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6일 수요일

‘Herbsttag(가을날)’ - 또 그 ‘때’가 왔다

보스턴 캠브릿지와 알스턴 사이를 흐르는 찰스 리버 사이드.  가을색이 완연하다. 낙엽을 밟으며 걸을 때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을 다시 읇조려 본다.






















Herbsttag(가을날)

Herr①: es ist Zeit.② Der Sommer war sehr groß.③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④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⑤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주여①, 가을이 왔습니다.②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③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④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 후로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⑤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 

가 왔다. 무슨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주님이 재림하여 심판하는 때’를 떠올리겠지만 천만의 말씀, 가을이 왔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23.5˚나 삐딱하게 기울어진 지구 땅덩어리가 태양 주위를 돌기 시작한 이래 “태양의 황경이 180˚를 넘어서면서 태양이 적도를 통과하여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들어가는 때”를 ‘가을’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거창한 의미를 가지기에 ‘때가 왔다’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태양으로부터 약 1억 5000만㎞ 떨어진 지구에서 바라보는 태양의 궤적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가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북반구에서는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낮과 밤의 기온차 또한 크게 벌어지고 과실이 무르익고 식물의 생장이 휴면기에 들어가기에 자고이래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을’을 뜻하는 영어 ‘autumn’의 뿌리도 라틴어 ‘autumnus’로서 ‘수확(收穫)’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영어 ‘fall’은 양분의 공급이 중단된 잎들이나 과실이 ‘떨어지다’라는 의미다. 그래서 ‘가을’이 ‘인생의 수확기’ ‘내리막길’ ‘후반부’ 등을 비유하는 데 쓰여 왔다는 건 가방 끈 짧은 사람들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맞다. 꼭 이맘 때 쯤이었으리라,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가 ‘가을날(Herbsttag)’을 쓴 것도. 그 ‘가을날’ 첫머리가 ‘Herr①’ 즉 ‘주(主)’로 시작하기에 모든 것을 주님에게서 구하고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역사 유구하고 인류 보편적이라는 증거가 또 하나 나타났다고 반색하겠지만 그 또한 만만의 말씀, 여기서의 ‘주’는 기독교의 신을 특정한 게 아니라 ‘대자연’ 또는 그것을 신격화한 ‘조물주(造物主)’로 해석하는 게 옳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그 작품을 쓸 무렵의 릴케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 등에 심취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인생관과 세계관에 반발하여 과학적 이성적 태도를 취했었다는 사실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 

‘가을날’ 첫 번째 행의 ‘groß’도 이 작품이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③? 무슨 자다가 일어나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서양문화=기독교 문화’라고 수박의 겉만 핥아온 한반도 사람들은 하느님과 예수를 의식하여 ‘groß’를 ‘위대하다’라는 의미로만 해석해왔지만, 기실 ‘groß’는 ‘great’ 뿐만 아니라 ‘big’ ‘magnificent’ 등의 의미도 지니는 바, 이 작품에서는 ‘굉장하다’라는 의미로 풀이해야 문맥이 통한다. 술 퍼마시고 중언부언하지 않는 한 여름을 위대하다고 칭찬해놓고 가을을 노래할 시인은 없을 테니까. 찌는 듯한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고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소나기에 오장육부가 젖고 파리와 모기가 평화를 물어뜯던 여름은 참 지긋지긋했었으나, 그로 인해 만물이 생장하기에 차마 투덜거릴 수가 없어서, ‘참 굉장했었다’라는 반어법(反語法)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es ist Zeit.’②를 ‘가을이 왔다’고 번역한 것도 엉터리 중의 엉터리, 영어로 바꾸면 ‘It's Time’으로서, 예수가 재림하여 심판해주기를 고대하는 기독교인들의 상용 어구를 풍자하여 ‘드디어 때가 됐다(왔다)’고 너스레를 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신의 은총 속에서 영혼의 완숙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작품”이라고 떠벌이는 것이야말로 코미디의 클라이막스, 이 작품의 주제는 니체 등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이빨이 흔들리도록 곱씹었던 인간의 원초적인 불안(不安)과 고독(孤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④’라는 셋째 연 첫 행에 함축돼 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 즉 실존으로서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인간’을 의미하며,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는 불안과 고독을 인간이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어줍잖게 종교 따위에 귀의하지는 않겠다는 실존 선언이며, 그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쓰겠다⑤’는 것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겨울을 앞두고 가을바람이 나뭇잎들을 떨어뜨려 이리저리 몰고 다닐 때 그 나뭇잎들과 함께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존선언이야말로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조물주에 대한 가장 치열한 반항이 아닌가?! 

1900년경의 릴케
릴케를 독일시인이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낯간지러운 오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독일어권 시인’이라고 해야 옳다. 1875년 지금은 체코로 불리는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청년기 이후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반시대·반통속적인 줏대를 길렀고, 뮌헨서 공부하고 독일어로 말하고 썼지만 독일 지배 하 체코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단편집 ‘프라하의 두 이야기’(1899)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F.A.R. 로댕에게서 조각을 배우는 등 국적이나 민족주의에 연연하지 않았었다. 개개의 형상에 의지하였던 생의 불안을 존재적 문제로 다시 수용하면서 아프리카와 에스파냐 등지를 방황하다가 피카소의 그림이라든지 발레리의 시와 접한 후 10여년에 걸쳐 대표작 중의 하나인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장시(長詩) ‘두이노의 비가’는 ‘가을날’의 해설판이자 완결판, 릴케 자신이 1912년 1월 중순 어느 날 북풍이 몰아치는 두이노성 절벽을 걸어내려 가다가 사나운 바람소리와 물결소리 속의 목소리 듣고 길 위에서 받아썼다는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서열 가운데 그 누가 들어줄 것인가?”로 시작되는데, 천사 조차도 들어주지 않는 인간의 고독을 천착하고는 “삶과 죽음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만 인간은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생 고독과 불안에 시달렸을망정 ‘예수님’이나 ‘하느님’은 찾지 않았고 죽음 또한 주로 스위스 시에르 근처의 뮈조트 성(城)에서 지내면서 발레리의 작품을 번역하던 중에 담담하게 맞이했다고 전한다. 

