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6일 화요일

The Applicant - ‘살아있는 인형’의 푸념


The Applicant (지원자) 

First, are you our sort of a person? 
먼저, 당신은 우리와 같은 부류인가요? 
Do you wear 
당신은 걸치고 있나요 
A glass eye, false teeth or a crutch, 
유리눈깔, 가짜 이빨 또는 사타구니 
A brace or a hook, 
멜빵 또는 훅 
Rubber breasts or a rubber crotch, 
고무 유방 또는 고무 샅 

Stitches to show something's missing? No, no? Then 
뭔가 잃어버렸다는 걸 보여주는 꿰맨 자국들? 아니라고, 아니라고요? 그럼 
How can we give you a thing? 
우리가 당신에게 물건을 어떻게 주나요? 
Stop crying. 
울지 말아요 
Open your hand. 
손 벌리세요 
Empty? Empty. Here is a hand 
비었어요? 비었네요. 여기 손이 있어요 

To fill it and willing 
그걸 채워주고 그리고 기꺼이 
To bring teacups and roll away headaches 
찻잔들을 날라주고 그리고 두통들을 몰아내주고 
And do whatever you tell it. 
그리고 뭐든지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하지요 
Will you marry it? 
당신은 그것과 결혼하겠어요? 
It is guaranteed 
품질은 보증하지요 

To thumb shut your eyes at the end 
마지막에 가서는 엄지로 당신의 두 눈을 감겨주고 
And dissolve of sorrow. 
그리고 슬픔도 녹여주죠 
We make new stock from the salt. 
우린 소금으로 새로운 상품도 만들죠 
I notice you are stark naked. 
이제 보니 당신은 완전히 알몸이네요 
How about this suit---- 
이 옷은 어때요---- 

Black and stiff, but not a bad fit. 
검고 뻣뻣하지요, 그러나 아주 안 맞는 건 아니에요 
Will you marry it? 
당신은 그것과 결혼하겠어요? 
It is waterproof, shatterproof, proof 
그건 방수도 되고, 깨지지도 않고, 
Against fire and bombs through the roof. 
방화기능도 있고 그리고 지붕 뚫고 떨어지는 폭탄들도 막아주죠 
Believe me, they'll bury you in it. 
제 말을 믿으세요, 그 옷들이 당신을 푹 파묻어줄 거예요 

Now your head, excuse me, is empty. 
이제 당신의 머리는, 매우 실례의 말씀이지만, 텅 비었어요 
I have the ticket for that. 
그걸 대비해 티켓을 준비해뒀죠 
Come here, sweetie, out of the closet. 
이리 오세요, 여보, 벽장 밖으로 나오세요 
Well, what do you think of that? 
헌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Naked as paper to start 
아무 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처럼 발가벗었네요 

But in twenty-five years she'll be silver, 
그러나 25년이면 그녀는 은이 될 거에요 
In fifty, gold. 
50년이면, 황금, 
A living doll, everywhere you look. 
살아 있는 인형, 어느 모로 보나 
It can sew, it can cook, 
바느질할 수 있고, 요리할 수 있고, 
It can talk, talk, talk. 
말할 수 있고, 말하고, 말하지요 

It works, there is nothing wrong with it. 
그건 작동하지요, 아무런 이상한 게 없어요 
You have a hole, it's a poultice. 
구멍이 있지요, 그것은 습포로 붙인 거예요. 
You have an eye, it's an image. 
눈이 있지요, 그것은 그냥 환상이지요. 
My boy, it's your last resort. 
이거 봐요, 그것은 당신의 마지막 쉼터예요 
Will you marry it, marry it, marry it. 
그것과 결혼하겠냐구요, 결혼하세요, 결혼하세요.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년-1963년> 

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자의 기능(?)을 높이 평가했었다. 한자 여자 여(女)도 여자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라는 게 정설, 섹스와 종족의 번성을 위해 남자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어미 모(母)도 아이에게 물리기 위한 젖꼭지를 강조해 만들어졌다. 영어 ‘woman’의 뿌리도 ‘아내’ ‘여성’을 뜻하는 ‘wif’와 ‘인간’을 뜻하는 ‘man’이 결합한 고대영어 ‘wifman’으로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돼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부계사회에서 태동한 종교인 기독교의 창조주 여호와 또한 천지를 창조할 당시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남자들의 성욕을 해소시켜주고, 그 결과 출산을 하여 가문의 노동력을 증대시켜주는 한편, 밥 짓는 일이나 빨래 등 가사노동을 전담함으로써 남자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게 여자들의 미덕이었던 것이다. 그 옛날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가 스스럼없이 용인됐던 것도 여자를 기능적으로만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근대 시민극 및 현대 현실주의 연극의 토대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하여 ‘현대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르웨이 출신 극작가이자 시인 헨리크 요한 입센(Henrik Johan Ibsen)이 ‘인형의 집(Et Dukkehjem)’을 발표한 것은 1879년, 세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이자 변호사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내인 노라는 남편 토르발트 헬메르의 병원비를 빌리기 위해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한 게 발단이 되어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지고 급기야는 남편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에 반발하여 집을 뛰쳐나온다. 이후 노라는 ‘페미니즘의 원조’로 대접받지만 이후 집을 뛰쳐나온 수많은 노라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보고서나 증언은 없다.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는 입센의 상상력 속에서 가출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형의 집’은 발표 당시 극심한 반발에 부딪쳐 무대에 올려보지도 못했다. 

