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5일 금요일

하일산중(夏日山中) - 숲속에서 위선과 가식을 벗다


夏日山中(하일산중) 

嬾搖白羽扇 (난요백우선)   백우선 부치기도 귀찮아서 
裸袒靑林中 (나단청림중)   발가벗고 푸른 숲 속으로 들어가네 
脫巾掛石壁 (탈건괘석벽)   망건 벗어 바위벽에 걸어두고 
露頂灑松風 (노정쇄송풍)   드러난 이마는 솔바람으로 씻네 

                              <이백(李白); 701년-762년> 

름 ‘夏’는 큰머리 혈(頁) 아래 천천히 걸을 쇠(夊)가 붙은 것, 원래는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서 그게 ‘여름’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식물이 무성하고 번창하는 여름에 지내는 제사 때는 춤을 췄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땡볕이 내려쬐는 여름에 온몸이 축 늘어진 나머지 큰 머리통을 주체하지 못해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이 떠올라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영어 ‘summer’의 뿌리 또한 식물이 무성하고 번창하는 계절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samā’다. 

더위를 피하는 것을 말 그대로 ‘피서(避暑)’라고 한다. 더울 서(暑)는 날 일(日) 아래 놈 자(者)가 붙어 만들어진 것, ‘者’는 본디 솥에다 콩을 삶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서 ‘삶다’가 본래 의미였으나 훗날 ‘∼하는 사람’의 의미로 가차되어 쓰였다. 그래서 ‘暑’는 ‘솥에 콩을 삶듯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일컫게 되었다지만, 자고로 일 안 하고 편하게 놀고먹는 양반들보다는 땡볕에도 불구하고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느꼈던 바, ‘暑’를 ‘땡볕 아래서 일하는 것’이라고 풀이해도 시비 걸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항온동물인 인간의 체온은 섭씨 36.5° 정도, 주위 온도가 섭씨 15° 이하로 내려가면 춥다고 느끼고 30°가 넘어서면서부터는 덥다고 느끼기 시작하여 40° 이상이 되면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더위가 대기의 온도와 습도 및 바람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된다는 것은 초등학교 코흘리개들도 다 아는 상식, 같은 온도라 해도 습도가 높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수분의 증발이 늦어져 체내의 열을 식히기 위해 배출된 땀이 잘 마르지 않아 무덥게 느껴지는 반면 기온이 높더라도 습도가 낮고 바람이 불면 덜 덥게 느껴진다. 

후대에 그려진 이백 초상
夏日山中(하일산중)? 말만 들어도 시원하다. 술로써 잡다한 세상만사 잊고 신선처럼 살았다던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년-762년)은 마음을 다스려 더위를 잊는 법도 터득했던 것 같다. ‘백우선(白羽扇)’은 새의 하얀 깃털로 만든 고급 부채, 그걸 부치기도 귀찮다는 건 더위는 자신의 마음이 느끼는 것이므로 한낱 외부의 도구나 물질로는 다스리기기 힘들다는 의미로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다음 ‘裸袒靑林中(나단청림중)’이 문제다.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점잖은 선비가 더위를 못 참아 발가벗는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또 많고 많은 수풀 중에 하필이면 ‘청림(靑林)’인가? 벗을 라(裸)는 옷 의(衣)와 열매 과(果)가 합쳐진 것으로서 ‘껍데기를 벗긴 열매’ 즉 아무 것으로도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은 것, 위선과 가식을 벗은 순수한 상태를 말한다. 또 푸를 청(靑)은 본디 식물의 싹이 땅거죽을 뚫고 나오는 모양을 그린 날 생(生) 아래 붉은 염료 단(丹)이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서 순정(純正)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裸袒靑林中 (나단청림중)’은 위선과 가식을 벗고 순정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건(巾)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의례(儀禮)의 상징이고, 이마는 그 옛날 죄를 지으면 이마에 글씨를 새겨 넣은 묵형(墨刑)을 가한 데서 보듯 체면과 자존심의 상징, 두건을 벗어 석벽에 걸고 이마를 드러내 솔바람에 씻는데 어찌 시원하지 않겠는가?! 통상 바람을 쐬는 것을 ‘쇄풍(曬風)’이라고 하건만 굳이 씻을 쇄(灑)를 쓴 것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솔바람으로 씻어낸다”는 감각적 표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기온이나 습도가 낮고 바람이 불더라도 체내에서 열이 과다하게 발생하면 덥게 느껴진다는 것은 주지의 상식, 더위를 감지하는 것은 자율신경계의 중추가 모여 체온․성욕․정서적 반응 등을 조절하는 뇌의 시상하부로서 그곳에 열 받을 만한 반응이 감지되면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면서 혈관이 팽창하면서 열이 발생하고 그 열을 발산하기 위해 땀구멍이 열린다고 배웠다. 덥다 덥다 호들갑을 떨면서 흥분하면 더 덥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운 한 여름에 위선과 가식과 욕망을 다 떨쳐버리고 순정(純正)의 세계로 몰입하여 무더위를 씻어내는 이백의 ‘하일산중’이야말로 최고의 피서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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