자, 어쨌거나 이제 때가 됐다. 아직은 따사로운 햇살이 ‘마지막 과실’들을 완성시킴으로써 포도주의 단맛이 더 한층 깊어지겠지만, 머잖아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고, 창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그런 가을밤이 더욱 더 길어지면서, 이제 집짓기를 포기한 사람이 잠자지 않고, 읽고 , 그리고 긴 편지를 써야할 때가 왔다. 더러는 해질 무렵 거리의 낙엽이 되어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삶이 뭔지, 사는 게 왜 이다지도 쓸쓸한지, 피할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이라면 어찌 부둥켜안아야 하는 건지를 곱씹고 또 곱씹으리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창시절에 처음 읽었던 릴케의 ‘가을날’을 다시금 해석하면서.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추풍인(秋風引)-가을 타는 남자의 술래잡기


秋風引(추풍인) 

何處秋風至(하처추풍지)  어느 곳에까지 가을바람이 왔나? 
蕭蕭送雁群(소소송안군)  소소 불어 기러기 떼 보내더니 
朝來入庭樹(조래입정수)  아침에 정원 나무를 흔들어대는데 
孤客最先聞(고객최선문)  외로운 나그네가 제일 먼저 듣네 

                                               <유우석(劉禹錫); 772년-842년> 

월과 함께 술래잡기 놀이하는 것 같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셀 동안 아니 그것도 귀찮으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따위의 열 글자짜리 구절을 외울 동안 살금살금 다가와 뒷등을 탁 치고 달아나는 놀이 말이다. “이젠 진짜 가을이구나” 하는 말을 그치자마자 낙엽들이 뒷등을 탁 치고 달아나는 것 같다. 10월 들어 두 번째 맞은 휴일 오후, 낙엽에게서 등을 얻어맞은 분함을 풀기 위해 한시(漢詩) 모음집을 꺼내 두 눈 꼭 감고 점 보듯이 아무 데나 펼치자 당(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 술래놀이를 하느냐?”는 듯이 허허로이 웃는다. 가을바람이 어디까지 왔느냐고? 외로운 이민자의 귓전에까지 근접한 것 같다. 소소(蕭蕭)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의뭉 떨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기실 그 소소 바람 소리를 제일 먼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맨 처음 이사 왔을 때 값싼 코압(Co-Op) 아파트일망정 수목이 울창한 ‘잉글리시 가든(English Garden)’이 있는 것을 망외의 기쁨으로 여겼건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갈수록 그게 형장(刑場)으로 바뀔 줄이야! 아무리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어도 가을은 왔고, 매해 여름 무성한 욕망(慾望)으로 하늘을 덮던 플라타나스 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때마다 자포자기(自暴自棄)와 미련이 교차하면서, 서늘한 가슴앓이가 도지곤 했다. 분수대 주변에 심겨진 팬지들의 꽃잎도 말라비틀어지고, 관리소 직원들을 약 올리듯이 웃자라던 잡초들 또한 시큰둥하게 누워 텅 빈 하늘이나 바라보고, 이따금 길을 잘못 들어온 듯 중국집 배달부가 이 쪽 저 쪽을 오가며 아파트 이름을 확인할 때 가난한 이민자의 권태로운 일상(日常)이 문득 초라해지면서 내 것이 아닌 듯 서먹서먹해지는 것이었다. 

그랬다. 가을은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저어도 막무가내로 왔다. 잉글리시 가든을 뒤덮고 있던 초록이 커피색으로 짙어갈 즈음이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을 준비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건 나무들도 마찬가지, 소소 바람이 불면 잎의 양분이 줄기 쪽으로 옮겨가 엽록체가 분해되어 녹색을 잃고, 그와 동시에 잎자루 기부(基部)에 이층(離層)이 형성되고, 이층 세포의 접착력이 약해지면 잎이 탈락하게 되는 것을 골백번도 더 경험했건만 매번 처음 겪는다는 듯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쓰럽기 짝이 없다. 나이 먹을수록 남성 호르몬이 늘어났는지 대범해져가는 아내는 “나무가 알기는 뭘 알겠어요? 감정 이입이 지나친 거 아닌가요?” 하고 배시시 웃지만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하면서 소소 바람 불 때마다 서걱이는 나뭇잎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지 끝에 매달려 있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모양을 그저 그런 자연(自然)으로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다. 

