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4일 목요일

연탄 한 장 - 민중사랑의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2006년, 비앤엠, 안도현(安度眩); 1961년- > 

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보면 ‘소신공양(燒身供養)’ 이야기가 나온다. 숙왕화보살(宿王華菩薩)이 부처에게 약왕보살(藥王菩薩)이 어떻게 사바세계에서 노니면서 중생을 구제하게 됐느냐고 묻자 1만2천년 동안 수행하여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를 얻은 약왕보살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몸에 향유를 바르고 불살라 부처에게 공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발심(發心)하여 아뇩다리삼막삼보리를 얻고자 하는 자는 능히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하나 태워서 부처님의 탑을 공양하라”고 권한다. 이후 부처나 중생을 위한 최고의 공양으로 소신공양을 꼽게 됐다. ‘현일체색신삼매’는 중생을 가르치고 구제하기 위해 중생의 근기(根氣)에 따라 몸을 낮추고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교리대로 생(生)과 사(死)가 불이(不二)여서 약왕보살이 20세기 한반도에 ‘현일체색신삼매’로 다시 현신했다면 ‘연탄(煉炭)’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연탄의 생김새와 쓰임새가 약왕보살의 중생구제와 닮았다. 무연탄에 코크스(cokes) 가루와 석회 따위의 점결제를 섞어서 만드는 연탄은 1920년대 일본에서 수입된 것으로서, 1988년까지만 해도 한국 가정의 78%가 주연료로 사용할 정도로 서민들의 몸을 덥혀주고 밥을 지어먹게 해줬던 바, 2000년대 들어 1% 이하로 줄어들었다지만 아직도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온기로 남아 있다. 밤중에 일어나 연탄 갈던 어머니, 겨울철이면 빙판으로 변하는 언덕길에 연탄재를 부숴 깔아주던 복덕방 할아버지,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치면 감초처럼 실려 있던 연탄가스 중독 사망사고...청장년 치고 구멍이 뚫려 있다고 하여 ‘구공탄’ 혹은 ‘구멍탄’이라고도 불렸던 연탄에 대한 추억 한 두개쯤 가지지 않은 사람 없으리라.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2008년 창작과비평사
경상북도 예천 출신으로서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등단한 시인 안도현도 연탄에 대한 꽤나 따뜻한 추억을 가졌던 듯하다. 시작(詩作) 활동 초기 민중의 곤궁한 삶에 대한 따뜻한 성찰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그이기에 서민의 약왕보살 같은 연탄을 주목한 게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성찰에 자신의 반성이 얹혀지고 있음에 현실 비판 이상의 것이 감지된다. 더 크고 소중한 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소신공양이 떠올려진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라는 반성이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미혹(迷惑)이 중생의 삶이라면 그런 삶에서 벗어나보자는 의지가 읽혀진다는 말이다. 이른 바 자기 정화(淨化)다. 한 덩이 쓸쓸한 재로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는 내가 눈 내려 미끄러운 세상에서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미혹 속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시인 안도현은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나를 해탈시키는 것은 나를 산산이 으깨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어 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탄 한 장’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까지 시심(詩心)으로 품어내는 안도현의 시작(詩作)이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다는 증거이리라. 그의 현실비판이 연탄처럼 서민들의 마음을 덥혀주는 민중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민중에 대한 사랑이 ‘나’의 정화와 구원으로 이어지고 있는 바, 안도현이 30여년의 시작 수행(修行)으로 독자들의 근기에 따라 시상을 변화시키는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의 경지에 올라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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