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갈대 – 현존재(現存在)의 자각(自覺)

시인 신경림이 본 ‘갈대’는 고독과 불안과 허무 앞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 그러나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는 존재였다.


갈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문학예술(1956), 신경림(申庚林): 1936 ~ >


재(存在)라는 게 뭔가? 한자 존(存)은 풀의 싹이 땅거죽을 뚫고 나오는 모양의 재(才)의 변형 속에 어린아이 자(子)가 들어 있는 형상으로서 어린 아이가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해나간다는 함의가 읽혀진다. 또 재(在)는 재(才)의 변형 속에 흙 토(土)가 들어 있는 형상으로서 흙 즉 이 세상의 방식을 터득하여 살아남는다는 함의가 읽혀진다. 

실존철학용어를 빌리자면 존(存)은 ‘단독자(單獨者)’이고 재(在)는 셰계 속의 단독자 즉 ‘현존재(現存在)’다. 실존주의 철학의 가이드북처럼 여겨지는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의 저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는 존재와 세계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바 존재 또한 ‘거기(da)’에 ‘있는(sein)’ 즉 현존재(Da-sein)라고 주장했었다. 사물과 달리 의식 활동을 하는 인간은 무엇을 의식하기 위한 존재인 바, 무엇에 의해 의식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의 존재방식은 사물의 존재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고찰하는 유일한 존재다. 세계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객체이지만 세계를 관찰한다는 점에서는 주체,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여 깨닫는다는 점에서 ‘자각존재(自覺存在)’라고도 불린다. 

신경림 시인
충청북도 중원 출신으로서 감수성이 예민한 스무 살 시절에 <문학예술>에 ‘낮달’ ‘갈대’ ‘석상’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 신경림(申庚林)도 현존재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무척이나 고민했었던 것 같다. 그의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후 한국사회의 가치관의 혼란과 맞물려 젊은이들 사이에 열병처럼 번지던 실존철학의 영향 탓인지 삶을 직시하여 개인의 고독과 불안과 허무의 뿌리를 파헤치려는 경향이 진하게 묻어난다. 작중의 ‘갈대’는 고독과 불안과 허무 앞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 ‘울음’은 흔들림에서 벗어나려는 존재의 몸부림의 결과, ‘바람’이나 ‘달빛’ 등의 외재적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울음으로 인해 존재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음에 실존철학자들이 입만 열면 부르짖던 존재의 주체성이 절로 떠올려진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그걸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실존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닮았다. 

신경림의 존재의 탐구는 한 동안의 절필(絶筆) 기간을 거쳐 고향의 토속과 농민의 한으로 분출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농무(農舞, 창작과비평사, 1975년)’, ‘갈대’에선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던’ 신경림이 ‘농무’에선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을 원통하게 여겨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라고 꽹과리를 두드리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게 근거 없는 반전(反轉)은 아닌 듯싶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아래서 응어리진 농민의 한과 울분과 고뇌를 폭죽 터뜨리듯 표출한 신경림에게서 실존의 결단과 행동과 책임과 연대성을 강조했던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가 떠올려지는 게 우연은 아닐 거라는 말이다. 사르트르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참여)’를 부르짖었듯이 신경림 또한 자신의 존재가 처한 세상 즉 박정희 독재하에서 ‘행동하는 시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확인한 후 앙가주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던 ‘갈대’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게 원통하여 꽹과리를 두들겨대는 농민으로 표변한 게 놀랍기는커녕 이유 있는 귀결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 신경림이 우여곡절 끝에 박정희 유신독재가 종말을 고하고 민주화의 꽃이 만개하자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시집 <낙타(2008년 창비)>의 표제시 ‘낙타’의 일부분)라고 읊으면서 다시 존재의 탐구에로 회귀하는 것도 매우 당연해보이고! 

시라는 것도 시인의 존재 인식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실감한다. 50년대에 속으로 조용히 울던 갈대가 70년대엔 부조리에 저항하여 꽹과리를 울려대다가 나이 80이 넘어서는 세상의 슬픔이나 아픔은 까맣게 잊고 달관과 초월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음에 세계 속에서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묻는 현존재의 자각과정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인간의 존재라는 게 ‘거기(da)’에 ‘있는(sein)’ 현존재(Da-sein)라는 것을 인정한다.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새떼-‘흐름’ 속의 불안과 허무

무리지어 날아가는 새들. 저런 새떼를 보고 어떤 흐름을 연상하고 그 흐름에서 삶의 순응을 읽어낸 문정희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새떼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피도 흘러서 하늘로 가고
가랑잎도 흘러서 하늘로 간다.
어디서부터 흐르는지도 모르게
번쩍이는 길이 되어
떠나감 되어.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을
조금씩 얼굴에 묻혀가지고
빛으로 포효(咆哮)하며
오르는 사랑아.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