하긴 자연이 그렇고, 세상살이가 다 그렇다면, 더 말해서 무엇 하랴. 지난 여름 동안 같은 나ant가지에 매달려, 사랑을 속삭이고, 우정을 나누며, 꿈과 희망을 키워왔으면서도 안녕이란 말 한마디 없이 미련과 자포자기로 헤어져버리는 무정(無情)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 미련과 자포자기? 그러고 보니 참 익숙한 한 쌍의 노리개 같다. 그것들은 이룬 것도 없이 아랫배의 기름기만 부풀려가면서 달력의 숫자들을 징검다리 삼아 세월을 건너뛰고 있는 중년남자가 손바닥 피를 잘 돌게 한답시고 주물럭거렸던 한 쌍의 호두알 같은 것이었다. 누구는 낙엽을 태우면서 풍요(豊饒)와 윤택(潤澤)의 기억을 떠올렸다지만 뭔가 이룩해보려고 항상 쫓기듯이 살아온 이민자에겐 차마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이 실토한다. 그래서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부끄러움 하나, 어느 덧 ‘가을을 타는 남자’가 돼버렸다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다. 

엊그제 서울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거기서도 미련과 자포자기의 낙엽들이 어지러이 엇갈리고 있었다. 모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는 친구는 “회사에서 용도 폐기당할 것 같다. 이제 떨어져나갈 날이 머지 않았다”며 술에 절어있었고, 사업에 성공하여 돈 좀 벌었다는 친구는 제까짓 놈이 늙으면 얼마나 늙었다고 청춘(?)을 되살리겠다며 열댓살 연하의 아가씨와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다가 가정파탄과 부도를 맞았다고 했고, 학창 시절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구한 날 데모만 하던 친구가 아직도 국회의원 배지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차기 총선이야말로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며 정계 실력자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니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인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왜 그다지도 서글프게 전개되는 것일까? 손에 든 커피잔이 온기를 잃어간다. 뜨거운 것이 식어가는 것처럼 허망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게 아닌데...왜 이렇게 가을을 타는지 모르겠다. 어느 곳에까지 가을바람이 왔느냐고? 가슴 속 깊숙한 곳에까지 불어든 것 같다. 

상해고적에서 펴낸
유우석 전집 표지
중국 당(唐)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년-842년)은 꽤나 자존심이 강했던 것 같다. 강서성. 오군(吳郡) 출신으로서 한(漢)나라 때 중산(中山)의 정왕(靖王) 유승(劉勝)의 자손임을 자칭했었지만 기실은 흉노족의 후예로 조상이 북위(北魏) 때 낙양(洛陽))으로 옮겨왔다는 게 정설, 혁신을 주장하던 왕숙문당(王叔文黨)에 가담했다가 805년 9월에 연주(連州 자사(刺史)에 좌천되었다가 10월에 다시 낭주(朗州) 사마(司馬)로 옮겨졌지만 시를 쓸 때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었다. 매해 가을이면 울적해져서 계집아이처럼 온갖 청승을 다 떠는 중년의 이민자와는 달리 아무리 불우한 처지에 처하더라도 의젓하고 굳건한 자세를 견지했었다. 그의 시작(詩作)들이 ‘담백하면서도 오묘한 맛’을 내는 것도 그런 자존심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말년에 시를 주고 받으며 교유했다는 백거이(白居易)가 감상(感傷)으로 시를 썼다면 유우석은 절제(節制)로 시를 썼다. ‘추풍인’도 그런 류의 하나다. 가을이 되어 심사가 처량해지는 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소소 불어 기러기 떼 보내고’라든지 ‘아침에 정원 나무를 흔들어대는데’로 대신하는 절제가 돋보인다. ‘가을바람이 어디까지 왔나?’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외로운 나그네가 제일 먼저 듣는다’라고 남의 말 하듯 자신의 속내를 슬그머니 내비치는 유우석에게 한 수 잘 배웠다.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The Young Housewife - 평범한 삶 속의 시적 감동


The Young Housewife (젊은 주부) 

At ten AM the young housewife 
오전 10시 젊은 주부가 
moves about in negligee behind 
평상복을 입은 채 얼쩡거린다 
the wooden walls of her husband’s house. 
자기 남편의 집 나무 울타리 뒤편에서. 
I pass solitary in my car. 
나는 내 차를 타고 고독하게 지나간다. 

Then again she comes to the curb 
그 때 그녀가 모퉁이로 와서 
to call the ice-man, fish-man, and stands 
얼음장수와 생선장수를 부른다. 그리고 서서 
shy, uncorseted, tucking in 
수줍어하면서, 코르셋도 입지 않은 채, 
stray ends of hair, and I compare her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to a fallen leaf. 
낙엽과 비교한다. 

The noiseless wheels of my car 
내 차의 소리 없는 바퀴들은 
rush with a crackling sound over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린다 
dried leaves as I bow and pass smiling. 
마른 잎사귀 위로, 내가 고개 숙이고 미소 지으며 지나갈 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년~1963년> 

