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 |
청산(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실천문학사, 1982), 양성우(梁性佑): 1943 ~ >
유행가(流行歌)는 “특정 시기 대중의 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노래”, 당대 대중의 감성을 반영한 것이기에 비슷비슷한 게 많은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종종 표절시비가 벌어지곤 한다. 무명가수 이애란을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노래 ‘백세인생’도 가사가 일본의 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작자·연대 미상의 가담항설(街談巷說) ‘인생은 산과 고개가 많은 여행의 길-장수의 마음가짐(人生は 山坂多い旅の道-長寿の心得)’과 비슷하다는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이애란의 노래는 김종완이라는 작곡가가 1995년 작곡한 것으로서, “20년 전 친구의 아버지가 50대에 돌아가시자 자식들이 애타게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보고 좀 더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 가사를 썼다”고 전해지는데, 원래 제목은 '저 세상이 부르면 이렇게 말하리'였으나 몇 번의 편곡과 개사과정을 거쳐 2013년 '백세인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표절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나이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라고 전해라'라고 읊는 프레임이 똑 같고 이유 역시 너무 유사하다”고 지적하면서 눈을 흘겼었다.
기실 '~라고 전해라'라는 어법의 원조가 ‘장수의 마음가짐’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관용적으로 사용돼온 어법들 중의 하나다. 대면하여 하찮은 말이나 얼굴 붉히는 말을 주고받는 것을 꺼렸던 조선의 양반들도 아랫것들을 사이에 두고 “∽라고 여쭤라”라는 소통하는 것을 품위 있다고 여겼었고, 그렇듯 매개자(媒介者)를 두고 대화하면 상대방과의 심정적인 거리감이 확보되어 불필요한 흥분을 제어하는 효과도 있었다.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양새지만 매개자가 없을 경우에도 대화 당사자들끼리 “∽라고 여쭤라”라는 어법을 고수함으로써 말을 직접 주고받을 때 발생할지도 모를 감정의 동요를 예방하곤 했었다. 요즘 사람들도 직접 대면하기 싫을 때나 주고받는 말로 감정의 동요가 예상될 때 문자 메시지 등을 매개로 이용하는 것을 본다.
양성우 시집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그러나 양성우는 ‘큰 강’을 완전히 건너지는 않은 채 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 양천구 갑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1997년 11월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대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면서 속된 말로 신발을 바꿔 신는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데 이어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에 임명됐었다.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죽음의 문턱을 오가던 시인이 정치를 하면서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어 노선을 바꿨는지 모르겠으나, 시인으로서의 신념과 정치인으로서의 소신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당대의 저항시인이 기득권 정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 양성우가 그 양성우 맞아?”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항시인 양성우가 정치인 양성우를 소리쳐 부를 때 '~라고 전해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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