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1일 목요일

Tears, idle tears - ‘가버린 날들’이 흘리는 눈물


Tears, idle tears (눈물, 덧없는 눈물) 

Tears, idle tears, I know not what they mean, 
눈물, 덧없는 눈물, 그게 뭘 의미하는지 나는 몰라 
Tears from the depth of some divine despair 
어떤 거룩한 절망의 심연에서 나온 눈물 
Rise in the heart, and gather in the eyes, 
가슴에서 솟구쳐 두 눈에 고이네 
In looking on the happy autumn-fields, 
행복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면서 
And thinking of the days that are no more. 
가버린 날들을 생각하노라면 

Fresh as the first beam glittering on a sail, 
생생하여라, 돛단배에 반짝이는 첫 햇살처럼 
That brings our friends up from the underworld, 
저승에서 우리 친구들을 데려오는 (그 돛단배) 
Sad as the last which reddens over one 
슬프다, 돛단배 빨갛게 물들이는 마지막 햇살처럼 
That sinks with all we love below the verge; 
사랑하는 사람들 싣고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그 돛단배) 
So sad, so fresh, the days that are no more.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생생하여라, 가버린 날들은 

Ah, sad and strange as in dark summer dawns 
아, 슬프고 낯설구나, 여름날 동틀 녘의 어둠처럼 
The earliest pipe of half-awakened birds 
잠이 덜 깬 새들의 첫 지저귐 
To dying ears, when unto dying eyes 
죽어가는 귀들에게는, 그리고 죽어가는 눈들에게는 
The casement slowly grows a glimmering square; 
창틀은 천천히 흐릿한 네모꼴로 커진다 
So sad, so strange, the days that are no more.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낯설구나, 가버린 날들은 

Dear as remembered kisses after death, 
다정하여라, 죽은 후에 기억되는 키스처럼 
And sweet as those by hopeless fancy feigned 
그리고 감미로워라, 실현 가능성 없는 환상의 키스처럼 
On lips that are for others; deep as love,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입술 위; 사랑처럼 깊은, 
Deep as first love, and wild with all regret; 
첫 사랑처럼 깊은, 그리고 그 모든 회한으로 미칠 것 같은 
O Death in Life, the days that are no more! 
오, 삶 속의 죽음이어라, 가버린 날들은! 

                 <1847년, ‘The Princess’,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년-1892년> 