한 것일수록 중요한 것인 경우가 많다. 흙, 물, 공기 등등도 무한정 공짜이지만 기실 그것들이 없으면 인간은 하루도 생존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 특별한 것일수록 가치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사실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지난 2007년 런던대 교육연구소의 나타부드 포우드사비 박사도 영국 내 8천가구를 대상으로 임금 인상이나 친구와 연인과 만나는 시간 등 자질구레한 일상에서부터 실직 등의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인생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자질구레한 일상도 의외로 큰 금전적 가치와 맞먹는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포우드사비 박사에 따르면 매일 친구와 가족을 보는 것을 값으로 따지면 연봉 8만5천파운드(약 1억5천800만원) 인상에 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경우 병에 걸리기 전과 같은 생활의 만족도를 여전히 유지하려면 최소한 연간 48만파운드(약 8억9천100만원)를 필요로 하고, 갑자기 실직하면 실직으로 인한 수입 상실을 제외하고도 14만3천파운드(약 2억6천600만원)를 잃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어찌 일상의 소중함을 돈으로 따질 수 있으랴. 아침에 일어나 식구들 얼굴을 보는 것과 못 보는 것, 어슬어슬 한기가 감도는 새벽에 일어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비 오는 날 창문 밖에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풍경....어쩌면 삶의 색깔 또한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 속 자질구레한 물상(物像)들의 조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러더포드 출신의 윌리엄스를 기념하여 
2012년 미 우정국에서  발행한 우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자질구레한 물상들을 사랑한다. 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의사 출신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년-1963년)도 그랬다. 그는 “시를 쓸 때엔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로(No ideas but in things)’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미지즘(imagism) 시운동을 심화시킨 객관주의(Objectivism)를 주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작(詩作) 초기엔 당시 유행하던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활용을 극대화하는 실험시를 썼으나 차츰 자기만의 목소리로 자기 주변 일상의 자질구레한 사물들을 일상적인 언어로 노래하여 소위 ‘미국의 문화적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5부작 ‘패터슨(Paterson)’을 쓰기도 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에 펴낸 시집 ‘브뤼겔의 그림들과 다른 시들(Pictures from Brueghel and Other Poems)’로 196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리엄스는 종전 시작(詩作)의 감초로 여겨지던 상징(象徵)의 남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투철한 현실인식과 일상의 평면적인 관찰을 기본으로 시를 써서 미국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줬었다. 

뉴저지 러더포드에서 출생한 윌리엄스는 삶 그 자체를 사랑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을 미덕으로 꼽았다. 뉴욕 호레이스 만 고교(Horace Mann High School) 재학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나, 부모의 권유로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의학부에 진학하여 소아과 의사가 됐고, 고향 러더포드에서 소아과 의사로 개업한 후에도 처방전에까지 시를 쓸 정도로 시작에 몰두했다. 그가 1917년에 발표한 ‘The Young Housewife(젊은 주부)’도 그 때 그 시절 쓴 것으로 보인다. ‘Young Housewife’를 순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갓 결혼한 새댁, 윌리엄스 활동 당시 남녀가 결혼을 하면 교외의 한가로운 주택가에 집을 마련하고 남편이 출근한 후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게 유한계층의 관례였던 바, 단꿈을 꾸듯 행복하게 살아가는 새댁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삶의 아름다운 단면을 스케치하고 있음을 본다. 젊은 여인의 평상복에서 느껴지는 긴장의 이완, 젊은 여인이 코르셋도 입지 않은 채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느껴지는 관능미,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런 젊은 주부를 몰래 훔쳐보는 작중 화자(話者)의 야릇한 흥분, 그 흥분을 고조시키기라도 하듯 달리는 차 바퀴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들의 효과음...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서 그런 시적 감동을 이끌어낸 윌리엄스의 관찰력이 놀랍기만 하다. 

윌리엄스의 이미지즘은 에즈라 파운드와의 교유에서 크게 영향 받았다는 게 중론, 그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물건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데 특출함을 보였다. ‘젊은 주부’와 ‘얼음장수’ 또는 ‘생선장수’의 극적인 대비도 일상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포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거니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바퀴와 그 바퀴에 깔려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들의 청각적 이미지 대비도 돋보인다. 그가 1023년에 발표한 ‘빨간 손수레(The Red Wheelbarrow)’를 보면 원색의 물감으로 그린 선명한 그림 같기도 하다. 다음은 ‘The Red Wheelbarrow’의 전문. 

so much depends      너무 많이 실려있네 
upon                          위에 

a red wheel                빨간 바퀴 
barrow                       손수레 

glazed with rain          빗물에 반짝였네 
water                          물 

beside the white         그 곁의 그 하얀 
chickens.                    병아리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의 한 작품을 대하는 듯하다. 주변에 널린 자질구레한 것들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빨간 바퀴’와 ‘하얀 병아리’의 원색적인 대비로 시적 클라이막스를 고조시키고 있음을 본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것들의 이미지를 누구나 친근하게 수용할 수 있는 구어체로 재현한 윌리엄스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흡사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거리를 산보하다가 눈에 띄는 것들을 보고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들처럼. 윌리엄스에게 있어서 시는 장인정신으로 완벽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감흥을 읊는 것도 아니었던 바, 평범한 삶의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담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만들어내는 윌리엄스의 시작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도시 소시민들을 위한 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평범한 삶을 사랑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시인이었다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종남별업(終南別業) - 늙는 법 예습하기


終南別業(종남별업) 

中歲頗好道 (중세파호도)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하여 
晩家南山陲 (만가남산수)   뒤늦게 남산 언저리에 집을 지었네 
興來美獨往 (흥내미독왕)   흥이 나면 좋아서 혼자 다니는데 
勝事空自知 (승사공자지)   좋은 일은 조용히 나만 안다네 
行到水窮處 (항도수궁처)   걷다가 물 다하는 곳에 이르면 
坐看雲起時 (좌간운기시)   앉아서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네 
偶然値林叟 (우연치림수)   우연히 숲 속 늙은이 만나면 
談笑無還期 (담소무환기)   담소하다가 돌아갈 줄을 모르네 

