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8일 목요일

飮酒(음주) 제5수-실패한 인생의 자기 최면



飮酒(음주) 제5수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사람들 틈에 오두막 짓고 살아도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시끄러운 마차 소리 들리지 않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만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땅도 외지게 된다네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산 기색은 저녁 무렵이 아름답고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새들은 서로 함께 날아 돌아오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 이 중에 참뜻이 있어 
欲辯已忘言 (욕변이망언) 설명해주고 싶지만 이미 말을 잊었다네 

                                       <도연명 (陶淵明); 365년-427년>


히 ‘자연(自然)’ 하면 인공과 동떨어진 숲이나 냇물 따위의 산수(山水)를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천만의 말씀, 한자문화권의 ‘자연’은 영어문화권의 ‘nature’하고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自然’의 그럴 연(然)은 고기 육(肉)과 개 견(犬)과 불 화(火)가 합쳐진 것으로서,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먹을 게 드물 던 그 옛날 개를 잡아먹을 때는 개고기를 불에 그슬려야 했듯이, ‘然’은 일이 돌아가는 이치나 가만 내버려둬도 스스로 돌아가는 꼴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어 사전에서 ‘自然’을 찾아보면 명사로는 ‘自然界, 형용사로는 ‘꾸밈이 없이 자연스럽다’, 부사로는 ‘자행(自行)’과 동의어로 ‘스스로’ ‘저절로’라고 풀이돼 있을 뿐 숲이나 바위나 강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자연은 자연계가 돌아가는 이치나 모습,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4대강 정비한답시고 강바닥을 파헤친 것도 ‘스스로 그러한 꼴로 되어가는’ 자연에 속한다고 하겠다. 사람이 강바닥을 파헤쳐 놓아봤자 홍수에 떠밀려온 산비탈의 사토로 다시 채워질 건 자명한 이치, 또 그걸 퍼내 아파트 지어봤자 언젠가는 허물어져 다시 흙이나 모래로 변하리라는 것 또한 두말 하면 잔소리....그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연’이 아닌가?! 반면 영어 ‘nature’의 뿌리는 라틴어 ‘natura’이고 ‘natura’는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nasci’에서 나왔던 바, 원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 즉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도연명 초상
까놓고 말하자면 자랑할 명예도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할 돈도 없는 사람들일수록 자연(산수)을 찾는다. 그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 산과 강에 널려 있는 풀이나 물은 주인이 없어 돈이나 권세 없이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 그 옛날 벼슬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낙향하여 천석고황(泉石膏肓)이 어쩌고 단표누항(簞瓢陋巷)이 저쩌고 청승을 떨었던 것도 그게 돈도 안 들고 시비에 휘말릴 일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데 누가 감히 토 를 달으랴.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에이 더러워서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고 자연 즉 ‘스스로 돌아가는 이치나 꼴’에 자신을 던져버렸던 도잠(陶潛); 365년-427년)도 그랬다. 연명(淵明)이라는 자가 더 많이 알려져 도연명으로 불리는 그가 41세 때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할 때 “그 까짓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지만 그건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커 보이거니와, 기실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그가 서진의 명장이었던 증조부 도간이나 명사로 이름을 날렸던 외조부 맹가처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더라도 세상을 향해 가래침을 내뱉었겠느냐는 말이다. 

나름대로 분수껏 열심히 사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 도연명은 실패한 인생 즉 경쟁에서의 패배자였다. 남들은 어려서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승승장구할 때 겨우 29세가 되어서야 벼슬길에 올랐고 그나마 주(州)의 좨주(祭酒), 주부(主簿), 진군의 참군(參軍) 등 말단을 전전하다가 겨우 팽택현령 자리를 얻었으나 80여일 만에 사표를 낸 게 13년에 걸친 벼슬살이의 전부였다. 아무개처럼 중앙의 고관대작이 돼보기는커녕 녹봉이 쌀 다섯 말밖에 되지 않는 향리의 현령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을 터, 사표를 내던지는 게 쥐뿔도 없이 자존심만 강했던 시인의 ‘자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를 잘못 만나서, 세상이 잘 못 돌아가고 있기에, 자신과 같이 올곧은 천재는 산수에 파묻혀 지낼 수밖에 없다는 자기 최면이 유일한 낙이었으리라. 

도연명이 술 마시면서 쓴 시를 모아놓은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도 그런 자기 최면을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외지게 되므로 벼슬아치들이 타고 다니는 마차 소리 따위는 들려오지 않는다? 보기 싫은 게 눈 앞에 있으면 눈 질끈 감고 도리질 해대는 초등학생들도 배시시 웃을 유치한 얼렁뚱땅이 아닌가? 도연명 자신도 그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자기최면을 자랑스레 여겼던 것 같지는 않다. 할 일이 없어 국화꽃이나 따다가 멀리 남산이나 바라보는 자신의 진의(眞意)를 이러쿵저러쿵 변호해봤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부끄러울 뿐이어서 ‘이미 말을 잊었다(已忘言)’고 말꼬리를 흐렸던 건 아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쑥스럽고 부끄러운 자기최면 덕분에 역사에 기리 남는 대시인이 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도연명은 향리에 은거한 이후 더 큰 고뇌를 곱씹어야 했다. 50세 때 은사(隱士)에게 명목으로만 주어지는 벼슬인 저작좌랑(著作佐郞)을 제수 받았고 주로 심양 근처에서 지내면서 시작(詩作)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먹고살기 위해 허구한 날 땅이나 파야하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427년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었다. 그가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을 지으면서 유달리 이상향을 그리워했던 것도 현재적 삶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지금도 벼슬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들먹일 때마다 패배자들이 도연명의 자기 최면을 흉내 내는 것 같아 쓴웃음을 금할 수 없지만, 삶의 단맛보다는 쓴맛이 더 깊고 오묘하기에 문학의 주요 소재가 됐기에, 인생의 패배자 도연명이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오른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그게 산수가 아닌 세상의 ‘자연’이 아닌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