년)은 인간 세상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연에의 귀의를 염원했던 부류에 속했던 것 같다. 현실의 삶을 수용하면서도, 그로 인한 고뇌와 번민을 겪을 때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래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쓴 작품들이 많다. 진사시험에 급제하여 33세에 상서예부원외랑(尙書禮部員外郎)이 되었으나, 유우석(劉禹錫) 등과 함께 환관과 귀족들의 폐해를 혁신하려는 왕숙문(王叔文)의 정치개혁 운동에 가담했다가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된 이후 다시는 중앙정계로 복귀하지 못한 채 변방을 떠돌았던 그였기에, 언제고 다시 중앙으로 복귀하리라는 꿈을 차마 포기하지 못해 현실의 삶 속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못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던 게 아닌가 싶다. 

유종원이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쓴 것도 현실의 삶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선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어옹(漁翁)’ 또한 유종원 자신이 그림을 그려놓고 자신이 감상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작중 화자인 ‘나’와 ‘어옹’을 분리한 것도 그렇고, 7번째 구의 ‘회간(回看)’은 자신이 그 풍경 밖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거니와, 바위 위 구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잇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음을 본다. 즉 유종원은 자연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다. 자연 속에 몰입하고는 싶지만 아직 몰입하지 않은 상태, 그런 심정은 ‘천제하중류(天際下中流)’에 이르러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것 같다. 하늘이 땅과 닿은 가장자리 가운데로 아득히 흘러가는 물길을 무심히 바라보노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어옹’은 환상과 공상을 배제한 채 합리적이고 사실적인 관찰로 그림 그리듯 시를 쓴 유종원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일부로 파악할 것을 권고했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고 나서 ‘나비는 나비이고 장주는 장주’라는 것을 깨달은 게 떠올려지기도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바라볼 때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어찌하리. 그게 인간의 현실과 자연의 경계에 서 있던 유종원의 인간적인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한숨 소리에 산과 물이 푸르러 간다고 읊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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