                                     <왕유(王維); 699년-759년> 

나이 들수록 일자리는커녕 할일을 찾기가 힘들어지면서 고립감과 고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에 비례하여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짜증도 늘어난다는 것은 늘그막에 나랏일 걱정한답시고 오만가지 일에 다 끼어드는 ‘어버이 연합’ 회원들도 부인하지 않으리라. 그들이 활약(?)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정권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직시 직접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장년) 고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시켰었다. 당시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50~54세는 준고령자, 55세 이상은 고령자라고 지칭해 왔으나 앞으론 ‘고령자’라는 단어를 ‘오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의미의 ‘장년(長年)’이라고 바꾸기로 했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고령자 취업차별을 없애겠다고 큰소리 뻥뻥 쳤으나 그 또한 결국은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 정권이 바뀐 지금 지금 ‘장년’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거니와 그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고령자들이 일자리 찾기가 개선됐다는 후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이 들어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팔다리 허리가 쑤시고 두 눈이 침침해지는 사람들이 “젊은이 못지않게 일 잘할 수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우습지만, 그런 고령자들의 욕심을 부추겨서라도 정권이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높여보겠다고 침 튀기는 사람들이 더 한심하다. 고령자 위하는 척 하면서 희롱하는 것 같아 눈이 절로 흘겨진다. 

나이는 저절로 먹는 것이지만 늙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세기 인간의 노화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영국 리버풀 대학의 노인심리학자 D. B. 브롬리(D. B. Bromley)는 그의 저서 ‘노화심리학(The Psychology of Human Ageing)’에서 “인생의 1/4은 성장하면서 보내고 나머지 3/4은 늙으면서 보낸다”고 말했었다. 생물학적으로 청소년기를 지나면 성장이 멈추고 퇴화하기 시작하므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대비해야 한다는 매우 간단한(?) 충고였었다. 그러나 그게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브롬리가 생전에 발표한 어려운 논문들과 저서들이 더 잘 말해준다. 자신이 늙어간다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 풀어야할 문제들이 수두룩하거니와 그 문제들을 서둘러 풀지 않으면 세상 원망만 는다는 게 늙은이들의 뼈아픈 경험담이고 보면,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늙는 법을 잘 배워서 쪼그라드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주는 게 상책일 듯싶다. 

왕유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복생수경도(伏生授經圖).
복생(伏生)은 전한 시대 제남(濟南) 출신의 명유(名儒) 
늙어가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 덜 하려면 욕심부터 줄여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젊었을 적 불만족(不滿足)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면 늙어갈수록 만족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른 바 ‘순응(順應)’을 학습해야 한다. 한자 좇을 순(順)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그린 내 천(川)에 머리 혈(頁)이 붙은 것으로서, 자연의 섭리의 상징인 물의 흐름에 나의 생각을 맡긴다는 의미,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 왕유(王維; 699년-759년)가 자연 속에 파묻혀 산수를 벗 삼았던 것도 순응을 학습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던 왕유는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자(字)까지 ‘마힐(摩詰)’이라고 했으나,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반란군의 포로가 돼 부역을 했다가 나중에 그것 때문에 관직을 박탈당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속세에 환멸을 느꼈고, 이후 중국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종남산(終南山) 언저리 망천(輞川)에 별업(別業)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었다. 그 때 그렸다는 화집 ‘망천도(輞川圖)’는 진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숱한 모사도와 함께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돼왔거니와, 북송의 문장가 소식(蘇軾)은 왕유의 시와 그림에 대해 “시 중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평하기도 했고, 지금도 왕유는 문인화의 원조격인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을 받는다. 

‘종남별업(終南別業)’은 왕유가 망천장에 은거할 때 지은 작품, 많은 시인들이 경쟁적(?)으로 노래했던 자연귀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 ‘종남산의 별장’을 뜻하는 제목 ‘종남별업’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왜 ‘별장’이나 ‘초가’ 또는 ‘모옥(茅屋)’ 등등 대신 ‘별업’이라는 단어를 골랐나? 별업의 업(業)은 그 옛날 종이나 북 등의 악기를 거는 틀의 가로 판자를 본뜬 것으로서, 거기에 뭔가 기록해두었기에 ‘일’ ‘문서’ ‘직업’ 따위를 뜻하게 됐던 바, ‘별업’은 생계를 위해 꾸려나가는 주업(主業) 말고 별도로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장안에서의 관리 생활이 주업이라면 산수를 즐기면서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종남산에서의 사색이야말로 별업, 속세를 떠난 사람의 일과라는 의미다. 평균수명이 60을 넘지 않던 그 시절 중세(中歲)는 30세 언저리, 인생의 반환점을 막 돌면서 도(道)를 좋아했다는 고백은 속세에서 살만큼 살아 염증을 느끼게 됐다는 실토로 받아들여지고,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은 자연에 순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림수(林叟)’ 즉 ‘숲 속의 늙은이’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내다본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귀의하여 늙음을 순치하는 왕유의 만년이 아름답다. 한국의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물론 나이 먹을수록 세상에 대한 원망만 키우는 늙은이들이 외우고 또 외우면 보약이 될 것 같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님의 침묵(沈黙) - 속세를 사랑한 휴머니스트의 '님'


님의 침묵(沈黙)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1926년 ‘님의 침묵’ 회동서관, 한용운(韓龍雲); 1879년-1844년> 

어사전은 ‘침묵(沈黙)’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음. 또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라고 풀이하여 명사취급하고 있으나 한자 어법으로 보면 옳지 않다. 한자 침(沈)은 물 수(水)에 ‘아래로 늘어뜨리다’라는 의미의 ‘유(冘)’가 붙은 것으로서 ‘빠지다’ ‘가라앉다’ ‘잠기다’ 등을 뜻하는 동사(動詞)이고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의 검을 흑(黑)에 개 견(犬)이 붙은 묵(黙)은 ‘개가 짖지 않는다’ 즉 ‘아무 소리도 없다’는 의미이므로, ‘沈黙’은 ‘黙(묵)’에 빠지거나 잠기는 것을 말한다. 그게 일제시대 일본식 조어법의 영향으로 명사화한 것인 바, 실제로 중국에서는 ‘침묵(沈黙)’ 대신 ‘정묵(靜黙)’이라는 명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는 침묵했다’는 ‘沈’을 동사로 ‘他沉默了’라 쓰고 그걸 명사로 표현할 때는 ‘그의 침묵(정묵)’은 ‘他的静默’이라고 쓴다. 