                          <새떼(민학사, 1975), 문정희(文貞姬): 1947~ >


자 류(流)는 물을 뜻하는 삼수변(=水 )에 아기가 양수를 타고 태어나는 모양의 류()가 붙어만들어진 글자로 리(理)의 구현(具現)을 표현할 때 많이 쓰인다. 수학과 천문학으로 만물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했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었고 중국의 노자(老子)는 한술 더 떠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고로 도와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 幾於道)”고 예찬했었다. 흐름을 관찰한다는 것은 이치를 꺠달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해서 깨달은 이치에 부합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자고이래 많은 시인들이 '흐름'을 주요 소재로 채택했던 것도 이치로 정화한 감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공(時空)의 처음과 끝도 모르는 우리 인간의 삶이야말로 어떤 흐름 속에 던져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류(時流)나 유행(流行)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을 터, 우리의 삶이 어떤 거대한 흐름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는 깨달음은 이제 철학자나 시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장통의 장삼이사도 다 아는 주지의 상식이 되었거니와, 어떤 흐름 속에 던져진 자신의 삶 또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고는 불안과 허무를 감지하기도 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자신의 의식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 그 의식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는 것을 감지할 때의 충격이 철학을 강요하고 시를 쓰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 Apollinaire)도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e)'에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고 노래했었다.

문정희 시인
전남 보성 출신으로 1969년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시인 문정희(文貞姬)는 자신이 어떤 ‘흐름’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1975년 민학사에서 펴낸 시집 ‘새떼’의 표제시 ‘새떼’도 그런 관찰의 결과로 보인다. 하늘 저 편으로 날아가는 새떼의 모습에서 어떤 흐름을 보고, 그 흐름이 새떼라는 일물(一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피’로 대변되는 지상의 생명들이나 ‘가랑잎’ 같은 하찮은 것들까지 동참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과 보편성 즉 어떤 순리(純理)로 확대시키고 있음을 본다. “그걸 따라 우리도 모두 흘러서/ 울 이유도 없이/ 하늘로 하늘로 가고 있나니”라는 대목에선 원하든 원하지 아니 하든 흐름이라는 자연(自然)에 순응(順應)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諦念)이 읽혀지기도 한다. 한자 순(順)은 이치의 흐름을 상징하는 내 천(川)에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을 상징하는 머리 혈(頁)이 붙은 것으로서 이치의 흐름에 자신의 머리는 처박고 따르는 것이고 또 불가(佛家)에 뿌리가 박혀 있는 말 ‘체념’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끝까지 잠 안든 시간’이나 ‘울 이유’를 뒤로 한 채 하늘로 하늘로 흘러간다는 것이야말로 순응과 체념이 아닌가?!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고 고집했던 아폴리네르와는 정반대다. 흐름 안에서 함께 순응하는 존재와 흐름 밖에 머물면서 그 흐름을 관조하는 존재,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그 두 존재 모두 불안과 허무라는 공통분모 위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7년 1월 21일 토요일

To be, or not to be - 고뇌 속 캐릭터의 하마르티아(hamartia)

1948년 개봉된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 주연의 영화 '햄릿'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화상과 최우수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To be, or not to be(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게 문제야: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마음속으로 참고 견디는 게 더 고결할까?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그 잔인무도한 운명의 돌팔매질과 화살들을,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아니면 고통의 바다에 맞서 무기를 들고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to sleep 
대항하여 끝장을 내나: 죽는다는 건 잠드는 것
No more; and by a sleep, to say we end 
그 뿐이야; 그래서 잠자면 끝이라고들 말하잖아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그 가슴 아픈, 그 천개의 당연한 충격들은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몸뚱이가 물려받나? 그것도 마무리 짓는 방법 중의 하나일 테지
Devoutly to be wished. To die to sleep, 
경건하게 바래봄직도 해. 죽어 잠드는 것 말이야,
To sleep, perchance to Dream; Aye, there's the rub, 
자는 것, 아마도 꿈꾸는 것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까칠할 거야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그런 죽음의 잠 속에선 어떤 꿈들을 꾸게 될지 모르니까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그래서) 이 속세의 괴로움을 벗어던질 땐
Must give us pause. There's the respect 
꼭 멈칫 하게 된단 말이야. 그런 면이 있어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그래서 불행에도 불구하고 오래 오래 살게 되는 거지: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안 그러면 누가 세월의 채찍과 경멸을 참고 견디겠나?
The 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짓밟는 자의 오류, 잘난 척하는 사람의 오만무례,
The pangs of disprized Love, the Law’s delay, 
보상받지 못한 사랑의 고통들, 질질 끄는 정의(법)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관리들의 시건방짐, 그리고 그 코방귀들
That patient merit of the unworthy takes, 
그 가치 없는 것들을 참아내는 게 미덕일진대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 끝장낸다면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뾰족한 송곳으로? 누가 불행의 등짐을 지고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진저리쳐지는 인생 투덜거리면서 땀을 흘리겠나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그런데 말이야 죽은 다음에 뭐가 있는지 두렵기는 하지
The undiscovered Country, from whose bourn 
그 미지의 나라, 거기에 가면
No Traveller returns, Puzzles the will,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어떤지 헷갈려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고통과 불행을 참게 만들지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우리가 모르는 저 세상으로 도피하기보다는.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이런 식의 깨달음(생각)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 거야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그래서 결단의 본래의 색조가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구역질나게 변하는 거야, 생각의 창백한 투사(投射)로 말이야
And enterprises of great pith and moment, 
그래서 한 순간의 중대한 모험은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이런 식으로 다 길이 빗나가서
And lose the name of Action. Soft you now, 
행위의 명분을 잃게 되지, 유약해진단 말이야
The fair Ophelia? Nymph, in thy Orisons 
그 고운 오필리어? 요정이여, 그대의 기도 속에서
Be all my sins remembered. 
나의 죄악들을 모두 기억하게 되리라 

