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4일 화요일

고한행(苦寒行) - 대장부 큰 뜻을 이루려면

산시성과 산둥성을 가르는 태항산맥. 


苦寒行(고한행)


北上太行山 (북상태행산) 북으로 태항산에 오른다
艱哉何巍巍 (간재하외외) 참 어렵도다, 어찌 이리도 높고 험한가
羊腸阪詰屈 (양장판힐굴) 구절양장 골짜기 구불구불
車輪為之摧 (차륜위지최) 수레바퀴도 안 굴러가는구나
樹木何蕭瑟 (수목하소슬) 수목들은 어찌 이리도 쓸쓸한지
北風聲正悲 (북풍성정비) 북풍 소리가 실로 구슬프구나
熊羆對我蹲 (웅비대아준) 큰 곰은 나를 보고 웅쿠리고
虎豹夾路啼 (호표협로제) 호랑이는 좁은 길에서 울부짖네
溪谷少人民 (계곡소인민) 골짜기엔 사람이 드문데
雪落何霏霏 (설락하비비) 눈은 어찌 이리도 펄펄 날리는지
延頸長嘆息 (연경장탄식) 목을 늘이면 긴 탄식이 나오는데
遠行多所懷 (원행다소회) 멀고 먼 길 소회가 많네
我心何怫郁 (아심하불욱) 내 마음 어찌 이리도 울적한지
思欲一東歸 (사욕일동귀) 마음은 오로지 동으로 가고 싶구나
水深橋梁絕 (수심교량절) 물은 깊은데 다리는 끊어져
中路正徘徊 (중로정배회) 길 가운데서 오락가락하네 
迷惑失舊路 (미혹실구로) 미혹하여 지나온 길을 잃어버렸는데
薄暮無宿棲 (박모무숙서) 날은 저물어 묵을 곳이 없구나
行行日已遠 (행행일이원) 걷고 또 걷는데 해는 이미 기울고
人馬同時飢 (인마동시기) 사람과 말이 모두 배가 고프구나
擔囊行取薪 (담낭행취신) 보따리를 진 채 다니면서 땔나무를 줍고
斧冰持作糜 (부빙지작미) 도끼로 얼음 쪼개어 죽을 끓이네
悲彼東山詩 (비피동산시) 슬픈 저 동산의 시가
悠悠令我哀 (유유령아애) 걱정 또 걱정으로 나를 슬프게 만드네