1937년경의 만해 한용운
만해(卍海 또는 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년-1844년)이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沈黙)’을 쓸 때도 일본식 조어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용운이 ‘공약삼장(公約三章)’을 추가했다고 알려진 기미독립선언서(己未獨立宣言書) 첫머리 “공약삼장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에서 ‘조선의 독립국임과’와 ‘조선인의 자주민임을’의 ‘의’가 소유격이 아니라 주격조사로 사용되었듯이, ‘님의 침묵’의 ‘의’ 또한 주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거니와, 침묵(沈黙)이 일본식 한자조어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하면 ‘님의 침묵’은 ‘님이 아무 말 안 한다’로 해석하는 게 옳을 듯싶다. 

1926년 회동서관 간행한 한용운의 첫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시 ‘님의 침묵’처럼 괴리적(乖離的) 감상이 많은 시도 드물다. 한용운이 승려신분이었을 적 발표한 시여서 그런지 직감적으로 ‘님’을 석가모니와 연결시키기도 하고, 그가 조선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사실을 들어 ‘잃어버린 나라’로 해석하기도 하고, ‘님’이라는 말이 자고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여 왔다는 점을 들어 단순히 ‘사랑하는 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실 그런 중의성(重義性)은 한용운 자신이 시집 ‘님의 침묵’ 서문 격인 ‘군말’로 부추긴 바 크다. 그 ‘군말’에서 한용운은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釋迦)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微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戀愛)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自由)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조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拘束)을 밧지 안너냐. 너에게도 님이 잇너냐. 잇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긔루어서 이 시(詩)를 쓴다(시집 ‘님의 침묵’ 서문 원문)”면서 자신이 의도했던 ‘님’이 특정한 ‘님’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용운이 독자들에게 제멋대로 ‘님’을 상정(想定)하는 자유를 줬다고 여기는 건 큰 오류다.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고 정의하면서도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고 단정한 이유가 뭔가? 또 “나는 해 저문 들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그리워서 이 시를 쓴다”고 덧붙인 이유가 뭔가? 한용운이 생각하는 ‘님’은 ‘그림자’ 즉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그림자처럼 인식은 되지만 정작 실체는 없는 ‘그리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그런 ‘그리움’ 또한 ‘알뜰한 구속(拘束)’으로 다가오기에, 그럴 바에야 한용운 자신은 ‘해 저문 들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양’이나 그리워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바, ‘님의 침묵’은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허무 속에서 인간에의 연민(憐憫) 즉 인간애(人間愛)를 품고자 쓴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싶다. 그것마저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여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고 끝을 맺었고 그 애탐과 허무감 또한 공(空)이어서 제목을 ‘님의 침묵’이라고 붙인 게 아닌지?! 

기실 한용운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해 불도를 닦는 승려가 아니라 인간과 속세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휴머니스트였던 것 같다. 당시 조혼 풍습에 따라 열네 살의 나이로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오십대에 환속한 후 다시 재혼해 딸 하나를 더 얻은 것도 그렇고, 세속과 거리를 둬야할 불제자가 독립운동을 하고 시를 쓴 것도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부질없는 일탈(逸脫)에 지나지 않거니와, 속세의 고뇌를 떨쳐버리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걸 기꺼이 끌어안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휴머니스트였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런 그를 추켜세운답시고 승려, 시인, 독립운동가, 교육가 등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야말로 ‘님의 침묵’의 ‘님’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쓴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피할 수 없는 고독과 허무감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불경을 외우기도 하고, 시를 쓰다가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속세를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만해 한용운, 그야말로 당대의 위대한 휴머니스트였다는 칭찬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A Rainbow - 위선(僞善) 속에서 경건(敬虔) 찾기


A Rainbow (무지개)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내 가슴은 뛰노라 
A rainbow in the sky:                                하늘의 무지개를 품으면: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나 어렸을 때도 그랬고;
So is it now I am a man;                           지금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고;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늙었을 때도 그러하리라, 
Or let me die!                                           아니면 차라리 죽게 하소서!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And I wish my days to be                          바라건대 나의 나날들이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타고난 경건(敬虔)으로 서로 서로 얽매이기를.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 