         <‘햄릿(Hamlet)’ 3막1장 독백,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년– 1616년)>


즘은 ‘캐릭터(character)’라는 말을 문학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마스코트와 같이 상징성을 목적으로 한 대상이나 등장인물을 상품화한 제품까지 포함하는 등 포괄적으로 사용하지만 원래는 사람이나 사물의 특질을 뜻하는 말이었다. ‘character’라는 말의 뿌리 또한 ‘긁은 것’ ‘새긴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kharaktêr’로서 어떤 표시를 하여 다른 것과 구별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특정 개인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질’ 즉 ‘성격’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고, 특히 소설이나 연극 등 예술 작품 속 등장인물의 가리키게 됐던 바,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명저 <시학(Poetics)>에서 ‘캐릭터’를 비극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여섯 가지 요소 중의 하나로 꼽았고,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Edward Morgan Forster)는 <소설의 양상(Aspects of the novel)>에서 소설 속 캐릭터들의 유형을 ‘평면적 캐릭터(flat character)’와 ‘입체적 캐릭터(round character)’로 나눴다. ‘평면적 캐릭터’는 변화 없는 고정적 이미지로 줄거리 전개를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반해 ‘입체적 캐릭터’는 복잡한 양상의 변화를 보이면서 줄거리의 전개와 발전을 주도해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들은 “소설이나 연극의 성공여부는 새로운 캐릭터 창출에 달려 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상(왼쪽)과  1605년 출간된 '햄릿' 의 표지.
문학작품 속의 캐릭터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데에는 19세기 러시아 작가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의 공이 크다. 투르게네프는 1860년 불우 문학인들과 학자들을 돕기 위한 한 모임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문학 작품 속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누고, 풍차를 악랄한 거인으로 착각한 나머지 돌진했던 돈키호테는 확고부동한 신념과 겸허한 마음과 위대한 영혼을 지닌 용감한 캐릭터로 추켜세운 반면, 에고이즘에 찌든 회의론자로서 언제나 머릿속이 자기 자신의 문제로 가득 차 있는 햄릿은 끊임없이 자신을 힐책하지만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캐릭터라고 깎아내렸었다. 1852년 당시 러시아 사회의 가장 큰 문제였던 농노 제도를 공격한 소설 <사냥꾼의 일기(The Hunting Sketches)>를 발표할 정도로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던 투르게네프였기에 햄릿보다는 돈키호테에 더 우호적(?)이었겠지만, 이후 투르게네프의 호불호(好不好)와는 관계없이 인간 성격의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나누는 게 유행했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햄릿형이냐? 돈키호테형이냐?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Hamlet)>이 발표되고 스페인에서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의 <돈 키호테(Don Quixote de La Mancha)>가 출판된 것은 모두 17세기 초, 자연과학이 등장하고 철학적으로는 합리주의가 꽃을 피워 계몽주의의 기반이 다져지던 당시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에 대한 탐구가 활발했던 바, 문학작품 속에서 지극히 대조적인 두 캐릭터가 창출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후 문화예술사는 햄릿형이 쓰고 정치사회사는 돈키호테형이 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가 1599년에서 1601년 사이에 12세기 덴마크 왕가를 배경으로 쓴 것이지만 주인공 햄릿은 오늘날에도 수두룩하다. 작품 속 햄릿이 겪었던 불안과 고뇌와 자학이 오늘날 현대인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뇌와 자학과 매우 유사하여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햄릿>에 나오는 7개의 독백 중 4번째인 3막1장의 ‘To be, or not to be’를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려니와, 그 제각각의 해석이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니는 것도 ‘햄릿’이라는 입체적 캐릭터가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인간형을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캐릭터 ‘햄릿’이 사회 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처음엔 문맥을 감안하여 ‘사느냐, 죽느냐’로 해석되던 게 철학적 터치가 가미되어 ‘존재하느냐, 마느냐’로 확대됐다가 요즘엔 경제논리(?)까지 덧붙여졌는지 ‘소유냐, 아니냐’로까지 비약하고 있음을 본다. 독백(獨白, soliloquy)의 의미 그대로라면 ‘혼잣말’이건만 그 ‘혼잣말’이 숱한 사람들과의 ‘대화’로 변해버렸음에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재차 실감한다. 