실비아 플라스 전기, 2004년,
그린우드 출판사
20세기 들어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여권신장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있었지만 집을 뛰쳐나온 노라들이 안주할 곳을 찾기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 남자들의 머릿속에서 여성의 기능을 중시하는 부계사회의 전통을 일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목표했던 여권신장은 언제나 도로아미타불, 지금도 많은 가정주부들이 여성의 ‘기능’ 속에 함몰돼버린 자아와 인격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본다. 20세기 중반 미국 문단에서 일군의 여성 시인들이 페미니즘의 조명탄을 펑펑 터뜨린 것도 그런 조명탄 아래서나마 여성의 자아와 인격을 확인해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 때 뿐, 조명탄이 꺼지고 나면 다시 캄캄한 밤, 스미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던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년~1963년)도 그 캄캄한 밤중에 홀로 헤맸었다. 케임브리지 재학 중에 만난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아 오순도순 살던 중 바람둥이 휴즈와의 별거로 벼랑 끝에 서게 됐고, 그 벼랑 끝에서 여자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차별과 불안과 고독을 곱씹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런던의 한 아파트 부엌에서 가스 오븐 속에 머리를 처박아 자살하고 만다. 플라스의 문우였던 앤 섹스턴(Anne Sexton)도 그랬다. 1966년 시선집 ‘살거나 죽거나(Live or Die)’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했으나 플라스와 마찬가지로 캄캄하고 우울한 밤을 헤매다가 46세가 되던 해인 1974년 차고 속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심으로써 목숨을 끊었다. 여자의 ‘기능’만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에서 자아와 인격을 찾는 여자들이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가출해봤자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재차 일깨워준 것이었다. 

‘지원자(The Applicant)’는 플라스가 자살한 후 3년 뒤인 1966년에 빛을 본 작품, 여기서의 ‘지원자’는 여성의 기능만을 중시하여 결혼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꼼, 그걸 찬찬히 음미해보면 그 시대 페미니스트들이 여자의 기능만을 중시하는 세상을 얼마나 원망하고 혐오했는지 한 눈에 드러난다. 남자들이 여성을 성욕해소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을 꼬집어 ‘고무유방 또는 고무 샅(Rubber breasts or a rubber crotch)’을 들이대고, 그런 남자들과 결혼하려는 여자들을 ‘살아있는 인형(A living doll)’에 비유하는가 하면, 여자들의 기능만을 중시하는 남자들에게 ‘살아있는 인형’과 결혼하겠느냐고 다그친다.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자를 무생물인 ‘그것(it)’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기능’만으로 여자를 평가하려는 세상에 대한 조롱의 극치, ‘품질 보증(It is guaranteed)’이라는 말 속의 자학과 분노와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 세상에서 여자가 독립된 인격체로 대접 받기는 글렀다는 게 플라스의 우울하고도 처절한 관찰이었던 것 같다. 

플라스는 섹스턴 등과 함께 미국 시단에서 ‘자기 고백 시인(confessional poets)’으로 불린다. 아직도 플라스의 시들이 자주 읽히는 건 이 세상이 여자들의 자아와 인격보다는 기능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이리라. 그러나 ‘기능’으로 ‘인격’을 덮어버리는 현상이 비단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반론 겸 위로의 말을 덧붙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왜? 많은 남편들 또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지 오래되었거니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삶의 불행이나 개개인의 성격의 차이까지도 싸잡아 여성차별로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이고, 남자 여자 구별은 선택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므로 아무리 사회적 평등성을 강조해봤자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누구라서 부인하랴. 그래서, 플라스의 시들을 페미니즘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는 것도 반대한다. 이제는 식상한 페미니즘보다는 자기고백 시 특유의 적나라한 표현과 전통시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과 여성 시인으로서의 섬세함에 더 주목해야 플라스 작품의 진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플라스이니까, 그런 여자시인이니까, ‘고무 유방(Rubber breasts)’이나 ‘고무 샅(Rubber crotch)’ 등을 과감하게 시어로 사용한 게 아닌가?! 어쨌거나 플라스는 미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성공한 시인, “여성 시인이 여성을 ‘기능’에서 해방시켜 자아와 인격을 찾고자 하는 시를 쓰다가 새로운 형태의 시를 만들어냈다”는 문학사적 평가가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시를 쓰는 사람과 그 시를 읽는 사람은 따로따로라는 것을 재차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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