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전깃줄 두어 가닥의 인연에 묶여 서 있는 건 아니다
갈 곳이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제자리 지키는 게 미덕이라고 여겨본 적은 없다
누구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냥 서 있다 우두커니
외로운 새 한 마리 앉았다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려도
아쉬워하여 손 흔들지 않는다
땅거미 몰려와 축 늘어진 그림자를 마저 덮어버려도
불안하여 서성거리지 않는다
길 잃은 구름 걸려 자빠지고 비바람 몰아쳐도
슬퍼하여 울지 않는다
그냥 서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낯선 사람들이 오고가듯이 그렇게
어제는 갔고 오늘은 오고 내일은 오겠지만
움직이는 것은 움직이는 것일 뿐
그냥 서 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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