설(逆說, paradox)은 언뜻 보면 일리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 덩어리인 것 또는 주장을 말한다. 영어 ‘paradox’의 뿌리는 ‘반(反)’이나 ‘역(逆)’을 뜻하는 접두사 ‘para’와 ‘의견’을 뜻하는 ‘dox’가 붙은 고대 그리스어 ‘paradoxos’로서 반대의견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한자 ‘역(逆)’은 쉬엄쉬엄 갈 착(辶) 위에 큰 대(大)를 뒤집어 ‘거스르다’라는 의미를 표현한 ‘屰(역)’을 얹어놓은 것으로서 ‘주류의 상식을 배반하다’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개인의 경험과 그 경험들이 긴 세월 동안 축적되어 나타난 사회의 가치판단이나 사회적 주류의 상식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행간이 읽혀진다. 인간의 역사라는 게 승자의 기록에 지나지 않듯이 사회적 주류의 상식이라는 것 또한 ‘다수의 우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인의 사명은 그런 허점을 해부하여 진실에 접근하는 것, 많은 시인들이 다수의 관점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통찰을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드는 인간이 ‘착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역설 중의 역설, 아니 인간 세상 그 자체가 역설의 바퀴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삶 자체가 역설 덩어리인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남의 것을 훔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게 장삼이사의 그렇고 그런 삶이라는 건 시장통 사람들도 다 안다. 그런 장삼이사들 또한 가끔은 “착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손님들을 속여먹는 장사꾼들일수록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고, 거짓말 많이 한 사람들일수록 진실한 사람을 좋아하고, 도둑놈들일수록 친구들에게는 술을 잘 산다. 그걸 ‘양심의 균형(均衡) 잡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의 본성은 본래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믿는다면, 가끔은 착한 척이라도 해야 행복감을 더 느끼게 된다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윌리엄 워즈워드 전기, 스테픈 질
2011년, 옥스포드대학 출판부
19세기 전반 낭만파의 대표 시인으로서 영국 왕실로부터 ‘계관시인(poet laureate)’ 칭호를 받았던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1850)의 '무지개(A Rainbow)를 읽을 때도 머릿속에 역설이 떠올려진다. ‘순수’가 어쩌고 ‘경건’이 어쩌고 침을 튀기는 사람들이야말로 혀로 수박의 겉을 핥는다는 핀잔을 받아 마땅하다. 무지개는 대기 중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들에 햇빛이 굴절 반사되어 해의 반대쪽에 길게 뻗쳐 나타나는 일곱 가지 색깔의 반원 모양의 ‘헛것’에 지나지 않는 바, 그 ‘헛것’을 가슴에 품는다(behold)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 아닌가?! 어렸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그러하겠다고? 그 또한 거짓말! 어렸을 때 그랬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희망사항’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역설로 보면 틀림이 없다.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들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는 확실한 역설로 쐐기를 박아놓은 워즈워드의 배려를 미안하고 고맙게 받아들여야할진저! 

‘타고난 경건(natural piety)’에 이르면 이 작품에서의 역설은 클라이막스에 달한다. 영어 ‘nature’의 뿌리는 라틴어 ‘natura’이고 ‘natura’는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nasci’에서 나왔던 바, ‘natural’은 ‘원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의미다. 또 ‘piety’의 뿌리는 라틴어 ‘pietas’로서 태어나면서부터 지니는 ‘의무’ ‘효성’ ‘경건’ 따위를 의미했던 바, 그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의무’ 또는 ‘경건’을 타고났던 예수의 사체(死體)를 표현한 일체의 예술작품을 ‘피에타(Pieta)’라고도 하지만 그건 인간이 아닌 신의 아들 이야기이고, 욕망덩어리를 끌어안고 태어난 인간의 ‘natural piety’는 ‘위선(僞善)’일수도 있다는 것을 까먹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piety’의 형용사형 ‘pious’는 ‘종교를 빙자한’ ‘위선적인’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거니와 ‘pious hope’는 “비현실적이어서 이뤄질 것 같지 않은 희망”을 말한다. 

워즈워드가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종교개혁, 데카르트와 루소로부터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자였다는 점 또한 이 작품 속의 ‘역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낭만주의(Romanticism)’는 기이(奇異)·가공·경이 등을 뜻하는 라틴어 ‘romanice’에서 나온 것으로서, 문학용어로서의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F. 슐레겔이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량하나 문명에 의해 타락한다는 근본이념 아래 이성보다 정서를 신뢰하여 영혼의 내적 추구와 폭로 및 위선에 대한 증오를 주로 다뤘다는 점을 까먹어서는 아니 된다. 이른바 원시성·유아 찬미, 고대와 중세에 대한 동경 외에 이국취미·지방색·이상취향(異常趣向)·반사회·초월주의·밤[夜(야)]·박명(薄明)·죽음·꿈·환상·폐허 취미·악마성·무의식·유동성 등을 특징으로 했던 바, 15살이 채 되기도 전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 맡겨져 갖은 멸시와 고독을 친구 삼으면서 힘겹게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사상에 물들기도 했던 워즈워드의 ‘무지개’ 또한 그런 낭만주의적 사고의 결실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걸 ‘무지개’ 등의 자연 현상으로 풀어낸 점이 워즈워드의 특장점이긴 하지만. 

‘무지개’를 감상할 때마다 지저분하고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삶을 참으로 아름답고 경건(?)하게 포장했다는 칭찬이 절로 나온다. 워즈워드야말로 욕망덩어리를 끌어안고 태어나 이따금은 착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장삼이사들의 인간성(그게 ‘natural piety’인지 모르겠지만)을 사랑하고 연민했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인이었던 것 같다.