은 생각이나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문자로 쓴 것, 사실이나 주장을 전달할 때는 논문(論文)이나 기사(記事)를 쓰지만 감정이나 정서를 전달할 때는 시(詩)가 효과적이다. 왜? 감정이나 정서는 말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표현할 수 없으니까. 이별을 앞둔 애인이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우는 모습을 글로 써서 전달한다고 가정해보자. 논문이나 기사를 쓰는 사람은 “애인이 운다”고 간단하게 사실을 적시하거나 “애인이 운다, 그런데 간헐적으로 운다,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거기에 맞춰 운다”고 긴 설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지만 권혁웅 같은 시인은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는 비유로 상황과 느낌을 한꺼번에 전달하고 있음을 본다. 또 암 투병을 하다가 죽음에 직면한 여자의 삶에 대한 회상과 이해와 동정을 풀어쓰면 소설책 한권 분량이 될지도 모르지만 시인 문태준은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는 한 마디 말로 함축하여 전달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시야말로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시(詩)는 그 자체가 하나의 비유(比喩) 덩어리다. 비유란 어떤 사물 또는 관념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 비유 중 가장 흔히 쓰이는 게 직유(直喩, simile)와 은유(隱喩, metaphor)로서, 직유는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처럼 사물의 유사성을 연결시켜 이미지를 환기시키거나 의미를 확장시키는 반면 은유는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처럼 속성을 꿰뚫어 정곡을 찌르는 데 유효하다. 직유와 은유를 남발하면 혼란이 야기되어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나 이미지가 왜곡되기도 하지만, 그걸 의도적으로 유도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이나 이미지 환기를 이끌어내기도 하는 바, 그런 중의성(重義性, ambiguity)과 모호성(模糊性, vagueness) 또한 시작(詩作)의 한 테크닉이기도 하다. 그 비유의 중의성과 모호성은 어떤 한 가지 사물을 하나의 의미 또는 하나의 이미지로만 파악하는 전통과 관습을 깨고 다양한 의미 또는 다양한 이미지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발전과도 무관치 않다. 16,7세기 계몽주의(啓蒙主義) 덕분에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한 게 18,9세기의 낭만주의(浪漫主義)이고, 낭만주의의 결실로 맺어진 게 종전의 전통이나 권위에 반발하여 개인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즘(Modernism)이었던 바,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이 자신의 관찰과 느낌을 중시한 비유를 애용한 것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알프레드 테니슨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년-1892년)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의 다리 역할을 한 시인으로 꼽을 만하다. 존 키이츠(John Keats)의 영향으로 낭만주의 색채를 띠면서도 풍부한 비유로 낭만주의 시인들과는 구별되었고, 고전적인 신화나 중세의 전설에서 시의 소재를 발굴하는 한편 개인의 감성과 느낌을 독창적인 운율에 담아 표현했다는 점에서 빅토리아 시대 시인의 전형을 보인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Tears, idle tears(눈물, 덧없는 눈물)’도 그런 류다. 첫째 연에서는 자신의 감상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등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이지만, 두 번째 연부터는 ‘as(-처럼, -과 같이)’의 직유로 사물의 인식과 이해를 확대하고 있는 바, 개개의 시어(詩語)보다는 직유로 이미지를 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싹을 틔우고 있음을 본다. ‘가버린 날들’은 ‘여름날 동틀 녘의 어둠처럼 슬프고 낯설다’느니 ‘죽은 후에 기억되는 키스처럼 다정하다’는 등의 표현에서 진일보하여 ‘죽어가는 귀들에게는 잠이 덜 깬 새들의 지저귐’같고 ‘죽어가는 눈들에게는 창틀은 천천히 흐릿한 네모꼴로 커진다’고 공감각적 이미지까지 환기하고 있음에 이미 모더니즘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그의 또 다른 시 ‘Flower in the Crannied Wall(암벽 틈바구니의 꽃)’은 모더니즘 계열 시인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다음은 ‘Flower in the Crannied Wall’의 전문. 

Flower in the crannied wall, 
암벽 틈바구니의 꽃, 
I pluck you out of the crannies;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너를 뽑아낸다 
Hold you here, root and all, in my hand, 
여기 너를 붙잡는다, 뿌리째, 내 손 안에, 
Little flower--but if I could understand 
작은 꽃이여--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What you are, root and all, and all in all, 
네가 무엇인가를, 뿌리와 모든 것을,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을, 
I should know what God and man is.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련만. 

이 작품에서 ‘꽃’은 자연(自然)의 대유(代喩), ‘암벽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꽃’은 자연의 생명력과 경외를 상징하는 바, 그 꽃에 대한 관찰을 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로 확장시키고 있음에 인간의 직관(直觀)으로 인간과 자연과 초월적 존재를 연결하려했던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의 경향마저 감지된다. 테니슨이 1833년 시집 ‘샬롯의 숙녀(The Lady of Shalott)’를 발표했다가 비평가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이후 10여년간 침묵한 것도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간 그의 시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850년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In Memoriam(추도사 가운데)’로 탄탄한 필명을 구축한 테니슨은 영감(靈感)보다는 자연과학적 이치로 사물을 관찰하여 속성을 꿰뚫고 그 속성에 화려한 비유의 옷을 입힘으로써 ‘과학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했던 테니슨이 1850년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년-1850년)의 뒤를 이어 계관시인이 된 후 1892년 사망할 때까지 시인으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시작이 그 만큼 전향적이었고 독보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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