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 월요일

껍데기는 가라 - 권력은 껍데기이고 국민이 알맹이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7년, ‘52인의 시집’, 신동엽(申東曄); 1930년-1969년>

히 ‘껍데기’와 ‘껍질’을 혼용하지만 국어사전에서는 엄격히 구별한다.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라고 풀이돼 있다. 다시 말하자면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은 ‘껍데기’이고 양파나 귤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부드러운 물질은 ‘껍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딱 부러지는 정의는 아닌 것 같다. 그 ‘단단하거나 딱딱한 정도’가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대부분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사람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불 껍데기’나 ‘과자 껍데기’ 등 “알맹이를 빼내고 겉에 남은 것”을 싸잡아 ‘껍데기’라고 지칭하는 것을 본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껍데기’와 ‘껍질’을 매우 구체적으로 구별한다. ‘껍데기’를 뜻하는 ‘각(殼)’을 보면 오른편에 몽둥이 수(殳)가 들어 있는 바, 몽둥이로 깨뜨릴 정도로 단단한 것을 말한다. 또 ‘껍질’을 뜻하는 피(皮)는 겉을 싸고 있는 모양의 ‘厂’과 손을 뜻하는 ‘又’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서 손으로 벗기는 게 가능한 것을 말한다. 구체적이기는 영어도 마찬가지다. 껍데기를 뜻하는 ‘shell’은 ‘알맹이를 빼내기 위해 깨는 겉’을 뜻하는 반면 껍질을 뜻하는 ‘skin’은 ‘알맹이를 가리고 있어서 벗겨내는 것’을 뜻한다. ‘shell’은 알맹이와 겉이 분리돼 있을 때의 겉이고 ‘skin’은 알맹이와 붙어있어 벗겨내는 겉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요즘 “과일은 껍질에 영양분이 많으므로 껍질째 먹는 게 좋다”는 등 껍데기나 껍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전통적인 농경문화권에서 껍데기나 껍질은 쓸모가 별로 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이 알맹이를 위해 존재할망정 알맹이가 껍데기나 껍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통념이어서, 은유적으로도 껍데기나 껍질은 ‘하찮고 쓸모없는 것’는 의미하는 반면 알맹이는 ‘핵심 또는 가장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알맹이 없는 껍질은 ‘쭉정이’라고 하여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한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나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세상사를 잘 관찰해보면 껍데기가 알맹이보다 더 핵심인 척 큰소리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껍데기만 민주국가였을 뿐 알맹이는 독재국가였던 시절이 더 많았다. 

신동엽 시전집, 2013년
창작과 비평사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長時)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석림’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하여 입선됨으로써 등단한 충청남도 부여 출신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년-1969년)이 4.19 혁명 직후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한 것도 쓸모도 없는 껍데기가 알맹이를 가리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해방 후 미 군정과 친일파들을 등에 업고 권력을 틀어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 중임제한 철폐를 골자로 한 소위 ‘사사오입 개헌’을 밀어붙인 끝에 3.15 부정선거로 당선되자 전국 각지에서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급기야는 4월 19일 서울 경무대 앞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21명이 사망하고 172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으며, 이승만은 4월 26일 대통령직을 사퇴한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1965년 7월 19일 세상을 뜬다. 신동엽이 정작 분노했던 건 그 이후였던 것 같다. 4.19 혁명으로 민주정부가 들어서자 많은 정상배들이 4,19 혁명을 주도라도 한 듯이 날뛰었고 그걸 핑계 삼아 일본군 장교 및 남조선로동당 군부 하부조직책 출신 박정희가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일으켜 대한민국은 또 다시 캄캄한 독재의 길로 들어섰던 바, 신동엽의 눈에는 국부(國父)를 참칭하며 종신집권을 꾀한 이승만이나 총칼로 권력을 틀어쥔 박정희나 혁명 바람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이익이나 취한 정상배들이나 모두 ‘껍데기’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게 아닌가 싶다. 

신동엽은 지병인 간디스토마가 간암으로 악화되어 1969년 4월 7일 4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신동엽이 타계한 지 4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껍데기’들이 알맹이들보다 더 큰소리를 치고 있음에 ‘껍데기는 가라’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치밀 때가 많다. 박정의 독재 때 민주화 투쟁 기자들의 목을 자신들의 손으로 잘라놓고도 민주화투쟁 정론지라고 떠들어대는 유명 일간지들, 학우들의 피로 범벅된 민주화 투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던 데모꾼들,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권을 잡자 자신들의 세력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해가면서 이승만 및 박정희 찬가를 합창하는 친일파 및 독재부역자 후손들...그런 껍데기 각(殼)을 깨기 위해서는 몽둥이 수(殳)로 마구 내리쳐야 하는 건 아닌지?! 권력은 껍데기이고 국민이 알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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