‘To be, or not to be’를 어떻게 해석할 지는 읽는 사람의 자유와 취향이겠지만, 해석이 제아무리 큰 타당성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원전의 텍스트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바, ‘사느냐, 죽느냐’로 해석하는 게 가장 무난할 듯싶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중의성(重義性, ambiguity)을 극대화하기 위해 ‘die’ 대신 존재를 부각하는 ‘be’를 사용한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제4독백 전체의 내용이 죽음에 관한 것이고 보면, ‘사느냐, 죽느냐’가 더 원전에 충실할 거라는 말이다. 실제로 첫 행의 ‘be’는 다섯 번째 행에서 ‘die’로 구체화되었거니와, 또 ‘die’를 ‘sleep’에 비유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죽음을 결행하느냐, 마느냐’ 사이에서 고뇌와 우유부단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본다. 

고뇌 속에서의 우유부단! 셰익스피어는 제4독백을 통해 햄릿의 ‘비극적 결함(hamartia, tragic flaw)’을 독자나 관객에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는 것을 까먹어서는 아니 된다. ‘잘못을 저지르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hamartanein’에서 나온 ‘하마르티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것으로서, 그에 따르면 비극의 주인공은 높은 지위와 고귀한 품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하마르티아’로 인해 불행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바, ‘하마르티아’야말로 비극을 비극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대로라면 ‘햄릿’의 하마르티아는 ‘고뇌 속의 우유부단’일 것이며, 그게 현대인의 행태와도 일치하는 바, 현대인들이 ‘돈키호테형’보다는 ‘햄릿형’으로 변해가기에 고독과 불행의 등짐을 벗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그대의 말속을 걸으며 - 불립문자(不立文字) 그늘의 고독

롱아일랜드 시티 퀸즈보로브릿지 옆길을 한 젊은 여자가 겨울 찬비를 맞으며 걷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통이 되지 않아서 외로운 세상, 저 여자는 어떤 말 속을 걷고 있을까.

그대의 말속을 걸으며


그대가 지상에 뿌려 놓았던 그 숱한 말(語)들 속을
나는 걷는다. 그러면 별들은 저마다 가볍게
부서지고 그대가 지상에 뿌려 놓은 그 숱한
말들 하나하나에 나는 대답한다. 그러면 또
나는 후회하는 일로 가득히 허물어지고 분명
그대의 말과 뒤늦게 대답하는 나의 말들이 결국은 내가
그대 없이 거니는 거리의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할 때,
나는 비로소 후회하지 않기 위한 후회를 위해
다시 처음부터 세상을 걸어야 함을 깨닫는다.
아아, 세상의 모든 그대들이여 그대 단 한번도
사랑의 날들 속에서 울어 보지 않았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들을 이별이
지난 뒤의 시간 속에서 내내 울어야 한다.

                                                   <박남원; 1960년- >


리말 속담에 ‘담벼락하고 말한다’는 게 있다. 사고가 꽉 막힌 채 남의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할 때의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지만 태생적으로 뭐든지 자기 머리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게는 ‘담벼락’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답시고 하는 말 자체의 의미가 부정확할 때가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아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크다, 작다, 아름답다, 밉다, 좋다, 나쁘다 등등의 표현 또한 그 기준이 사람에 따라 애매하여 정확하게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말로써 오해를 풀려다 오해가 더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하겠다. 

말이라는 것은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한 수단일 뿐, 말 그 자체보다도 그 말로써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communication’의 어원 또한 그 점을 잘 말해준다. ‘communication’의 뿌리는 ‘공유하다’ ‘공감하다’ 등을 뜻하는 라틴어 ‘communicare’로서, 말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공유한다는 의미다. 불교의 한 분파인 선종(禪宗)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흔히 ‘불립문자’를 ‘말이 필요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천만의 말씀,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는 의미의 ‘불립문자’ 자체도 문자라는 것을 까먹으면 ‘불립문자’의 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불립문자’는 무슨 심오한 철학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 즉 말보다는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라는 충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처의 설법을 담은 능가경(楞伽經)에서도 “문자에 따라 의미를 해석하지 말라[不立文字]. 손가락으로 뭔가 가리키자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보지 않고 오로지 손가락 끝만 응시하는 것과 같다[見指忘月]”고 자세히 풀이하고 있음을 본다. 

