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마운틴 공원의 호수. 산비탈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호숫물 속에 잠긴 단풍이 더 아름다워보인다. |
山行(산행)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멀리 서늘한 산기슭 돌길 비탈지고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 한 채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추고 앉아 짙어지는 단풍 감상해보니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서리 맞은 잎들이 봄꽃보다 더 붉구나
<두목(杜牧); 803년-852년>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탱크 굴러가는 소리를 내는 고물차를 타고 ‘검소한 나들이’를 나섰다. 뉴저지 팰리세이즈 파크웨이를 달린다. 들뜬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우면 베어 마운틴으로, 절도(節度)와 결심(決心)이 필요할 때는 웨스트 포인트로, 마음이 울적하거나 고요속으로 침잠(沈潛)하고 싶을 때는 우유부단(優柔不斷)이 좋다. 파크웨이가 끝나는 곳, 베[어마운틴 언저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9W 사우스, 직진하면 픽스킬, 좀 더 돌면 웨스트포인트,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리고 빙빙 돌다가 엉겁결에 들어서면 세븐 레이크 드라이브다.
좁지만 잘 닦여진 길, 구불구불 구비를 돌아갈 적마다 산들이 호수에 제 그림자들을 담그고 울긋불긋한 단풍잎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진다. 바람이 분다. 쇄쇄, 바람을 쐬는 것을 쇄풍(曬風)이라 했다. 도시의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욕망(慾望)의 햄버거를 먹고, 오욕(汚辱)의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끝내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가끔씩 우마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와 바람으로 몸과 마음을 씻으라고 했다. 무언(無言)과 포기(抛棄)의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씻으라고 했다. 갑자기 가슴속이 시원해지면서 가뿐한 느낌이 든다. 쇄락(灑落) 그 자체다. 처녀얘들 종아리처럼 매끈한 나무들이 잎사귀들을 흔들며 새살거린다. 티 없이 맑은 파란 하늘은 언제 올려다봐도 눈이 부시다. 한가로이 떠도는 흰 구름이 내려다보며 희롱한다. 나 잡아 봐라, 나 잡아 봐라...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흰 구름을 잡을 생각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름답다. 자연이 아름다우냐 그 자연을 바라보는 심성이 아름다우냐를 묻는 것은 우문(愚問), 호수의 잔 물살들이 까르르 웃는다.
시인 두목의 초살화 |
停車坐愛楓林晩(수레 멈추고 앉아 짙어지는 단풍 감상해보니)
霜葉紅於二月花(서리 맞은 잎들이 봄꽃보다 더 붉구나)
이제 곧 북풍한설에 묻혀버릴 나무들의 마지막 모습이 봄꽃보다 더 붉다? ‘서리 맞은 붉은 잎들’에서 느껴지는 비장미(悲壯美)에 온몸이 서늘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단풍(丹楓)이라는 것이 화청소(花靑素)가 붉게 변하면 빨강이 생겨나고, 엽록소(葉綠素)가 없어지면 노랑만 남는다는 것을 익히 배워 알고 있으나 인생 내리막길에 접어든 1천여 년 전의 시인이 서리를 맞아 더욱 더 붉어진 단풍을 보면서 청춘의 봄꽃을 떠올렸다는데 대해 연민과 공감을 금할 수 없다. 너무나도 처연한 관조(觀照)다. 사는 게 뭔지, 어느 새 꿈은 사라지고, 아등바등거리기도 싫고, 그렇다고 해서 아직 마음의 평화는 얻지 못한 상태, 그 고민과 번뇌가 마지막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지 않은가?! 어느 새 노랗고 빨간 단풍으로 물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