                                                <조조(曹操; 155년-220년>


람이 뜻을 세우면 ‘고행(苦行)’을 각오해야 한다. ‘고행’은 불교용어로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는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 괴로운 수행을 하는 것’, 산스크리트어 ‘tapas’을 의역(意譯)한 것으로서, ‘tapas’의 원래 의미는 ‘열기’ 또는 ‘열정’이었다. 힌두교 경전 베다가 말하는 고행은 ‘육체의 금욕’과 함께 이루어지며, 고행의 실천은 해탈(解脫)을 위해 신체를 정화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바, 단식이나 고통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는 요가 등의 수행과 결합했다. 그게 힌두교나 불교 밖으로도 전파되어 일반적으로는 뭔가 하고자 하는 열기와 열정으로 인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행을 아무나 하나? 아무리 큰 뜻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칠 때면 “내가 무엇을 위해 이 고통과 고뇌를 겪어야 하나?”라는 한탄이 터져 나올 때가 많다. 그런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가슴 속에 품었던 ‘열기’가 식어버리는 것은 물론 극심한 자기연민에 빠지게 된다. ‘신의 아들’ 예수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oi, Eloi, lamasabachthani?;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15장 34절에 전한다. 또 지금의 고행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도 고행을 중단하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다. 하루에 삼씨 한 알과 보리 한 알만을 먹는 등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극심한 고행을 실천했던 석가모니 또한 그런 극심한 자기학대 고행이 해탈에 이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제자들에게 고행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조의 초상
중국 후한(後漢) 말기 환관의 후손으로 태어나 적수공권으로 여러 제후들을 연달아 격파함으로써 훗날의 위(魏)나라 건국의 토대를 구축했던 당대의 영웅 조조(曹操; 155년-220년)도 고행으로 인한 극심한 고뇌에 시달렸던 것 같다. 주변으로부터 간웅(奸雄) 또는 효웅(梟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물론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암살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칼을 쥐고 자면서 ‘몽중살인(夢中殺人)’까지 해야 했던 그는 군웅들이 한 황실 재건을 외치며 덤벼들 때마다 홀로 맞서서 물리쳐야 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袁紹)를 격파한 직후인 건안 11년(서기 206년) 원소를 구하기 위해 거병한 원소의 생질 고간(高幹)을 격파하기 위해 출병했을 때 썼다는 ‘고한행(苦寒行)’을 보면 조조의 고뇌와 번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고독감, 전투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태항산 골짜기에서 겪는 추위와 배고픔....오죽하면 “我心何怫郁(내 마음 어찌 이리도 울적한지) 思欲一東歸(마음은 오로지 동으로 가고 싶구나)”하고 말머리를 돌리고 싶어 했을까? 그러나 말머리를 돌리면 그 즉시 자신의 웅대한 포부도 끝장, 조조는 이를 악물고 태항산을 넘어 고간군을 격파했다고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는 전한다. 동쪽으로는 화북평야와 서쪽으로는 산서고원 사이에 위치한 태항산맥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400km에 걸쳐 뻗어 있고 평균 해발은 1,500m에서 2,000m 정도, 산세가 험해 요즘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도 불린다. 산시성(山西省)이나 산둥성(山東省)이라는 지명은 이 태항산의 서쪽과 동쪽에 있다고 해서 생겨났다.

조조가 만난(萬難)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실력이 뛰어난 탓도 있었겠지만 대장부로서의 포부와 불굴의 의지가 남달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주지하다시피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에게 대패하고도 기가 꺾이기는커녕 군세를 정비하여 재기할 정도로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였다. 또 인재를 선발하고 아랫사람들을 통솔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삼국지(三國志)>를 저술한 서진(西晉)의 역사가 진수(陳壽)는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에 대처했으며, 구악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평했었다. 시쳇말로 말하자면 그 만큼 통이 컸다는 이야기다. 근대 중국의 문호 노신(魯迅)은 “조조는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뒤에 올 시대를 개척한 영웅이며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이었다”며 자신의 마음 속 깊이 감복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고,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 토대를 닦은 모택동(毛澤東)은 “조조를 간신이라고 하는 것은 봉건정통관념이 만들어낸 것으로 반동사족들이 봉건정통을 유지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조를 공식적으로 복권시키기도 했다. 또 당대 최고 시인들 중의 하나로 꼽혔던 조조는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건안삼조(建安三曹)’로 불렸던 바, 그가 지은 시편들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 중 조조의 웅지를 담은 ‘구수수(龜雖壽)’를 참고로 적어둔다. 

神龜雖壽 (신구수수) 신령한 거북이가 비록 오래 산다고 해도
猶有竟時 (유유경시) 언젠가는 죽는 때가 있다.
謄蛇乘霧 (등사승무) 이무기가 안개를 탄다 해도
終爲土灰 (종위토회) 끝내는 흙먼지가 된다.
老驥伏櫪 (로기복력) 늙은 준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으나
志在千里 (지재천리) 뜻은 천리 먼 곳에 있다.
烈士暮年 (열사모년) 강하고 곧은 선비는 만년에 들어서도
壯心不已 (장심불이) 웅대한 포부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盈縮之期 (영축지기) 흥망성쇠의 때는 
不但在天 (불단재천) 하늘의 뜻에만 있지 않도다
養怡之福 (양이지복) 복 받은 기쁨을 키워 나가야 
可得永年 (가득영년) 영원함을 얻을 수 있네
幸甚至哉 (행심지재) 운이 다해 어려움이 닥쳐도
歌以詠志 (가이영지) 노래를 불러 뜻을 기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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