사랑의 표현도 커뮤니케이션의 일종, 사랑하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뇌와 번민의 상당부분 또한 주고받는 말의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간격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랑해본 사람들은 다 잘 안다.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가 뭔가? 내가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사랑과 네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사랑은 과연 동일한 건가? ‘사랑한다’는 말 즉 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상대방을 사랑할 때 드러내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이 차이를 보일 때는 어느 쪽을 신뢰해야 하나? 어찌 사랑뿐이랴. 타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나 불통처럼 답답하고 슬픈 것도 없다는 데는 ‘불통’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손가락질을 받다가 결국엔 국회에서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 빼놓고는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박남원 시인
전북 남원 출신의 시인 박남원(1960년- )의 ‘그대의 말속을 걸으며’를 읽노라면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얼굴표정 하나에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등단하여 세상으로부터 ‘민중시인’이라는 딱지를 선물받은 박남원이 그런 시를 쓴 것도 다소 의외(?)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소재로 소통과 불통 사이의 회한과 슬픔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음에, 세상의 편견이라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재차 실감한다. 작중의 ‘나’는 세상과 소통하려고 ‘그대가 지상에 뿌려 놓은 그 숱한/ 말들 하나하나에’ 대답하지만 ‘그대의 말과 뒤늦게 대답하는 나의 말들이 결국은 내가/ 그대 없이 거니는 거리의 어느 곳에서도/ 만나지 못할 때’ 다시 처음부터 세상을 걸어야 한다는 막막함에서는 이 시대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소외감이 뚜렷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런 하소연의 시를 쓰는 박남원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은 박근혜 정부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물어보나 마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사람들 중 누구 하나 박남원의 시를 단 한 편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의 후신) 회원으로 이름을 올려놓고는 있지만 문단 돌아가는 꼴이 꼴같잖아서 발을 뺀 지 오래됐다는 박남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소통이 되지 않아서 외로운 세상, 박남원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갈등과 불통을 그렇게 비판했는지 모르겠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이 쓴 시 치고는 너무 부드럽다. 지금도 어디선가 허물어져 내내 울고 있을 박남원의 시어(詩語)들 사이를 걷고 또 걸어본다.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음란으로 화장한 시인의 민낯

2013, chai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나 목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
귀걸이, 목걸이, 팔찌라도 하여
내 몸을 주렁주렁 감싸 안고 싶다
현실적으로
진짜 현실적으로 

                                             <광마집(狂馬集, 1980), 마광수(馬光洙): 1951년~ >


(色)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 또는 그것을 나타내는 물감 따위의 안료”라는 풀이와 함께 “색정이나 여색, 색사(色事) 따위를 뜻하는 말”이라는 풀이도 함께 딸려 나온다. 영어로 말하자면 전자는 ‘color’이고 후자는 ‘sex’, 영어 문화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지만 한자 문화권 사람들은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후한(後漢)의 허신(許愼)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했다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한자 ‘색(色)’은 사람 인(人)과 무릎 꿇은 사람을 그린 절(卩)로 구성되어 顔色(안색)’을 말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마음(心·심)이 기(氣)로 전달되고 기는 미간(眉間) 즉 얼굴에 표출되기에 이를 색(色)이라 한다”고 풀이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몸을 편 기쁨과 무릎을 꿇을 때의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므로 ‘안색’의 뜻이 생겼다”고도 풀이하지만, 그런 풀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색이 호색(好色)이나 색골(色骨) 등에서 보듯 ‘성(sex)’의 의미로 쓰이는 데 주목하여 “후배위(後背位)의 성교 때 흥분하여 뒤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색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단순호치(丹脣皓齒)라는 말이 미인의 대명사로 쓰이고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니 미색(美色)이니 하는 말이 생겨난 것도 우연은 아닌 듯싶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이 화장(化粧)에 열을 올리는 것도 색(色)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미 5만 년 전에 네안데르탈인이 화장용 색소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기원전 7500년 전 이집트 여인들이 화장을 했다는 이야기는 고고학적으로도 입증되어 주지하는 바다. ‘화장’을 뜻하는 영어 ‘cosmetics’의 어원은 “옷을 잘 입고 치장을 하는 기술”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osmetikē tekhnē’, 또 ‘kosmetikē’의 뿌리는 ‘질서’ ‘장식’을 뜻하는 ‘kosmos’에 닿아 있다. 고대 이집트 여인들이 짙고 긴 눈썹을 아름답게 여겼듯이 사람 형상의 인격신들이 지배했던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 또한 여신들이 가졌음직한 아름다운 얼굴 샘플을 상정해놓고 자신의 얼굴을 꾸몄을 거라는 속뜻이 읽혀진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플라우투스(Plautus (BC 254 – 184 BC)는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는 소금을 치지 않은 음식과도 같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1980년에 출간된 마광수의 처녀 시집 '광마집'(사진 오른쪽)과 2007년 모 일간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마광수.
군사독재시절이던 1992년 여대생이 자신의 대학 교수와 성관계를 갖는 줄거리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논쟁에 휘말려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馬光洙)는 정말 색(色)을 밝히는 색골(色骨)이었나? 이 세상에 널린 주제들 중 하필이면 섹스를 골라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면 천성 자체가 음란한 거 아니냐는 비난과 함께 섹스에 관한 사회의 위선과 이중적 잣대에 도전하는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찬사가 엇갈리고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화장을 걷어 내고 보면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섹스로 작품을 화장했을 뿐 섹스가 작품의 민낯은 아니라는 말이다. 1980년 펴낸 그의 처녀시집 ‘광마집(狂馬集)’애 실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화장’은 민낯을 가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민낯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찰이 읽혀지거니와,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민낯으로 사랑 받으려고 덤벼드는 뻔뻔한 여자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열심히 화장하는 여자에게서 여성으로서의 순수가 더 많이 느껴진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가 없고,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덕지 얼굴을 가리고 싶다”는 구절에서는 유태계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타자성(他者性)의 철학’마저 감지된다. ‘얼굴의 철학’으로도 불리는 ‘타자성의 철학’에서는 “타인의 얼굴은 내가 임의로 피할 수 없는 낯선 침입자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주관적 지배성이 배제된 ‘관계성 없는 관계’로서 자아는 단지 타자를 지각함으로써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타자를 수용할 때 타자는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침입자가 아니라 내면의 닫힌 세계에서 밖으로의 초월을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접촉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민낯을 화장하는 ‘야한 여자’를 수용하기 위해 자신 또한 화장하고 싶다는 마광수는 정액을 배출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수컷은 아닌 것 같다. 여자를 예뻐지기 위해 화장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성차별적인 시각엔 동의할 수 없고, 24년 전 제자가 쓴 시를 2006년에 펴낸 자신의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실은 게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등 문학가나 교수로서의 품행이 방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음담패설 늘어놓는 남자들 중 진짜 색골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만한 남자들은 다 안다. ‘나는 미친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놈이 아니듯이, 마광수가 진짜 미친 말이었다면 자신의 이름 앞쪽 두 글자를 뒤집어 ‘광마(狂馬)’라는 아호(雅號)를 짓지는 않았을 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역시 ‘화장을 많이 한 야한 여자’가 좋다는 게 아니라 ‘화장을 많이 해서라도 예뻐지려고 최선을 다하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그래서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고 첨언(添言)해둔 게 아닌가?! 실제로 마광수는 자신에게 비난의 손가락질이 쏟아질 때마다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도하여 순치시키는 도덕교과서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문학이 근엄하고 결백한 교사의 역할, 또는 사상가의 역할까지 짊어져야 된다면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율성은 질식되고 만다”라고 항변했었다. 그런 항변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술집 여자들이 화장발로 술을 팔듯이 마광수 자신 또한 작품을 팔기 위해 음란성으로 화장했다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눈을 흘기지만 한자 색(色)의 어형(語形)에서 ‘후배위 성교 때 흥분하여 뒤돌아보는 여자의 얼굴색’을 떠올리는 사람들만큼은 마광수에게 함부로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 같다.

