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2일 일요일

생명의 서(書) 일장(一章) - 생명 아닌 생철학 예찬

땅거죽을 뚫고 나온 나무 뿌리.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생명의 서(書) 일장(一章)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悔恨)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생명의 서(행문사, 1947), 유치환(柳致環: 1908∼1967)>


명(生命)의 생(生)은 땅거죽을 뚫고 나오는 여린 싹의 모양을 그린 것이고 명(命)은 말하고 먹는 구멍 구(口)와 하여금 령(令)이 합쳐진 것, '생'은 이 땅 위에 나와 사는 것 또는 살아 있는 것이고 '명'은 말하고 먹는 것이 내리는 령(지시), 그러므로 생명은 이 땅 위에 나와 말하고 먹으면서 삶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생명을 뜻하는 영어 ‘life’의 어원도 생명과 비슷하지만 말맛이 약간 다르다. ‘life’는 ‘몸’ 또는 ‘살아 있는 것’을 뜻하는 고대 노르웨이어 ‘lif’로서 ‘살아 있는 존재’를 강조하는 느낌을 준다. 

인간의 삶을 이성으로만 따져서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생(生)의 철학(philosophy of life)’이라는 것도 생겨났었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등에 의해 토대가 다져진 생철학은 세상만사를 이성으로만 설명하는 합리주의 철학에 반발하여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재만을 탐구의 대상으로 파악했었다. 모든 철학의 화두가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이 맞춰지는 만큼 서로 다른 철학이라고 해봤자 오십보백보이겠지만 합리주의 계열의 철학들이 지나치게 사변적(思辨的)이어서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등한시한 반면 생철학은 살아 쉼 쉬는 것들의 삶 자체를 직시했었다. 저 유명한 선언적 어록 "생을 생 그 자체로부터 이해한다(Das Leben aus ihm selber verstehen)"라는 말을 남긴 딜타이는 "생만이 모든 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 존재를 단지 표상(表象)하는 존재로서만이 아니라 의욕(意欲)을 갖고 정감(情感)하는 존재로 파악했다. 인간 정신구조는 어떤 대상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표상이 기초를 이루고 있으나, 그런 기초 위에는 어떤 대상을 설정하는 의욕이 있으며, 그리고 그 의욕 위에는 가치를 평가하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한반도의 현대문학사에 ‘생명파’라는 명함을 뿌렸던 사람들이 정말 생명 그 자체를 고귀하게 여겼을까? 아니다. 생명파는 1936년에 발간된 시 동인지 ‘생명부락(生命部落)’에 참여했던 서정주(徐廷柱), 유치환(柳致環), 오장환(吳章煥), 함형수(咸亨洙), 김달진(金達鎭), 김상원(金相瑗), 김동리(金東里), 윤곤강(尹昆崗), 신석초(申石艸) 등등을 일컫지만 시인부락이 통권 2호로 종간된 데서 보듯 이렇다 할 실적도 없었고 그들의 작품을 꼼꼼히 살펴보면 생명을 노래했다기보다는 생철학으로 포장했던 게 아닌가 싶다. 생명이 주제가 아니라 소재였다는 말이다. 더욱이 ‘시인부락’ 1호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았던 서정주(徐廷柱)가 1944년 12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조선인 가미가제 특공대원의 죽음을 찬미하는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를 발표하고 1980년대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됐던 전두환에게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를 바친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생명파’라는 이름을 지워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이 이룩한 문학적 성과를 폄훼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생명파’라는 이름을 잘못 붙여줬다는 말이다. 

청년시절의 유치환(사진 왼쪽)과 1955년 간행된 시집 '생명의 서' 재판본
후대 평론가들이 ‘시인부락’ 참여 시인들에게 ‘생명파’라는 명찰을 만들어 붙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유치환 (1908∼1967)의 작품 ‘생명의 서(書) 일장(一章)’도 생철학의 주장을 운율로 풀어쓴 것 말고는 돋보이는 게 없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는 이성(나의 지식)만으로는 인간의 회의나 삶의 애증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철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고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라는 대목은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가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고독을 짧게 간추린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생철학을 예찬하는 작품 전편이 생철학자들이 싫어했던 사변(思辨)으로 도배질되어 있는 점도 눈에 거슬린다. 유치환 또한 서정주와 마찬가지로 생명보다는 이념에 흔들려 해방 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부회장 등을 지내면서 민족문학 운동에 앞장섰는가 하면 6·25 때에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순수(純粹)하다. 시의 본질 또한 순수한 감동을 추구하는 데 있는 바, 시를 읽을 때도 포장을 벗기고 순수한 알맹이를 봐야 한다. 붕어 성분이 눈곱만큼도 들어있지 않은 풀빵을 붕어빵으로 부르는 항간의 관행을 문학에서도 통용시킨다면 붕어빵 독자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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