2013년 7월 18일 목요일

飮酒(음주) 제5수-실패한 인생의 자기 최면



飮酒(음주) 제5수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사람들 틈에 오두막 짓고 살아도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시끄러운 마차 소리 들리지 않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만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땅도 외지게 된다네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산 기색은 저녁 무렵이 아름답고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새들은 서로 함께 날아 돌아오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 이 중에 참뜻이 있어 
欲辯已忘言 (욕변이망언) 설명해주고 싶지만 이미 말을 잊었다네 

                                       <도연명 (陶淵明); 365년-427년>


히 ‘자연(自然)’ 하면 인공과 동떨어진 숲이나 냇물 따위의 산수(山水)를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천만의 말씀, 한자문화권의 ‘자연’은 영어문화권의 ‘nature’하고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自然’의 그럴 연(然)은 고기 육(肉)과 개 견(犬)과 불 화(火)가 합쳐진 것으로서,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먹을 게 드물 던 그 옛날 개를 잡아먹을 때는 개고기를 불에 그슬려야 했듯이, ‘然’은 일이 돌아가는 이치나 가만 내버려둬도 스스로 돌아가는 꼴을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어 사전에서 ‘自然’을 찾아보면 명사로는 ‘自然界, 형용사로는 ‘꾸밈이 없이 자연스럽다’, 부사로는 ‘자행(自行)’과 동의어로 ‘스스로’ ‘저절로’라고 풀이돼 있을 뿐 숲이나 바위나 강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자연은 자연계가 돌아가는 이치나 모습,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4대강 정비한답시고 강바닥을 파헤친 것도 ‘스스로 그러한 꼴로 되어가는’ 자연에 속한다고 하겠다. 사람이 강바닥을 파헤쳐 놓아봤자 홍수에 떠밀려온 산비탈의 사토로 다시 채워질 건 자명한 이치, 또 그걸 퍼내 아파트 지어봤자 언젠가는 허물어져 다시 흙이나 모래로 변하리라는 것 또한 두말 하면 잔소리....그게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연’이 아닌가?! 반면 영어 ‘nature’의 뿌리는 라틴어 ‘natura’이고 ‘natura’는 ‘태어나다’라는 의미의 ‘nasci’에서 나왔던 바, 원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 즉 신이 창조한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도연명 초상
까놓고 말하자면 자랑할 명예도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할 돈도 없는 사람들일수록 자연(산수)을 찾는다. 그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 산과 강에 널려 있는 풀이나 물은 주인이 없어 돈이나 권세 없이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까. 그 옛날 벼슬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낙향하여 천석고황(泉石膏肓)이 어쩌고 단표누항(簞瓢陋巷)이 저쩌고 청승을 떨었던 것도 그게 돈도 안 들고 시비에 휘말릴 일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데 누가 감히 토 를 달으랴.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에이 더러워서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고 때려치우고 자연 즉 ‘스스로 돌아가는 이치나 꼴’에 자신을 던져버렸던 도잠(陶潛); 365년-427년)도 그랬다. 연명(淵明)이라는 자가 더 많이 알려져 도연명으로 불리는 그가 41세 때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할 때 “그 까짓 5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지만 그건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커 보이거니와, 기실은 ‘스스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믿어마지 않는다. 그가 서진의 명장이었던 증조부 도간이나 명사로 이름을 날렸던 외조부 맹가처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더라도 세상을 향해 가래침을 내뱉었겠느냐는 말이다. 

나름대로 분수껏 열심히 사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 도연명은 실패한 인생 즉 경쟁에서의 패배자였다. 남들은 어려서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승승장구할 때 겨우 29세가 되어서야 벼슬길에 올랐고 그나마 주(州)의 좨주(祭酒), 주부(主簿), 진군의 참군(參軍) 등 말단을 전전하다가 겨우 팽택현령 자리를 얻었으나 80여일 만에 사표를 낸 게 13년에 걸친 벼슬살이의 전부였다. 아무개처럼 중앙의 고관대작이 돼보기는커녕 녹봉이 쌀 다섯 말밖에 되지 않는 향리의 현령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을 터, 사표를 내던지는 게 쥐뿔도 없이 자존심만 강했던 시인의 ‘자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때를 잘못 만나서, 세상이 잘 못 돌아가고 있기에, 자신과 같이 올곧은 천재는 산수에 파묻혀 지낼 수밖에 없다는 자기 최면이 유일한 낙이었으리라. 

도연명이 술 마시면서 쓴 시를 모아놓은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다섯 번째 작품도 그런 자기 최면을 풀어쓴 것으로 보인다.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도 외지게 되므로 벼슬아치들이 타고 다니는 마차 소리 따위는 들려오지 않는다? 보기 싫은 게 눈 앞에 있으면 눈 질끈 감고 도리질 해대는 초등학생들도 배시시 웃을 유치한 얼렁뚱땅이 아닌가? 도연명 자신도 그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자기최면을 자랑스레 여겼던 것 같지는 않다. 할 일이 없어 국화꽃이나 따다가 멀리 남산이나 바라보는 자신의 진의(眞意)를 이러쿵저러쿵 변호해봤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부끄러울 뿐이어서 ‘이미 말을 잊었다(已忘言)’고 말꼬리를 흐렸던 건 아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쑥스럽고 부끄러운 자기최면 덕분에 역사에 기리 남는 대시인이 되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도연명은 향리에 은거한 이후 더 큰 고뇌를 곱씹어야 했다. 50세 때 은사(隱士)에게 명목으로만 주어지는 벼슬인 저작좌랑(著作佐郞)을 제수 받았고 주로 심양 근처에서 지내면서 시작(詩作)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먹고살기 위해 허구한 날 땅이나 파야하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가 427년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었다. 그가 ‘도화원기(桃花源記)’ 등을 지으면서 유달리 이상향을 그리워했던 것도 현재적 삶에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지금도 벼슬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들먹일 때마다 패배자들이 도연명의 자기 최면을 흉내 내는 것 같아 쓴웃음을 금할 수 없지만, 삶의 단맛보다는 쓴맛이 더 깊고 오묘하기에 문학의 주요 소재가 됐기에, 인생의 패배자 도연명이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오른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그게 산수가 아닌 세상의 ‘자연’이 아닌지?!