2017년 1월 7일 토요일

설야(雪夜)-‘설국(雪國)’의 여인이 옷 벗는 소리

몇해 전 겨울에 거닐었던 보스턴 캠브릿지와 알스턴 사이의 강변 설경. 사는 게 삭막하다고 여겨질수록 설국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1938년 1월 조선일보에 발표, 시집 ‘와사등(1939)’에 수록, 김광균(金光均): 1914년 1월 19일~1993년 11월 23일>


그대로 지구온난화 탓인지 겨울이 겨울 같지 않다. 지난해는 물론 올해 들어서도 쌀가루 같은 눈들만 오는 둥 마는 둥, 눈다운 눈 한번 내리지 않았다. 마지막 잎까지 떨군 채 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서 있는 가로수들 보기가 민망하다. 하늘은 잿빛, 멀리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은 따분한 단조, 약간 삐딱하게 서 있는 길모퉁이 우선멈춤 표지판에서는 따분한 체념마저 읽혀진다. 

참 삭막하다. 이런 때면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꿈꾸던 ‘설국(雪國)’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고 싶다. 가끔 서양 무용에 관한 글을 번역하는 일 말고는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이 없는 고독한 주인공 시마무라(島村)으로 변장하여, 설향(雪鄕)의 온천으로 가서, 눈 내리는 밤 조용한 여관방에서, 순결한 생명력을 가진 게이샤 코마코(駒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사락사락 내리는 눈, 창호지마다 영롱한 달빛, 코마코의 청순미, 화톳불 온기만큼이나 따뜻한 정(情)으로 그녀를 유혹하리라. 조금은 위선의 껍데기를 뒤집어써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이 세상의 심성 여린 사람들은 다 안다....그래 맞아, 세상은 더럽고 치사하지만 당신과 나는 지금 순수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당신의 눈 속에 하얀 눈이 내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우리 먹고사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먹고 살기 힘든 이민사회에서 아줌마들 주급 떼먹는 봉제공장 사장이나 당신을 등쳐먹은 선배 이야기는 입에 올려봤자 비싼 밥 먹고 충전해놓은 에너지 낭비다,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만이 깨어 있는 이 정적 속에서 감미로운 키스를 나누자, 당신과 나의 영혼이 신이 나서 저 허공중의 눈송이들처럼 너울너울 춤출 때까지 우리 입맞춤을 하자, 그런 달콤한 말들로 코마코를 꼬드길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여자로 만들어 희열(喜悅)에 들뜨게 하리라. 

