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3일 금요일

고풍의상(古風衣裳)-시적 감동 없는 ‘옛것 사랑’

18,9세기에 활동했던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사진 오른쪽)와 1930년대  기생들의 모습.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고풍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회장을 받친 회장저고리
회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문장’(1939),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연과 환경에 도전하기보다는 순응하는 게 편했던 농경정착문화권에서는 옛것 즉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선대의 경험과 습관과 지식을 중시했었다. 그런 것들 가운데 줄기를 삼을만한 것들을 간추려 전통(傳統)이라고도 했다. 농경정착문화권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공자(孔子) 또한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고 역설했었다. 옛 것을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면 가히 스승이 됨직하다는 것이었다. 

‘옛것(故)’이라는 게 뭔가? 한자 ‘故’는 옛날을 뜻하는 고(古)와 글월이나 ‘회초리로 치다’를 뜻하는 등글월문(攵=攴)이 합쳐진 것, 옛날로부터 전해오는 관습이나 전통 등 글월로 기록해둘 만한 가치 있는 ‘옛것’을 말한다. 흔히 옛 고(古, 故)를 영어 ‘old’와 같은 의미로 간주하지만 천만의 말씀, 영어 ‘old’의 뿌리는 ‘성인’ ‘다 큰 사람’을 뜻하는 고대 게르만어 ‘alt’가 영어권으로 넘어와서 변한 ‘ald’로서 ‘(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묵었다(성장했다)’라는 말맛을 풍긴다. 한자로 말하자면 구(舊)에 가깝다. 예를 들면 ‘old house’는 ‘지금은 없는 옛날 집’이 아니라 ‘현존하지만 오래 되어 낡은 집’을 뜻한다. 

수 천 년 동안 공자 말씀을 귀 따갑게 듣고 살아온 탓인지 한국인들은 옛것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척 한다. 말 그대로 ‘말로만’이다. 컴퓨터 하나로 지구촌을 들여다보는 요즘에도 한국적 전통을 비판하기보다는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미화하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 습관이나 생활양식을 개선하기 보다는 이중적 태도의 관성 속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삶의 기본인 의식주(衣食住)만 봐도 그렇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선호하면서도 기와집이나 초가(草家)를 예찬하고, 설렁탕이나 비빔밥보다는 일식이나 양식을 고급으로 간주하면서도 ‘한식의 국제화’를 외치는가 하면, “이 지구상에 한복처럼 아름다운 의상은 없다”고 침을 튀기는 사람들도 누군가 치마저고리 입고 사무실에 출근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자꾸만 위아래를 훑는 것을 본다.

1946년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청록집'과 시인 조지훈의 만년의 모습
경북 영양(英陽) 출신으로 1946년 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과 함께 자연 친화적인 시들을 모은 시집 ‘청록집(靑鹿集)’을 간행했다고 해서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시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 본명은 조동탁-趙東卓)이 1939년 ‘문장(文章)’에 발표한 데뷔작 ‘고풍의상(古風衣裳)’도 ‘말로만 옛것 사랑’인 것 같은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한국현대시문학사에서 과대평가된 작품들 중의 하나, 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조지훈의 나이는 열아홉, 채 스물이 안 된 문학청년의 작품 치고는 발군의 세련미가 돋보인다고 칭찬할 수도 있겠지만 중고교 국어시간에 가르칠만한 고전으로 대접할 일은 아닌 듯싶다. 한국현대문학사 초창기에 ‘청록파’라는 기념비를 세우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여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하면서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긴 그의 문학적·학문적 성과를 폄훼하자는 게 아니다. 관찰자의 느낌과 서술만 있을 뿐 즉 주체(작품 속의 화자)와 객체(고풍의상) 사이의 교감이 없어 시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적 감동이 차단되어 있거니와,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아닌 소재의 주관적인 묘사에만 치중함으로써 시공(時空)을 초월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 민속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같은 느낌을 준다는 말이다. 한복을 할머니 할아버지 옷으로나 간주하는 요즘의 신세대 독자들에게는 공감 불가능한 ‘온고이지신’, 한옥 헐고 아파트 짓는 요즘 쫄쫄이 청바지에 쫄티 즐겨 입는 21세기 젊은이들에게 회장저고리나 열두 폭 치마나 운혜(雲鞋) 당혜(唐鞋)를 권할 수도 없거니와, 한국의 전통미가 어쩌고저쩌고 강제 주입시킨 후 이 작품을 백 번 천 번을 외우게 해봤자 시적 감동이 전해질 리는 만무, 시문학 교실의 학생이 아닌 전통의상박물관의 관람객에게나 들려주면 적합할 듯싶다.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 퍼런 억압 아래서 감히 식민지 조선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조지훈의 민족정신과 패기는 칭찬해주고 싶지만 문학성만을 놓고 볼 때 ‘고풍의상’은 한국의 전통미를 예찬하기 위한 목적성을 가지고 쓴 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그 목적성이 과녁을 크게 벗어났다. 시의 목적성은 단 하나, 음식은 맛으로 먹고 옷은 멋으로 입듯이, 감동으로 읽혀야 한다. 시를 쓸 ‘당시의 의도’만 있을 뿐 그 시를 읽는 ‘현재의 감동’이 없으면 그 때 그 시절의 선전선동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 즉 시적 감동을 염두에 두고 창작되어야 오랜 세월을 두고 읽혀진다는 것을 시를 짓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