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南別業(종남별업)
中歲頗好道 (중세파호도)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하여
晩家南山陲 (만가남산수) 뒤늦게 남산 언저리에 집을 지었네
興來美獨往 (흥내미독왕) 흥이 나면 좋아서 혼자 다니는데
勝事空自知 (승사공자지) 좋은 일은 조용히 나만 안다네
行到水窮處 (항도수궁처) 걷다가 물 다하는 곳에 이르면
坐看雲起時 (좌간운기시) 앉아서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네
偶然値林叟 (우연치림수) 우연히 숲 속 늙은이 만나면
談笑無還期 (담소무환기) 담소하다가 돌아갈 줄을 모르네
<왕유(王維); 699년-759년>
나이 들수록 일자리는커녕 할일을 찾기가 힘들어지면서 고립감과 고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에 비례하여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짜증도 늘어난다는 것은 늘그막에 나랏일 걱정한답시고 오만가지 일에 다 끼어드는 ‘어버이 연합’ 회원들도 부인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활약(?)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정권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직시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장년)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시켰었다. 당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50~54세는 준고령자, 55세 이상은 고령자라고 지칭해 왔으나 앞으론 ‘고령자’라는 단어를 ‘오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장년(長年)’이라고 바꾸기로 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고령자 취업차별을 없애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으나 그 또한 결국은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 정권이 바뀐 지금 지금 ‘장년’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거니와 그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고령자들이 일자리 찾기가 개선됐다는 후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 들어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팔다리 허리가 쑤시고 두 눈이 침침해지는 사람들이 “젊은이 못지않게 일 잘할 수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우습지만, 그런 고령자들의 욕심을 부추겨서라도 정권이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높여보겠다고 침 튀기는 사람들이 더 한심하다. 고령자 위하는 척 하면서 희롱하는 것 같아 눈이 절로 흘겨진다.
나이는 저절로 먹는 것이지만 늙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세기 인간의 노화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영국 리버풀 대학의 노인심리학자 D. B. 브롬리(D. B. Bromley)는 그의 저서 ‘노화심리학(The Psychology of Human Ageing)’에서 “인생의 1/4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3/4은 늙으면서 보낸다”고 말했었다. 생물학적으로 청소년기를 지나면 성장이 멈추고 퇴화하기 시작하므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대비해야 한다는 매우 간단한(?) 충고였었다. 그러나 그게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브롬리가 생전에 발표한 어려운 논문들과 저서들이 더 잘 말해준다. 자신이 늙어간다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 풀어야할 문제들이 수두룩하거니와 그 문제들을 서둘러 풀지 않으면 세상 원망만 는다는 게 늙은이들의 뼈아픈 경험담이고 보면,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늙는 법을 잘 배워서 쪼그라드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주는 게 상책일 듯싶다.
왕유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복생수경도(伏生授經圖). 복생(伏生)은 전한 시대 제남(濟南) 출신의 명유(名儒) |
늙어가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 덜 하려면 욕심부터 줄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젊었을 적 불만족(不滿足)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면 늙어갈수록 만족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른 바 ‘순응(順應)’을 학습해야 한다. 한자 좇을 순(順)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그린 내 천(川)에 머리 혈(頁)이 붙은 것으로서, 자연의 섭리의 상징인 물의 흐름에 나의 생각을 맡긴다는 의미,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 왕유(王維; 699년-759년)가 자연 속에 파묻혀 산수를 벗 삼았던 것도 순응을 학습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던 왕유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자(字)까지 ‘마힐(摩詰)’이라고 했으나,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반란군의 포로가 돼 부역을 했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관직을 박탈당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속세에 환멸을 느꼈고, 이후 중국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종남산(終南山) 언저리 망천(輞川)에 별업(別業)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었다. 그 때 그렸다는 화집 ‘망천도(輞川圖)’는 진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숱한 모사도와 함께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돼왔거니와, 북송의 문장가 소식(蘇軾)은 왕유의 시와 그림에 대해 “시 중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평하기도 했고, 지금도 왕유는 문인화의 원조격인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을 받는다.
‘종남별업(終南別業)’은 왕유가 망천장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 많은 시인들이 경쟁적(?)으로 노래했던 자연귀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종남산의 별장’을 뜻하는 제목 ‘종남별업’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왜 ‘별장’이나 ‘초가’ 또는 ‘모옥(茅屋)’ 등등 대신 ‘별업’이라는 단어를 골랐나? 별업의 업(業)은 그 옛날 종이나 북 등의 악기를 거는 틀의 가로 판자를 본뜬 것으로서, 거기에 뭔가 기록해두었기에 ‘일’ ‘문서’ ‘직업’ 따위를 뜻하게 됐던 바, ‘별업’은 생계를 위해 꾸려나가는 주업(主業) 말고 별도로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장안에서의 관리 생활이 주업이라면 산수를 즐기면서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종남산에서의 사색이야말로 별업, 속세를 떠난 사람의 일과라는 의미다. 평균수명이 60을 넘지 않던 그 시절 중세(中歲)는 30세 언저리, 인생의 반환점을 막 돌면서 도(道)를 좋아했다는 고백은 속세에서 살만큼 살아 염증을 느끼게 됐다는 실토로 받아들여지고,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림수(林叟)’ 즉 ‘숲 속의 늙은이’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내다본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귀의하여 늙음을 순치하는 왕유의 만년이 아름답다. 한국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물론 나이 먹을수록 세상에 대한 원망만 키우는 늙은이들이 외우고 또 외우면 보약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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