그러나 작가 야스나리는 시쳇말로 ‘변태(變態)’였던 것 같다. 소설이라는 게 작가 마음대로 풀어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착하고 마음 여린 남자 시마무라를 깊고 깊은 애수의 심연(深淵)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코마코의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시마무라의 육체를 얼어붙게 하면서 겨우 정신적인 쾌락만을 허락했다. 그러면서 거기에다 변명을 달았다. 순수한 남녀 사이에는 교접(交接) 이상의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었다. 눈 내리는데,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여자, 그녀와 단둘이 밤을 지새우면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고 싶지만, 육체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녀의 속절없는 애정은 더욱 더 청순미를 더한다, 흰 눈은 사락사락 내리는데....변태 치고는 꽤나 멋진 변태다. 야스나리는 이 작품으로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39년에 펴낸 시집 '와사등'(사진 왼쪽)과 만년의 김광균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서 이미 13세 때인 1926년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시인 김광균(金光均)도 카와바타 야스나리 못지않은 ‘변태’였던 것 같다. 1930년대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으로 가담하여 소위 모더니즘 시 운동에 앞장선 그는 “시는 하나의 회화”라는 시론을 전개하면서 주지적·시각적인 시를 계속 발표했다.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썼다고나 할까, 감각적 이미지 포착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중고교 교과서 실릴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 ‘추일 서정(秋日抒情)’에서는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에 비유했었고 ‘와사등(瓦斯燈)’에선 황혼의 고층빌딩을 보며 ‘창백한 묘비’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재주가 비상했기에 눈 내리는 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리라. ‘잃어진 추억의 조각’들을 다시 맞추며 슬픔에 젖는 애상(哀傷)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깊은 밤 뜰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를 듣는 놀라운 감성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육체적 섹스보다는 정신적 섹스의 기쁨과 쾌감이 더 크다고 믿었던 카와바타 야스나리도 고개를 끄덕여줄 듯싶다.

하얀 눈이 한번만이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좋겠는데, 모든 것 다 잊고 눈 속에 파묻혀보고 싶은데....올려다보지도 말라는 듯 잔뜩 찌푸린 잿빛 하늘을 오기로 올려다보며, 만만한 담배연기나 길게 내뿜으면서, 기설제(祈雪祭)를 지내본다. 하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한국 전쟁 중 납북된 동생이 운영하던 건설상회를 얼렁뚱땅 맡아 중견 기업으로 키워내는 등 후대엔 시인의 길을 접고 기업가로 활동했던 김광균 역시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까지는 세상 삭막하고 마음 울적할 때마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리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잠시도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2017년 1월 6일 금요일

Children of Light - 시대의 반항아 눈으로 본 ‘어둠의 자식들’

13개의 붉고 흰 줄이 번갈아 가로로 그어진 바탕 왼쪽 위편 사각형 안에 50개의 흰 색 별이 담겨 있는 성조기. 미국 독립 초기에는 12개 주를 상징하는 12개의 별들이 원을 이루고 있었으나 새로운 주들이 연방에 추가되면서 별들의 숫자가 늘었고 1960년 하와이주가 병합되면서 50개가 됐다. 와스프의 후손 로웰은 그런 성조기의 역사와 의미를 자랑스럽게만 받아들이진 않았던 것 같다.

Children of Light (빛의 자식들)



Our fathers wrung their bread from stocks and stones
우리 아버지들은 가축과 돌을 쥐어짜 빵을 만들어냈다네
And fenced their gardens with the Redmen's bones;
그리고 피부색 빨간 놈들(인디언들)의 뼈다귀로 정원 울타리를 쳤지;
Embarking from the Nether Land of Holland,
홀란드의 밑바닥 땅에서 출항한,
Pilgrims unhouseled by Geneva's night,
순례자들은 제네바의 밤에 의해 집을 잃었고,
They planted here the Serpent's seeds of light;
여기에다 빛의 독사의 씨앗들을 뿌렸지;
And here the pivoting searchlights probe to shock
그리고 여기 빙빙 돌아가는 서치라이트가 충격꺼리를 탐사하네
The riotous glass houses built on rock,
시끌벅적한 유리 집들이 바위 위에 지어지고
And candles gutter by an empty altar,
공허한 제단에선 촛농이 녹아 흐르는데
And light is where the landless blood of Cain
적실 땅 없는 카인의 피에 비쳐지는 빛
Is burning, burning the unburied grain.
아직 파묻지 않은 곡식을 태우고 또 태우네

