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님의 침묵(沈黙) - 속세를 사랑한 휴머니스트의 '님'


님의 침묵(沈黙)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926년 ‘님의 침묵’ 회동서관, 한용운(韓龍雲); 1879년-1844년> 

어사전은 ‘침묵(沈黙)’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음. 또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라고 풀이하여 명사취급하고 있으나 한자 어법으로 보면 옳지 않다. 한자 침(沈)은 물 수(水)에 ‘아래로 늘어뜨리다’라는 의미의 ‘유(冘)’가 붙은 것으로서 ‘빠지다’ ‘가라앉다’ ‘잠기다’ 등을 뜻하는 동사(動詞)이고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검을 흑(黑)에 개 견(犬)이 붙은 묵(黙)은 ‘개가 짖지 않는다’ 즉 ‘아무 소리도 없다’는 의미이므로, ‘沈黙’은 ‘黙(묵)’에 빠지거나 잠기는 것을 말한다. 그게 일제시대 일본식 조어법의 영향으로 명사화한 것인 바, 실제로 중국에서는 ‘침묵(沈黙)’ 대신 ‘정묵(靜黙)’이라는 명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는 침묵했다’는 ‘沈’을 동사로 ‘他沉默了’라 쓰고 그걸 명사로 표현할 때는 ‘그의 침묵(정묵)’은 ‘他的静默’이라고 쓴다. 

1937년경의 만해 한용운
만해(卍海 또는 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년-1844년)이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沈黙)’을 쓸 때도 일본식 조어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이 ‘공약삼장(公約三章)’을 추가했다고 알려진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첫머리 “공약삼장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에서 ‘조선의 독립국임과’와 ‘조선인의 자주민임을’의 ‘의’가 소유격이 아니라 주격조사로 사용되었듯이, ‘님의 침묵’의 ‘의’ 또한 주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거니와, 침묵(沈黙)이 일본식 한자조어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님의 침묵’은 ‘님이 아무 말 안 한다’로 해석하는 게 옳을 듯싶다. 

1926년 회동서관 간행한 한용운의 첫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 ‘님의 침묵’처럼 괴리적(乖離的) 감상이 많은 시도 드물다. 한용운이 승려신분이었을 적 발표한 시여서 그런지 직감적으로 ‘님’을 석가모니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그가 조선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사실을 들어 ‘잃어버린 나라’로 해석하기도 하고, ‘님’이라는 말이 자고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여 왔다는 점을 들어 단순히 ‘사랑하는 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실 그런 중의성(重義性)은 한용운 자신이 시집 ‘님의 침묵’ 서문 격인 ‘군말’로 부추긴 바 크다. 그 ‘군말’에서 한용운은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微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戀愛)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밧지 안너냐. 너에게도 님이 잇너냐. 잇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시집 ‘님의 침묵’ 서문 원문)”면서 자신이 의도했던 ‘님’이 특정한 ‘님’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용운이 독자들에게 제멋대로 ‘님’을 상정(想定)하는 자유를 줬다고 여기는 건 큰 오류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고 단정한 이유가 뭔가? 또 “나는 해 저문 들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그리워서 이 시를 쓴다”고 덧붙인 이유가 뭔가? 한용운이 생각하는 ‘님’은 ‘그림자’ 즉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그림자처럼 인식은 되지만 정작 실체는 없는 ‘그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그런 ‘그리움’ 또한 ‘알뜰한 구속(拘束)’으로 다가오기에, 그럴 바에야 한용운 자신은 ‘해 저문 들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나 그리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바, ‘님의 침묵’은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허무 속에서 인간에의 연민(憐憫) 즉 인간애(人間愛)를 품고자 쓴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그것마저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여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끝을 맺었고 그 애탐과 허무감 또한 공(空)이어서 제목을 ‘님의 침묵’이라고 붙인 게 아닌지?! 

기실 한용운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해 불도를 닦는 승려가 아니라 인간과 속세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휴머니스트였던 것 같다. 당시 조혼 풍습에 따라 열네 살의 나이로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오십대에 환속한 후 다시 재혼해 딸 하나를 더 얻은 것도 그렇고, 세속과 거리를 둬야할 불제자가 독립운동을 하고 시를 쓴 것도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부질없는 일탈(逸脫)에 지나지 않거니와, 속세의 고뇌를 떨쳐버리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걸 기꺼이 끌어안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스트였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런 그를 추켜세운답시고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교육가 등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야말로 ‘님의 침묵’의 ‘님’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쓴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피할 수 없는 고독과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불경을 외우기도 하고, 시를 쓰다가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속세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만해 한용운, 그야말로 당대의 위대한 휴머니스트였다는 칭찬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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