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1989, 문학과 지성사),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세계의 중심은 ‘나’다. 동서남북의 방위도 ‘나’를 중심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나’의 눈에 빨강색의 안경이 걸쳐지면 세계는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의 안경이 걸쳐지면 파랗게 보인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일찍이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치고 석가의 제자들이 입만 열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부르짖었던 것도 ’나‘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식과 무관치 않다. '나'의 번뇌는 '나'로 말미암은 것,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불안과 고독의 뿌리가 '나'라는 데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는다. 세계의 중심인 '나'의 경험과 지식이 작용하는 사고(思考)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어떤 자극에 대해 적응하지 못할 때 불안이 야기되고, 그 불안을 해소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나'를 동정(同情)하거나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문득 외로움에 휩싸이고, 그런 외로움이 겹겹이 쌓여 굳어지면 고독이라는 감옥으로 변하지 않던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간은 누구나 다 불안과 고독의 감옥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복잡다단해지면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던 19세기 후반 '나'의 자유와 책임과 주관성을 중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불안과 고독을 화두로 삼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덴마크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년~1855년)는 불안과 고독의 뿌리를 원죄와 구원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격에서 찾았지만 기독교의 우산에서 벗어났던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년~1976년)는 인간의 존재 확인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했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그 어떤 특별한 의미 없이 세계로 '내던져진 자'로서, 모든 것은 오직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는 바, 자신의 '내던져짐'과 그리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맡겨져 있음'에 대해 권태로워하면서 불안해하고 결국에는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죽음과 대면해야 하므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 바 '현존재(Dasein)'의 자각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 즉 ’나‘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게 불안이고 고독이라고 하이데거는 주장했었다.
불안과 고독도 지나치면 병, 그게 감당할 수 없을 만치 커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면 '심적 외상(心的 外傷, Psychological trauma)'을 남긴다. 일찍이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S. 프로이트와 J. 브로이어(Josef Breuer)는 공동연구를 통해 히스테리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잊혀져가는 마음의 상처(심적 외상)를 상기시키면 히스테리가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인간에게 있어서 몹시 불쾌하고 강렬한 체험(심적 외상)은 자신의 정신적 안정을 위협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므로, 그것은 억압이라는 기제(機制)에 의하여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 세계로 전환된다.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심적 외상은 콤플렉스를 형성하여 장래 그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었다.
시인들은 자기만의 감수성으로 사물과 삶을 관찰하고 또 그것을 자기만의 시어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고집이 세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탓이 큰 것으로 이해되거니와, 그들이 매우 사적인 심적 외상으로 인한 충격을 시로 승화시키는 행위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위안의 방편으로 시작(詩作)을 시작한 시인들일수록 '심적 외상'의 신음(呻吟)을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앞길이 막혀 좌절했던 당나라 시인 이하는 자신의 시세계를 괴기하고 염세적으로 장식했었고, 한국의 대표시인 서정주 또한 대표작 중의 하나인 '자화상'에서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고백했었으며, 아내와 사별한 아픔과 슬픔을 시로 읊어 베스트셀러 시인이 됐던 도종환도 “좌절과 고통 없었다면 시인 못 됐을 것“이라고 토로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게 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1989년 문학과 사상사에서 펴낸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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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던 중 뇌졸중으로 인해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던 시인 기형도(奇亨度: 1960 ~ 1989)도 '심적 외상'에 꽤나 시달렸던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노라면 유년의 가난과 불안과 고독이 여린 심성에 깊은 상처를 남겨 성년이 되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1989년 5월 발간된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엄마 걱정'도 '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은 '엄마 걱정'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자기 자신 걱정, 해가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찬밥처럼 방 안에 담겨 불안에 떠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을 표출하고 있음을 본다. 아주 먼 유년의 일이었지만 성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는 토로가 너무 애처로워 그 때의 일이 얼마나 큰 '심적 외상'을 남겼는지를 가늠케 한다. 실제로 기형도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런 유년의 우울한 기억이 많다.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 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 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위험한 家系 1969' 앞부분>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져 죽만 먹고 지내는 가운데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고 매정하게 말한다든지 스펀지 마다 숭숭 구멍 난 잠바를 입고 다니는 철부지 아들이 새것을 사달라고 조르자 “그래도 올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라고 거절하는 어머니의 아픔과 슬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그로 인해 입은 상처를 평생 어루만지고 살아야할 자신의 영혼을 더 불쌍히 여기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제목을 ’위험한 가계‘라고 붙인 게 아닌지?!
세상의 중심은 '나'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믿고 있다는 점 또한 상기한다면, 소통의 문이 열린다. 시를 짓고 감상하는 이유도 그런 소통의 문을 열기 위해서라는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시가 어쩌다 생겨난 게 아니라 원초적으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혼자만의 불안과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다가 발명해낸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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