                                       <로버트 로웰 주니어(Robert Lowell Jr.); 1917년~1977년>

 
국은 다인종 사회이지만 아직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백인이면서도 앵글로 색슨 언어 즉 영어가 모국어이고 신교도인 그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자신들의 조상이 미국을 개척한 이래 그들의 피와 땀으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었다는 긍지로 똘똘 뭉쳐 그들이야말로 미국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여긴다. 그걸 비웃을 수는 없다. 미국 개척 초기 하버드와 예일 등 소위 아이비리그(Ivy League)의 대부분이 그들에 의해 설립됐고, 미국 독립을 쟁취한 이후 눈부신 성장도 와스프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 바, 와스프의 숫자가 미국 전체 인구의 25% 미만으로 쪼그라들고 신교도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 지금까지도 유형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자면, 인류학적으로 ‘앵글로 색슨’은 5세기 이후 영국에 정착한 게르만족 후예를 가리키지만 미국서는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백인들까지 포함하여 두루뭉수리 지칭하므로, 미국의 와스프로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앵글로 색슨계가 아니다. 실제로 밴더빌트(Vanderbilt)와 루스벨트(Roosevelt) 가문은 네덜란드계, 록펠러(Rockefeller)와 에스터(Astor) 가문은 독일계, 듀폰(Du Pont) 가문은 프랑스계, 멜론(Mellon) 가문은 스코트아일랜드계다. 그래서 요즘은 와스프가 백인 상류계급의 특권의식과 위선을 비꼬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젊었을 적의 로버트 로웰 주니어.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민낯을 까발린 반항아였다.
와스프 가운데서도 보스턴 출신 엘리트들의 자부심은 유별나다. 이른 바 ‘보스턴 브라민(Boston Brahmin)’이다. ‘브라민’은 본디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학자계급을 일컫던 말이었으나, 미국서는 신대륙 개척 초기 플리머스(Plymouth)와 매사추세츠만(Massachusetts Bay)에 정착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의 후예로서 하버드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전시킨 보스턴 엘리트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됐던 바, 그 지역 상류층 백인들의 억양을 ‘보스턴 브라민 액센트(The Boston Brahmin accent)’라고도 한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고 검소한 생활태도를 견지하면서도 학문이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뜨거워 오늘날의 뉴잉글랜드 백인 상류사회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뉴잉글랜드 부자 타운의 부인들이 명품 핸드백 대신 친환경적인 헝겊가방을 들고 다니고 연봉이 수백만달러나 되는 변호사와 의사들이 상표도 없는 카키 반바지에 헝겊 운동화를 신고 동네 공원에서 열리는 시낭송회에 참석하는 것도 그런 보스턴 브라민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러나 겉으로는 검소하고 예의 바르고 신중하지만 속이 특권의식과 위선으로 꽉 차 있는 사람들도 많아 미국의 다인종 사회에 융화되지 않는 계층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1917년 보스턴 브라민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시인이 된 후 보스턴 브라민의 특권의식과 위선을 까발린 로버트 로웰 주니어(Robert Lowell Jr.; 1917년~1977년)는 말 그대로 보스턴 브라민의 이단아다. 19세기 유명 시인 제임스 러셀 로웰과 하버드 총장 애버트 로렌스 로웰 등을 배출한 로웰 가문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특권의식을 내팽개친 채 가톨릭으로 개종했는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양심적 병역기피자로서 1년 1일의 형을 선고받고 5개월 동안 코네티컷 주 댄버리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고, 보스턴 브라민의 특권의식과 위선을 비판하는 시를 써서 필명을 날렸다. 그가 1946년에 발표한 ‘빛의 아이들(Children of Light)’ 또한 필그림 파더스들의 위선을 까발린 시다. 필그림 파더스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을 것을 지적하여 “인디언들의 뼈다귀로 밭 울타리를 쳤다(And fenced their gardens with the Redmen's bones)”고 비웃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조상들을 여호와가 자신이 제물로 바친 농산물 대신 동생 아벨(Abel)이 제물로 바친 살찐 어린 양을 거두자 시기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카인(Cain)에 비유하고 있음을 본다. 신의 뜻과 가르침에 따라 살겠다고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인디언들을 죽이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이야말로 위선 중의 위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필그림 파더스야말로 ‘빛의 자식들’이 아니라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게 로웰의 고백적(?) 반성이었다.

‘보스턴 브라민’ 출신이 보스턴 브라민의 위선을 까발리는 시를 썼다는 자체가 아이러니컬하기는 하지만 로웰의 시작(詩作)을 그런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격, 로웰이 자기 고백시(confessional poetry)를 통해 전통을 가장한 위선적인 권위와 허위로 치장한 미국 역사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까먹어서는 아니 된다. 1947년과 1974년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또 1977년 내셔널 북 비평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많은 평론가들이 ‘전후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들 중의 하나로 꼽는 것도 로웰이 고백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그걸로 시대를 비판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제자인 앤 섹스턴(Anne Sexton)과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는 그와 함께 미국 고백시파의 주류를 이룬다.

로웰은 시대의 반항아였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이 말해주듯 로웰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성격이 까다로웠고, 반전운동과 시민권 옹호 운동에 앞장 서는 등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신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런 반항아였기에 모든 것을 내팽개친 채 시대를 비판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그를 감싸주고 추켜 세워주는 미국사회의 포용력 또한 놀랍기만 하다. 그 포용력이 미국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보스턴 브라민의 미덕 가운데 하나여서 아이러니컬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