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虛空) 중(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1925년 ‘진달래꽃’, 김소월(金素月); 1902년-1934년>
인간의 생명은 정(精)-기(氣)-신(神)의 결합, 즉 육신(肉身)의 생명력인 정(精)과 영(靈)의 생명력인 신(神)이 기(氣)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는 게 한자문화권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기의 운행이 정지되어 정(精)과 신(神)이 분리되는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정(精)은 백(魄, 얼)이 되어 땅으로 흩어지고 신(神)은 혼(魂, 넉)이 되어 하늘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시된 건 혼(魂)이었다. 정이나 기는 썩어서 없어지는 육신과 함께 흩어지고 말지만 하늘로 간 불멸(不滅)의 혼은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혼(魂)은 불멸이므로 이론적(?)으로는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그래서 영혼불멸을 믿는 불교에서도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사불이(生死不二)’로 윤회를 설명했는가 하면 ‘차시환혼(借屍還魂)’ 따위의 믿거나말거나 이야기가 생겨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춘추시대 손무(孫武)도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차시환혼’ 이야기를 차용하여 “쓸모 있는 것(사람)은 빌리기 어렵고 쓸모없는 것은 빌릴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빌려 써먹는다. 내가 아둔한 껍데기(쓸모없는 것)를 뒤집어쓰는 게 아니라 아둔한 껍데기가 나를 가리도록 한다(有用者 不可借 不能用者 求借 借不能用者而用之 匪我求童蒙 童蒙求我)”는 계책을 36계(計) 중 제14계로 꼽았고, 민간에서도 태상노군(太上老君; 도교에서 노자(老子)를 높여 부르는 이름)을 추종하던 이현(李玄)이라는 사람이 선계의 태상노군을 만나기 위해 잠시 육신을 이탈했으나 자신의 혼이 돌아올 때까지 육신을 보살피기로 했던 제자가 우여곡절 끝에 이현의 육신을 화장하는 바람에 쇠 지팡이[鐵拐]를 짚고 다니다 죽은 거지의 시신(屍身)으로 들어가 ‘철괴리(鐵拐李)’로 살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승된다.
그런데 어떻게 혼을 불러들이나? 영혼불멸사상의 뿌리를 원시사회의 정령숭배(精靈崇拜)에 서 찾는 사람들은 그 혼을 불러들이는 환혼(還魂) 또는 초혼(招魂)의 관습 또한 원시사회의 ‘페티시즘(fetishism, 주물숭배)’에서 찾는다. 호랑이 이빨을 목걸이나 팔찌로 만들어 착용하면 호랑이의 용맹한 영혼이 깃든다느니 사자(死者)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이나 입었던 옷에는 사자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등등의 믿음을 뜻하는 단어 ‘fetishism’ 뿌리는 ‘억지로 꾸민’ ‘진짜가 아닌’을 뜻하는 라틴어 ‘facticius’,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인 것처럼 속인다’는 행간이 읽혀지는 바, S. 프로이트는 여성의 팬티나 신발 따위에서 성욕을 느끼는 비정상적인 성욕을 ‘페티시즘’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었다. 한반도 등지서 초혼의 한 방법으로 전승된 ‘고복(皐復)’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페티시즘’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지붕 위에 올라가 북쪽을 향해 사자(死者)의 체취가 남아 있는 헌 옷이나 속곳을 흔들면서 사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 후에도 환생하지 않으면 혼이 멀리 떠나 가버린 것으로 간주하여 장례 절차를 개시한다.
소월 김정식 |
김소월(金素月; 1902년-1934년)의 시집 <진달래꽃>(1925)에 실린 시 ‘초혼(招魂)’이 ‘고복’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게 고복을 매개로 하여 한국인들의 머릿속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페티시즘을 일깨우는 작품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사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과 처절한 슬픔이 페티시즘의 도움으로 극대화됐다는 말이다. ‘이름’이야말로 사자의 혼을 가장 효과적(?)으로 불러들이는 ‘페티시(fetish)’, 그 ‘페티시’가 산산이 부서져 허공중에 흩어져 버림으로써 주인도 들을 수 없다는 암시에서 느껴지는 절망감,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를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한 데 대한 회한, 그래서 선 채로 돌이 될 때까지 그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는 화자(話者)의 슬픔에서 ‘페티시즘’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야말로 페티시즘의 극치인 바, 김소월이 ‘가장 한국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것도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은 페티시즘을 가장 잘 포착해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김소월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진달래꽃’ 또한 한국의 산하에 지천으로 널려 있어 한국인들과 친숙했었던 까닭에 한국인들의 정한(情恨)이 짙게 배인 ‘페티시’ 중의 하나라는 데 토를 달지 못한다. 김소월의 명시 대부분이 한국인들의 페티시즘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가 교훈보다는 감동과 쾌락을 위해 창작된다는 점에 주목했던 T. S. 엘리어트는 ‘시(詩)는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라고 주장했었다. 사상이든 정서든 시인이 속한 사회의 산물이고 보면 시라는 것 또한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꾸며지는 것’(좋은 말로는 ‘창작’이라고 함)임을 부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페티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떤 민족의 정서(情緖)와 페티시즘의 뿌리가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시 창작의 한 기둥을 이루는 비유와 상징 또한 전통과 관습 속에서 형성된 페티시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의 성패는 페티시즘을 얼마나 자극하여 독자들의 정서를 흔들어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김소월의 ‘초혼’을 읽어보고 또 읽어볼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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